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청구서: 7억 8,750만 달러와 미디어의 잃어버린 신뢰

진실을 겨눈 20발의 탄환
2020년 11월의 워싱턴은 차가웠지만, 전파를 타고 흐르는 공기는 뜨겁다 못해 데일 듯했습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해지던 그 시점, 폭스 뉴스(Fox News)의 스튜디오에서는 단순한 선거 불복을 넘어선, 정교하게 조립된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즈(Dominion Voting Systems)가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명시된 '20건의 방송과 트윗'은 우발적인 오보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진실'이라는 과녁을 향해 발사된 20발의 정조준 사격이었습니다.
당시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였던 마리아 바티로모(Maria Bartiromo)의 방송은 그 포문을 여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11월 8일, 그녀는 트럼프 캠프의 변호인이었던 시드니 파월을 초대해 "도미니언의 소프트웨어가 트럼프 표를 바이든 표로 바꾸는 알고리즘을 사용했다"는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냈습니다. 단순한 의혹 제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증거가 있다"는 파월의 말에 바티로모는 "엄청난 이야기"라며 맞장구를 쳤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사실'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인 '교차 검증'이 실종된 현장이자, '팩트'가 '내러티브'의 하위 재료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진 루 돕스(Lou Dobbs)와 지닌 피로(Jeanine Pirro)의 방송은 이 프레임을 더욱 강화하고 구체화했습니다. 그들은 도미니언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과 연관되어 있다는, 첩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음모론을 뉴스라는 포장지에 싸서 배달했습니다. 돕스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도미니언이 선거 사기를 저질렀다"는 내용을 직접 게시하며 방송의 파급력을 온라인으로 확장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당시 상황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내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는 그들이 카메라 뒤에서는 이 주장들을 "미친 소리(crazy)"라고 비웃거나 "터무니없다"고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뉴스룸의 딜레마와 침묵의 카르텔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즈가 폭스 뉴스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수천 페이지 분량의 내부 문건은, 현대 저널리즘이 직면한 가장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2020년 대선 직후,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 터커 칼슨(Tucker Carlson)은 동료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트럼프 측 변호인 시드니 파월을 향해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미친 짓이다"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카메라 앞에서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오보나 취재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뉴스룸의 공기는 '팩트 확인'이 아닌 '시청자 기분 맞추기'라는 새로운 지상 과제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법원에 제출된 증거들은 폭스 뉴스 경영진과 스타 앵커들이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숀 해니티(Sean Hannity), 로라 잉그레이엄(Laura Ingraham) 등 주요 진행자들은 사석에서 선거 사기 주장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방송에서는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했습니다.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회장조차 이들의 주장이 "정말 미친 소리(Really crazy stuff)"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중단시키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 답은 시청률 그래프에 있었습니다. 당시 폭스 뉴스는 트럼프 지지층의 분노를 대변하던 신생 경쟁사 뉴스맥스(Newsmax)에게 시청자를 뺏길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 시청자들은 팩트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로와 확신을 원한다." 이 암묵적인 합의가 뉴스룸을 지배했고, 진실을 말하는 기자는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내부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확증 편향이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모델
폭스 뉴스의 내부 이메일은 단순한 소통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실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편익 분석’ 보고서에 가까웠습니다. 2020년 미 대선 직후, 폭스 뉴스가 애리조나주에서 조 바이든 당시 후보의 승리를 가장 먼저 예측했을 때, 그들은 언론으로서의 ‘특종’을 잡았지만 비즈니스로서의 ‘재앙’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굳게 믿고 싶어 했던 핵심 시청자층이 배신감을 느끼며 뉴스맥스나 OANN 같은 극우 성향의 경쟁 매체로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확증 편향 비즈니스’는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 시청자가 원하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라는 위험한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2023년 공개된 법정 진술에서 폭스 뉴스 프로듀서들은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회사의 실존적 위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미디어 기업이 이윤 추구라는 명목 하에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장'을 어떻게 오염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사례입니다.
폭스뉴스 시청률 변화와 신뢰도 상관관계 (출처: Nielsen & Pew Research Center)
승소 혹은 미봉책, 합의가 남긴 그림자
7억 8,750만 달러(한화 약 1조 500억 원).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즈가 폭스 뉴스로부터 받아낸 이 천문학적인 합의금은 수치상으로는 분명한 승리였습니다.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가 '고의적인 악의'를 가진 거짓말까지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델라웨어주 상급법원의 에릭 데이비스 판사가 배심원단 선정 직후 재판 개시를 선언하려던 찰나에 타결된 이 극적인 합의는, 역설적으로 진실 규명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앗아갔습니다.
폭스 뉴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대가로, 자사의 간판 앵커들이 증인석에 서서 선서하고 자신들의 거짓 보도를 시인하는 '공개적 굴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터커 칼슨이나 숀 해니티가 생방송 중에 시청자들의 눈을 바라보며 "우리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방송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끝내 연출되지 않았습니다. 폭스 측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모호하고 건조한 성명서 한 장으로 상황을 갈무리했습니다. 이는 "진실의 사유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으며, 자본이 충분하다면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돈으로 해결하고 기존의 왜곡된 서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냉혹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바다 건너의 경고, 한국 미디어의 자화상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한국 언론과 미디어 생태계에도 서늘한 경고장을 날립니다. 2026년 현재, 한국의 유튜브 저널리즘과 정파적 미디어 환경은 폭스 뉴스가 빠졌던 '확증 편향의 늪'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1인 미디어와 일부 정치 채널들은 사실 확인보다는 지지층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적했듯, 한국 이용자의 유튜브 뉴스 소비 비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며, 이곳의 알고리즘은 '진실'보다 '체류 시간'과 '후원금'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한국에서 '제2의 도미니언 사태'가 재현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미국만큼 강력하지 않아 가짜 뉴스로 얻는 수익이 법적 리스크 비용을 압도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도미니언 소송이 남긴 진짜 교훈은 법적 배상액이 아니라 '신뢰의 붕괴'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입니다. "뉴스는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검증의 영역"이라는 원칙이 무너진 자리에는 음모론과 혐오가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습니다.
신뢰의 복원, 알고리즘을 넘어선 저널리즘
결국 7억 8,750만 달러라는 거액의 청구서도 '거짓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폐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2026년 오늘, 우리는 여전히 확증 편향을 자양분 삼는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실 검증(Fact-checking)'을 개별 기자의 양심이 아닌, 시스템 차원의 인프라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기사의 생산 과정과 출처의 투명성을 표준화하여 독자에게 공개하는 '입증 책임의 저널리즘'이 요구됩니다.
더불어 기술적 해법만큼이나 시급한 것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전면적인 재편입니다. AI가 텍스트를 넘어 목소리와 얼굴까지 정교하게 조작하는 2026년의 딥페이크 시대에,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은 민주 시민의 생존 기술이 되었습니다. 신뢰는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결과값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검증과 투명한 소통, 그리고 사실을 향한 집요한 헌신을 통해서만 복원될 수 있는, 인간 저널리즘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