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털리의 유산: 14억 인도의 마음을 얻은 '진정한 소통'의 기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인도인, 인도가 가장 사랑한 영국인
2026년 1월의 어느 날, 뉴델리의 겨울 안개처럼 무거운 침묵이 인도를 덮쳤습니다. BBC의 전설이자 30년 넘게 '인도의 목소리'로 불렸던 마크 털리(Sir Mark Tully)의 부고가 전해진 직후였습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즉각 "인도의 영혼을 가장 깊이 이해한 이방인이 떠났다"며 애도를 표했고, 델리 니잠무딘(Nizamuddin)에 위치한 그의 오래된 자택 앞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행렬이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추모의 물결이 델리의 외교가나 지식인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펀자브의 밀밭을 일구는 농부부터 벵갈루루의 마천루를 오가는 IT 개발자까지, 세대와 계층, 종교를 초월한 이 슬픔의 연대는 그가 단순한 '특파원'의 지위를 넘어섰음을 증명합니다. 인도 유력 일간지 <The Hindu>가 사설을 통해 "우리는 가장 정직한 거울을 잃었다"고 평한 것은 결코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혈통상 명백한 영국인이었지만, 인도인들에게는 존경을 담은 호칭인 '털리 사힙(Tully Sahib)'으로 불렸습니다. 1984년 인디라 간디 암살 사건이나 1992년 바브리 성원 파괴 사건(Babri Masjid demolition)과 같은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인도 국민들은 자국 국영 방송이나 관영 매체 대신 털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털리가 보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직 사실이 아니다"라는 1990년대의 유행어는, 그가 획득한 신뢰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절대적 신뢰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런던의 데스크가 요구하는 '서구적 렌즈'를 거부하고, 흙먼지 날리는 인도의 현장 한복판으로 들어갔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서구 기자들이 인도의 빈곤을 타자화하거나 혼란을 가십거리로 소비할 때, 털리는 그 이면에 꿈틀대는 인도의 생명력과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껴안았습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이 마크 털리의 삶에서 읽어내야 할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현재 뭄바이와 델리의 거리에는 삼성과 현대의 거대한 광고판이 걸려 있고, 우리 기업들은 14억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들을 '시장(Market)'이 아닌 '사람(People)'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마크 털리의 위대함은 유창한 힌디어 실력이나 방대한 취재 네트워크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은 '연민'과 '존중'에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K-POP과 반도체를 넘어, 한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소통의 기술'입니다.
'항공낙하산 저널리즘'을 거부하다: 델리의 골목에서 찾은 진실
국제 분쟁 지역이나 재난 현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긴박한 표정을 짓다가, 라이브가 끝나면 곧장 5성급 호텔 로비로 돌아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서구 언론의 특파원들입니다. 우리는 이를 '낙하산 저널리즘(Parachute Journalism)'이라 부릅니다. 사건의 맥락보다는 자극적인 파편만을 수집해 본국으로 송출하고, 이슈가 식으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 방식은 현지의 진실을 왜곡하기 일쑤입니다.
마크 털리는 이 '낙하산 부대'의 정반대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30년 넘게 인도의 흙먼지 속에 머물렀습니다. 1984년, 인도 정부가 시크교의 성지인 황금사원(Golden Temple)에 군대를 투입한 '블루스타 작전(Operation Blue Star)' 당시, 그는 뉴델리의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정부 브리핑을 받아쓰는 대신 이미 구축해 둔 펀자브 현지의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했습니다. 정부 검열을 피해 BBC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된 그의 보도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었습니다. 인도의 복잡한 카스트, 종교, 정치 역학이 어떻게 평범한 이웃을 학살자로 만드는지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에 가까웠습니다.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인도 전문가인 수닐 킬나니(Sunil Khilnani)는 털리에 대해 "그는 인도를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삶'으로 받아들였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털리가 가진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한국 기업이 빠진 '3년의 함정'
오늘날 '글로벌 중추 국가'를 외치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봅시다. 뉴욕, 도쿄, 베이징 등 주요 거점에 파견된 우리 특파원이나 상사 주재원들의 임기는 대개 3년입니다. 현지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질 만하면 짐을 싸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깊이 있는 취재나 비즈니스 관계 형성보다는 현지 유력지의 기사를 번역하거나, 한국 본사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인도를, 베트남을, 혹은 아프리카를 여전히 '시장(Market)'으로만 봅니다. 물건을 얼마나 팔 수 있을지, 인건비가 얼마나 싼지에만 골몰합니다. 하지만 털리는 보여주었습니다. 상대를 시장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그들의 역사와 상처에 깊이 공감할 때 비로소 닫힌 문이 열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델리의 골목에서 털리가 찾은 진실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가장 정확한 보도는 가장 깊은 애정에서 나온다."

