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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잠긴 '광장': 이해찬의 위중설과 민주당의 내일

AI News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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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차가운 1월의 바람보다 더 매서운 침묵이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감쌌습니다. 25일 오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관계자가 전한 "이해찬 전 대표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짧은 한마디는 단순한 병세 브리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있음을 알리는 무거운 타종과도 같았습니다.

브리핑룸에 모인 기자들 사이에서는 흔한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조차 잦아들었습니다. 당내 '상왕(上王)'으로 불리며 지난 30년간 진보 진영의 전략적 뇌관이자 버팀목이었던 거목(巨木)의 흔들림 앞에서, 당직자들의 표정은 당혹감을 넘어선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명계 재선 의원은 복도 끝에서 담배를 태우며 "단순히 한 원로의 건강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의지해 온 '정치적 나침반'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는 80년대 학생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 정치의 주류로 군림해 온 이른바 '386 세대'의 퇴장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물리적 현실로 다가왔음을 시사합니다.

서울대병원 빈소 앞이 아닌, 아직 생사가 오가는 중환자실 앞을 지키는 것은 민주당의 현주소였습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결집했던 슬픔의 에너지와는 결이 다릅니다. 지금의 침묵에는 '포스트 이해찬' 이후 닥쳐올 거대한 권력 공백과 노선 투쟁에 대한 불안한 예감이 서려 있습니다. 정치평론가 박성민 대표가 최근 칼럼에서 지적했듯, "이해찬의 부재는 민주당에게 있어 '전략적 모호성'으로 버텨온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2024년 총선 승리 이후에도 여전히 '이재명 체제'의 안착과 '친문-친명' 간의 화학적 결합을 고민해야 하는 민주당에게, 이 전 대표의 위중설은 단순한 비보를 넘어 당의 정체성과 미래 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는 엄중한 최후통첩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승리의 설계자: '킹메이커' 그 이상의 시스템

이 거대한 침묵의 무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계를 뒤로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의도 정가에서 이해찬 전 대표를 단순히 '킹메이커'라 부르는 것은, 마치 건물을 지탱하는 철골 구조를 단순한 인테리어 장식으로 치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2026년 1월 현재, 병상에 누운 그가 민주당에 남긴 진짜 유산은 세 명의 대통령(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배출했다는 결과론적 사실이 아니라, 그 승리를 가능케 했던 '시스템(System)'의 구축에 있기 때문입니다.

1997년 대선 당시, 한국 정치는 여전히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라는 거목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해찬은 달랐습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기획본부장이었던 그는 유세 현장의 열기보다 여론조사 데이터의 추이를 신뢰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해찬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라는 파격적인 수를 던지면서도, 호남 고립 구도를 깨기 위한 정밀한 득표 계산서를 들이밀며 당내 반발을 잠재웠습니다. 이는 감성에 호소하던 야당의 선거 운동이 '과학적 캠페인'으로 진화하는 첫 번째 변곡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해찬식 시스템'이 만개한 것은 2002년 노무현 후보의 선거였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 앞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국민참여경선'이라는 드라마틱한 무대를 설계했습니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대표가 여러 칼럼에서 지적했듯, 노무현이라는 개인의 폭발력은 이해찬이 깔아놓은 정당 개혁과 경선 룰이라는 레일 위에서 비로소 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물 중심의 계파 정치를 타파하고, 당원이 주인이 되는 '당원 중심 정당'의 기틀을 닦음으로써 386 세대가 주류로 부상할 수 있는 구조적 통로를 열어주었습니다.

그의 집요함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탄생 배경에는 2016년부터 2020년 총선까지 이어진 이해찬 체제의 '시스템 공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사심 없는 공천 룰을 확립하겠다며 당규를 정비했고, 이는 계파 간 잡음을 최소화하며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확보하는 결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전략기획위원장은 "이해찬 대표는 회의 석상에서 '우리가 20년을 집권해야 정책이 뿌리내린다'며, 개인의 인기가 사라져도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100년 정당'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결국 지금 민주당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이해찬이라는 '설계자'가 부재할 때 과연 이 시스템이 독자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는 386 운동권 그룹의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때로는 '버럭 해찬'이라는 오명조차 감수하며 계파 갈등을 힘으로 찍어 눌러 시스템을 유지해왔습니다. 이제 그 강력한 그립(Grip)이 사라지는 순간, 2026년의 민주당은 지난 30년간 그가 쌓아 올린 승리의 방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새로운 전장에 맨몸으로 던져지게 된 셈입니다.

