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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거래' vs 해리의 '명예': 아프간 논란이 한반도에 던진 서늘한 '청구서'

AI News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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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 왕자의 분노와 대통령의 계산기

2026년 1월, 런던의 눅눅한 공기를 가른 것은 서식스 공작(Duke of Sussex) 해리 왕자의 이례적인 성명이었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정치적 수사로 폄훼되는 현실을 두고 "복무의 신성함이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격분을 토해냈습니다.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이 "왕실의 이단아가 군인의 명예를 위해 가장 보수적인 목소리를 냈다"고 평할 만큼, 그의 분노는 '피로 맺어진 유대'라는 전통적 가치를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서양 건너편의 반응은 이 숭고함을 철저히 조롱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이를 "패배한 전쟁의 감상적인 찌꺼기"라고 일축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우애가 아니라, 그 전쟁이 미국 납세자에게 얼마를 남겼느냐는 '대차대조표'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영미권의 가십이 아닙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참모들과 평택 험프리스 기지의 한미연합사 관계자들에게 이 장면은, 70년을 이어온 한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진계의 바늘처럼 다가옵니다. 우리가 흔히 '혈맹(Blood Alliance)'이라 부르며 신성시했던 가치 동맹이,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는 철저한 '거래(Transaction)'의 대상으로 치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가치의 충돌: '피의 동맹'은 유효한가?

이러한 가치의 충돌은 런던의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 영국의 국방부 관계자들을 침묵시켰습니다. 워싱턴의 한 고위 관료가 아프가니스탄 헬만드(Helmand) 주에서 전사한 457명의 영국군을 두고 "실패한 투자에 대한 불필요한 비용(sunk cost)"이라고 묘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결례를 넘어, 20년간 피를 나눈 대서양 동맹의 심장을 찌르는 발언이었습니다.

런던 **킹스칼리지(King's College)**의 마이클 클라크 교수가 지적했듯, 이것은 "동맹의 가치가 '공유된 희생(shared sacrifice)'에서 '거래적 계산(transactional calculation)'으로 이동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로 대변되는 신고립주의자들에게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단순한 전략적 실패가 아니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의 청산'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전우애나 명예는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허수일 뿐입니다.

실제로 2025년 발간된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의 보고서는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동맹국을 평가할 때, 지정학적 충성도보다 방위비 분담금 납부 이력과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직면한 냉혹한 현실을 예고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에 대한 폄하는 먼 나라 영국의 자존심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손절(stop-loss)할 수 있다'는 투자 논리가 군사 동맹의 성역을 침범했음을 증명합니다.

서울의 기시감: 카불의 그림자와 주한미군

런던에서 시작된 이 파장은 서울 여의도와 용산에 서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2021년 8월,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탈출하는 미군 C-17 수송기의 바퀴에 매달렸다 추락한 아프간 청년들의 영상이 광화문 전광판을 채웠을 때, 서울의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2026년 오늘, 그 공기는 '공포'에 가깝습니다.

국립외교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비공개 세미나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가 미국의 '의지' 문제였다면, 이번 참전용사 비하 논란은 미국의 '가치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희생을 비용으로, 동맹을 채무관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백악관의 주류가 된다면,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주둔 중인 2만 8,500명의 주한미군은 더 이상 '자유의 방패'가 아니라 '청구서의 근거'가 될 뿐"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제13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테이블 위에서 미국은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포함한 전례 없는 증액을 요구하며, 그 근거로 "미국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언급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프간 참전용사들을 향해 던져진 "그들이 얻은 게 무엇인가?"라는 냉소적인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보훈의 경제학: 군인의 희생을 비용으로 환산할 때

그렇다면 이 '비용 논리'가 실제 전선을 지키는 군인들의 사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혈맹'의 가치가 '거래'로 바뀌는 순간, 그 충격파는 대한민국 국방의 최전선인 GOP(일반전방초소)까지 도달합니다.

워싱턴 D.C.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 마크 톰슨(가명)은 "총알은 비용을 따지지 않고 날아오지만, 그 총알을 막아낸 몸에 대한 보상은 철저히 '가성비'의 영역으로 추락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러한 '보훈의 경제학'은 한국 사회에도 치명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학군장교(ROTC) 지원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초급 간부들의 조기 전역 비율은 5년 전 대비 30% 이상 급증했습니다.

"미국도 저렇게 자국 군인을 홀대하는데, 우리가 전쟁 나면 누가 우리를 지켜주겠나?"라는 냉소적 질문이 2030 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랜드 연구소의 윌리엄 조가 지적했듯, "군인의 사기는 월급봉투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보내는 존경의 눈빛에서 나옵니다." 동맹이 '피'가 아닌 '돈'으로 맺어질 때, 그 동맹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릴 사람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질서: '거래적 동맹' 시대의 생존법

이처럼 동맹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생존법을 찾아야 할까요? 워싱턴의 유력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처럼, 2026년 미국의 외교 문법은 '공유된 희생'에서 '철저한 손익 계산'으로 급격히 이동했습니다.

이제 한국의 생존 전략은 감성적인 호소나 막연한 신뢰에서 벗어나, 철저한 '레버리지(Leverage)' 확보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캠퍼스와 울산의 현대차 전기차 라인이 단순한 산업 시설을 넘어, 한미 동맹을 지탱하는 핵심 안보 자산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무역협회(KITA)**가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재편 전략에서 한국의 첨단 기술력이 차지하는 필수 의존도는 전년 대비 15%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협상 카드입니다.

단순히 방위비를 더 내는 것으로 안보를 '구독'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반도체와 배터리라는 칩을 쥐고, 동맹의 가격을 우리가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단 하나의 진리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오직 냉철한 '국익'만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결론: 명예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서울의 동작동 현충원까지, '혈맹'이라는 단어는 지난 70년 동안 우리 외교의 가장 강력한 방패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논란은 그 방패에 금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타국의 정치적 수사에 일희일비하며 분노하는 것은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굳건한 한미동맹 위에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고슴도치'와 같은 독자적 억제력을 갖춰야 합니다. 최근 폴란드와 중동으로 수출되는 국산 무기체계는 단순한 산업적 성과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음을 증명하는 실체적 보증수표입니다. 명예는 남이 인정해 줄 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