서구의 편견에 맞선 '내부자의 시선'
1990년대 초반, 런던의 BBC 뉴스 데스크는 뉴델리 지국에 끊임없이 '전형적인 그림'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원한 인도는 명확했습니다. 먼지 자욱한 거리,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종교 의식에 몰두하는 군중, 즉 '이해할 수 없는 혼돈(Chaos)'이었습니다. 당시 서구 언론에게 인도는 보도의 대상이라기보다,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확인시켜 주는 '전시품'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마크 털리는 이 단선적인 요구에 온몸으로 저항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인도에는 마침표가 없다(No Full Stops in India)>**에서 그는 서구 저널리즘이 범하는 '오만함'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는 "서구 기자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Fly-in), 호텔에 짐을 풀고, 정부 관료 몇 명을 만난 뒤, '인도는 무너지고 있다'는 기사를 쓰고 다시 날아간다(Fly-out)"고 비판했습니다. 소위 '낙하산 저널리즘'이 놓치고 있는 것은 숫자 뒤에 숨겨진 '맥락'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 특히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미디어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교훈을 발견합니다. 현재의 한국은 과거 서구가 그랬던 것처럼, 동남아시아나 인도를 거대한 '소비 시장'이나 '생산 기지'로만 대상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K-팝과 K-드라마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자부심 뒤편에는, 타문화를 우리의 잣대로만 재단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싹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인도 러시', 우리는 제2의 마크 털리를 가졌는가?
최근 서울 테헤란로의 투자 설명회장은 '넥스트 차이나'를 찾는 자본의 열기로 뜨겁습니다. 한국무역협회(KITA)의 2024년 보고서가 인도를 "공급망 다변화의 최적지"로 지목한 이래,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필두로 한 한국 기업들의 '인도 러시(India Rush)'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었습니다. 뭄바이와 첸나이 공단에서는 '빨리빨리' 정신으로 무장한 한국 주재원들이 밤낮없이 생산 라인을 점검합니다.
그러나 뉴델리 구르가온(Gurgaon)의 한국 기업 밀집 지역을 취재하며 만난 한 현지 채용 매니저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한국 관리자들은 엑셀 시트 안의 숫자는 완벽하게 파악하지만, 그 숫자를 만드는 노동자가 왜 디왈리(Diwali) 축제 때 고향에 가야만 하는지, 왜 그들의 시간관념이 한국과 다른지는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인도는 거대한 공장일 뿐,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코트라(KOTRA) 뭄바이 무역관의 자료를 보면, 현지 진출 한국 기업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규제'나 '인프라'가 아닌 '노무 관리'와 '문화적 충돌'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인도를 시장(Market)으로만 정의하고, 이웃(Neighbor)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입니다. 마크 털리가 캘커타의 뒷골목에서 인력거꾼과 짜이(Chai)를 마시며 그들의 삶을 청취할 때, 우리의 주재원들은 한인 식당 룸에서 한국 뉴스를 보며 서울 본사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디지털 시대, '느린 저널리즘'의 가치
초연결 사회의 역설은 '연결'될수록 '단절'된다는 점입니다. 15초짜리 숏폼(Short-form) 영상이 세상을 설명하고, 인공지능이 1초 만에 기사를 쏟아내는 2026년의 미디어 환경에서, 마크 털리가 고수했던 '느린 저널리즘(Slow Journalism)'은 시대착오적인 비효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신뢰의 자산'이 됩니다.
옥스퍼드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2025년 보고서가 지적했듯, 뉴스 회피 현상(News Avoidance)의 주된 원인은 정보 부족이 아니라, 파편화된 정보가 주는 피로감입니다. 30년 넘게 인도 델리에 머물며 10억 인구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털리의 방식은 '낙하산 저널리즘'과 극명히 대조됩니다.
진정한 소통은 '다운로드 속도'가 아니라 '스며드는 깊이'에서 나옵니다. 털리가 영국인이면서도 인도인들에게 '우리 털리(Our Tully)'라고 불릴 수 있었던 힘은, 그가 대상을 타자화(Othering)하지 않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노력했던 끈기 있는 '듣기'에 있었습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꿈꾸는 한국이 갖춰야 할 경쟁력은 더 빠른 반도체나 더 화려한 K-팝뿐만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존중하며 기다려줄 줄 아는 '태도의 품격'입니다. 그것이 바로 디지털 소음 속에서 진짜 목소리를 전달하는 유일한 주파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