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애폴리스의 끝나지 않은 겨울: 2020년의 유령과 신뢰의 위기

혹독한 1월의 총성
미네소타의 1월은 혹독합니다. 미시시피 강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은 한국의 철원 최전방에서나 느낄 법한 칼바람처럼 살을 파고듭니다. 하지만 2026년 1월, 미니애폴리스의 시민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추위가 아닙니다. 지난 주말, 영하 20도의 정적을 찢은 것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끔찍한 총성이었습니다.
"또 시작이구나."
미네소타 대학교(UMN) 인근 디키타운(Dinky Town)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학생 김민지(가명, 24세) 씨는 스마트폰 화면에 뜬 'Safe-U' 긴급 알림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이 도시는 전 세계를 향해 치유와 개혁을 약속했습니다. 시 의회는 경찰 예산 재분배를 논의했고, 커뮤니티 주도의 치안 모델이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현장의 데이터는 차가운 현실을 웅변합니다. 미니애폴리스 경찰국(MPD)의 2025년 연말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살인 및 총기 관련 강력 범죄율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높은 고원(plateau)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레이크 스트리트(Lake Street)를 따라 늘어선 상점들의 풍경은 이 '구조적 상처'를 시각적으로 증명합니다. 2020년 시위 당시 화염에 휩싸였던 건물들 중 일부는 재건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가게가 해가 지기도 전인 오후 5시면 서둘러 셔터를 내립니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터전을 닦아온 교포 이 모 씨는 "과거에는 늦은 밤까지 손님을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해가 지면 손님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온다"고 토로합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위축이 아닙니다. 행정력의 공백이 시민들의 경제 활동과 일상을 물리적으로 잠식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입니다.

통계의 착시와 치안의 공백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때로는 진실의 단면만을 보여주며 현실을 가리기도 합니다. 2025년 미니애폴리스 경찰국(MPD)이 발표한 데이터만 보면, 도시는 치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살인 사건은 전년 대비 16% 감소했고, 강도 및 차량 탈취 범죄는 통계상 급감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미네소타 대학 근처에서 차량 절도 피해를 입은 김민수(24, 가명) 씨에게 MPD의 통계는 공허한 숫자에 불과합니다. 김 씨에게 '치안 안정'은 엑셀 파일 속의 이야기일 뿐, 현실은 여전히 '각자도생'의 정글과 같습니다.
이러한 괴리감의 근원에는 '치안 공백(Security Vacuum)'이라는 구조적 허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9년, MPD는 약 900명의 경관이 순찰하는 조직이었으나, 2024년 3월 그 숫자는 560명대까지 추락했습니다. 2025년 5월 현재 588명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이는 여전히 40%에 가까운 인력이 증발한 상태이며, 시 헌장(City Charter)이 규정한 최소 경찰 인력인 731명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법이 정한 안전의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 이미 수년이 지났습니다.
미니애폴리스 치안의 역설: 인력 급감과 살인 범죄 추이 (2019-2025)
MPD의 인력 부족은 단순한 '일손 부족'을 넘어 공권력의 대응 능력 상실을 의미합니다. 미네소타 공영라디오(MPR) 등의 분석에 따르면, 인력 난은 신고 후 현장 도착 시간(Response Time)의 지연으로 직결됩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교포는 "이제는 911을 불러도 경찰이 제때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범죄율의 하락이 치안의 회복이 아니라, 신고 포기로 인한 '통계적 착시'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경찰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학습된 무력감은 시민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침묵의 엑소더스와 경제적 비용
총성보다 더 무섭게 미니애폴리스의 심장을 갉아먹는 것은 바로 '침묵의 엑소더스'입니다. 우리는 흔히 강력 범죄 건수에 집중하지만, 도시의 진짜 위기는 사건 현장의 폴리스 라인 밖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니애폴리스의 상징적인 상권이었던 업타운(Uptown)과 레이크 스트리트 곳곳에는 '임대(For Lease)' 표지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신호가 아닌, 2020년 이후 회복되지 않은 치안 불안이 자본과 사람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경제적 망명' 현상입니다.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 협의회(MDC) 보고서 등에 따르면 도심 사무실 공실률은 팬데믹 이전 대비 크게 상승했습니다. 현지 한인 상공인들은 "저녁 8시만 되면 거리가 암흑천지로 변해 저녁 장사가 사라졌다"고 증언합니다. 치안 부재가 '저녁이 있는 삶'을 넘어 '저녁 경제'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미네소타 대학교 도시연구소의 분석은 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과 소상공인 폐업률 사이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치안 불안으로 상점이 떠나고 세수가 줄어들며, 이는 다시 공공 안전 예산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입니다.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의 보고서 역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도시에 혁신 자본은 머물지 않는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미니애폴리스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외곽 서브어번(Suburban) 지역이나 타 주(State)로 이주하는 경향이 관찰됩니다. 총성이 멈춘 뒤에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과 텅 비어가는 거리,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절망감은 도시가 겪고 있는 진짜 공포입니다.
분열된 사회를 향한 경고
미니애폴리스의 거리에 다시금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이것을 단순한 치안 공백이나 일시적인 행정 실패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2020년 이후 시 당국은 수많은 개혁을 시도했지만, 행정적 처방이 시민들의 심리적 장벽까지는 철거하지 못했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면 족하지만, 깨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냉혹한 교훈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뢰 적자(Trust Deficit)' 현상은 공권력과 시민 사회 간의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경찰은 소송과 비난을 우려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지역 사회는 신고를 꺼리는 불신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치안 시스템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그것을 작동시키는 '상호 신뢰'라는 소프트웨어가 손상되면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정책 연구자들과 국제 사회에 미니애폴리스의 사례는 서늘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다가옵니다. 세대 간, 계층 간, 정치 성향 간의 양극화(Polarization)가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소진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공권력이 정파적 도구로 의심받거나 법 집행의 공정성이 신뢰를 잃는 순간, 사회적 안전망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2026년의 미니애폴리스는 갈등을 봉합하지 않은 채 덧씌운 미봉책은 결국 다시 터져버릴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사회적 합의 없는 치안 강화는 사상누각임을 고통스럽게 증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