'20년 집권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러나 아무리 견고한 시스템도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는 균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 상황실에서 이해찬 전 대표가 던진 **'20년 집권론'**은 당시엔 불가역적 개혁을 위한 청사진이었으나, 지금은 냉혹한 현실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20년 집권론'의 핵심 전제는 "유능한 경제 정당으로서의 신뢰"였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마포구 아현동의 부동산 중개소 앞이었습니다. KB국민은행 리브온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2017년 6억 원대에서 2021년 10억 원을 돌파하는 동안, 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3040 세대의 자산 격차는 극적으로 벌어졌습니다. 마포구에서 10년째 거주 중인 직장인 김민성(42) 씨는 "20년 집권론을 믿고 지지했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20년 멀어지는 것을 보며 지지를 철회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정책의 실패가 어떻게 정치적 상상력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픈 사례입니다.

2022년 대선에서의 0.73%p 차이 패배는 '20년 집권'의 궤도가 수정되어야 함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여론조사는 '386 세대'의 도덕적 우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한국갤럽의 2024년-2025년 분기별 통합 지표를 분석해보면,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이었던 호남과 40대를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정권 심판론'과 '거대 야당 심판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위 데이터가 보여주듯, 부동산 가격의 급등기(2019-2021)는 민주당 지지율의 하락기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20년 집권론'은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때만 유효한 계약이었습니다. 이해찬 전 대표가 설계했던 '시스템 공천'과 '당원 중심 정당'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중도층의 이탈을 막는 방파제 역할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해찬의 시대가 '기득권 타파'와 '민주화의 완성'을 목표로 했다면, 포스트-이해찬 시대는 '불평등 해소'와 '미래 산업(AI, 기후위기)에 대한 응답'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정치컨설팅 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20년을 지배하겠다는 '기간의 목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집권하느냐는 '가치의 재설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해찬 전 대표의 위중설은 단순한 원로의 퇴장이 아닙니다. '20년 집권론'이라는 거대 담론이 멈춘 자리에서, 민주당은 이제 구호가 아닌 실력으로 유권자를 다시 설득해야 하는 냉혹한 '생존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략의 공백: 누가 설계도를 물려받는가

설계자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전략적 공백'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여의도의 차가운 바람이 영등포구 민주당사 창문을 때리던 지난 24일 오후, 당직자들의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습니다. 이해찬 전 대표의 병세 악화 소식이 '지라시'가 아닌 팩트로 확인된 직후였습니다. 3선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담배를 피워 물며 이렇게 내뱉었습니다. "지금 당에는 훈수 두는 '입'만 500개고, 판 전체를 읽고 돌을 놓는 '눈'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단순한 탄식이 아닙니다. 이해찬이라는 거목(巨木)의 부재가 드러낸, 민주당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자백입니다.

'선거의 제왕', '디테일의 악마'. 그를 수식하던 단어들은 이제 전설이 되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신화가 아닌, 그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설계도의 공백'입니다. 2025년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발간한 비공개 백서를 입수해 확인해 보았습니다. 백서는 패배의 원인을 '전략의 부재'가 아닌 '메시지의 혼선'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서울 강북구의 40대 당원 박민수 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당이 어디로 가는지 보였어요. 지금은요? 사공이 너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방향 상실'은 숫자로 증명됩니다. 리얼미터가 지난주 발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이라 불리던 호남과 40대 화이트칼라 층의 지지율 균열이 감지되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무당층'으로 이탈한 비율이 전년 동기 대비 8%포인트나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유권자들이 보수 진영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배가 표류하는 것을 보고 '하선'을 택했음을 의미합니다.

이해찬 전 대표가 구축했던 '20년 집권 플랜'의 핵심은 '시스템 공천'과 '장기적 아젠다 선점'이었습니다. 그는 바둑판의 포석처럼 인재를 배치하고, 상대의 수를 미리 읽어 이슈를 선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도부는 아침 최고위원회의 발언이 정제되지 않은 감정적 배설에 가깝고, 정책위의장은 당론과 엇박자를 내기 일쑤입니다. '386 세대'의 퇴조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문제는 그 빈자리를 채울 '포스트 386'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재선 그룹, 이른바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생)' 의원들은 개별적인 전투력은 갖췄을지 모르나, 전장을 조망하는 사령관의 면모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당내 전략기획통은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이해찬 대표 시절에는 '선당후사'라는 명분 아래 질서가 잡혔습니다. 지금은 각자도생(各自圖生)입니다. 내년 지방선거 공천만 바라보는 '소상인'들만 득실거릴 뿐, 당의 10년 뒤를 고민하는 '건축가'는 멸종했습니다."

'386'의 황혼과 세대교체의 필연성

여의도 성모병원 VIP 병동에 감도는 적막은 단순한 고요가 아닙니다. 그것은 1980년대를 화염병과 최루탄 연기 속에서 보냈던 '386 세대'가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할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무거운 신호와도 같습니다. 이해찬 전 대표의 위중설이 여의도 정가에 퍼진 지난 24시간 동안, 더불어민주당 당사 3층 휴게실에서 만난 초선 의원 김 모 씨의 표정에는 슬픔보다 더 복잡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이 전 대표님은 우리 당의 기둥이셨죠. 하지만 기둥이 너무 거대해서 새로운 싹이 자랄 틈을 주지 못했다는 비판도 이제는 직시해야 합니다." 김 의원의 이 말은 현재 민주당이 마주한 딜레마를 정확히 관통합니다.

이른바 '386(30대·80학번·60년대생)'으로 불리며 한국 정치의 주류를 형성해 온 이들은 이제 '686(60대)'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퇴조는 단순한 생물학적 노화가 아닌, 정치적 효능감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주 발표한 '2026년 정당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30 세대 응답자의 62%가 민주당을 '기득권 꼰대 정당'으로 인식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5년 전인 2021년 조사 대비 15%포인트나 급증한 수치입니다.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현실의 문제입니다. 마포구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32세 이진우 대표는 "운동권 선배들이 민주화는 이뤘을지 몰라도, 그들이 만든 규제와 노동 시장의 경직성은 우리 같은 후배들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이 전 대표의 병상은 이러한 세대 간 단절과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더욱 뼈아픈 지적은 내부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연구원이 지난달 비공개로 작성한 전략 보고서는 "과거의 민주화 훈장만으로는 AI와 기후 위기 시대의 유권자를 설득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보고서는 현재 당의 의사결정 구조가 80년대 학번 출신 중진들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와 글로벌 정세에 둔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해찬 전 대표로 대표되는 '전략통'들의 방식—조직 동원과 이념 대결—이 2026년의 알고리즘 기반 여론 지형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짐을 지는 자의 유산, 그리고 작별

이해찬 전 대표가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지금, 여의도 정가는 단순히 한 원로 정치인의 부재를 넘어선 거대한 공백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민주당의 역사에서 언제나 가장 고독한 '악역'을 자처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이상을 설파할 때 이해찬은 국무총리로서 보수 야당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방탄조끼' 역할을 수행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당 대표로서 잡음 없는 당청 관계를 위해 '버럭 해찬'이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내부 기강을 다잡았습니다. 정치평론가 박상병이 "이해찬은 민주당이 필요로 할 때마다 기꺼이 진흙탕에 발을 담근 유일한 전략가"라고 평했듯, 그의 30년 정치 인생은 누군가는 반드시 짊어져야 했지만 아무도 원치 않았던 '시대의 짐'을 묵묵히 감당해 온 과정이었습니다.

그의 위중설은 결국 민주당을 30년 가까이 지배해 온 '86그룹(386세대)'의 시대가 생물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에 맞선 투쟁심과 동지애로 뭉친 그들의 리더십은 강력한 결속력을 발휘했지만, 이제는 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초개인화된 2026년의 유권자 지형 앞에서는 더 이상 유효한 만능키가 될 수 없습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이 "이해찬 대표가 있을 때는 그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왔지만,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두려운 시기가 왔다"고 토로한 것은 당 내부의 깊은 불안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결국 민주당이 마주한 과제는 명확합니다. '이해찬 이후'를 준비하는 것은 또 다른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제2의 이해찬'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직관적 전략을 객관적인 '시스템'으로 이식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특정 개인의 천재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정당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시스템 정당으로의 체질 개선만이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민주당의 가치를 보존하는 길입니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고, 책임은 질수록 무거워진다"던 그의 지론처럼, 이제 민주당은 그가 홀로 짊어졌던 그 무거운 책임을 시스템으로 분산시켜 감당할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평생을 '짐을 지는 자'로 살아온 그가 남긴 마지막 숙제이자, 그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정당한 작별 인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