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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인질 외교: 석방 제안 뒤에 숨겨진 90억 달러의 딜레마

AI News Team
탈레반의 인질 외교: 석방 제안 뒤에 숨겨진 90억 달러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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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에서 날아온 신호

카불의 겨울바람은 여전히 매섭지만, 최근 아프가니스탄 외무부 청사에서 워싱턴을 향해 발신된 메시지의 온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2021년 8월,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뒤덮었던 혼란과 절규가 잦아들고 미군이 철수한 지 어느덧 4년이 흘렀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우크라이나와 가자로 분산된 사이, 잊혀진 전쟁터였던 아프가니스탄은 다시금 조용하지만 묵직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탈레반 과도 정부의 아미르 칸 무타키 외무장관이 최근 공개적으로 언급한 '조건부 미국인 포로 석방' 제안은, 철수 3주년을 기점으로 더욱 공고해진 서방의 경제 제재와 외교적 고립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치밀한 수싸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제안을 단순한 인도주의적 제스처로 해석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절박합니다. 카불의 시장, '바자르'의 상인들은 화폐 가치 폭락으로 수입 밀가루 포대를 뜯는 것조차 주저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제재로 동결된 7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자산은 아프가니스탄 경제의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제안을 두고 "탈레반이 미국 시민의 신병(身柄)이라는 가장 민감한 지렛대를 이용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지속되어 온 미국의 '전략적 무시(strategic neglect)'를 강제로 종료시키려 한다"고 분석합니다. 즉, 포로 석방은 목적이 아니라, 제재 해제와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인 셈입니다.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과거 북한이 억류한 외국인을 볼모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했던 벼랑 끝 전술의 기시감이 카불의 제안에서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2025년 중동 보고서가 지적하듯, 미국은 지금 명백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자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제1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그들과 공식적인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합니다. 그러나 펜타곤과 국무부 내 강경파들이 우려하듯, 그러한 만남 자체가 탈레반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인정하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위험이 있습니다. 카불에서 날아온 이 신호는 단순한 인질 협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자국민의 생환이라는 현실적 이익 사이에서 미국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 2026년 국제 외교의 가장 날카로운 시험대입니다.

라이언 코벳과 잊혀진 이름들

2022년 8월, 아프가니스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라이언 코벳(Ryan Corbett)의 시간은 멈췄습니다. 그는 미군 철수 후 혼란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수많은 서방인들과 달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인물이었습니다. 코벳은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010년부터 12년 동안 가족과 함께 카불에 거주하며 현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프가니스탄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비정부기구(NGO) '블룸 아프가니스탄(Bloom Afghanistan)'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지역 사회에 소액 금융(Microfinance)을 제공하여 아프가니스탄 소상공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탈레반 재집권 이후 경제적 붕괴에 직면한 현지 직원들과 파트너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입국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 보안군은 그를 환영하는 대신, '반국가 활동'이라는 모호한 혐의를 씌워 그를 체포했습니다.

코벳의 구금은 단순한 억류가 아닙니다. 그의 아내 안나 코벳(Anna Corbett)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라이언은 창문 없는 지하 감방에 갇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영양실조와 정체불명의 발작 증세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남편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그녀의 호소는,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단순한 외교적 안건을 넘어선 실존적 고통을 전달합니다. 코벳은 탈레반에게 있어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서방 세계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인질 자산'인 셈입니다.

코벳의 이름 뒤에는 잊혀질 위기에 처한 또 다른 이름들이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마흐무드 하비비(Mahmood Habibi) 역시 코벳과 같은 시기에 구금되었습니다. 통신 회사인 ARX 커뮤니케이션의 고문으로 일하던 하비비는 카불의 셰르푸르 지역에 대한 미군의 드론 공습 직후 체포되었습니다. 탈레반은 그가 미군의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 제거 작전에 연루되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비비의 가족들은 그가 민간 항공 전문가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그의 생사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2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거래의 조건: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

탈레반이 내민 청구서는 명확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포로 교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정교하게 계산된 '생존 방정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카불의 권력자들에게 라이언 코벳과 마흐무드 하비비는 단순한 수감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굳게 닫힌 국제 금융 시스템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자, 말라버린 국가 재정을 단번에 해갈할 '살아있는 담보'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거래의 대가가 단순히 인적 교환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최근 보고서가 지적하듯,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85%가 빈곤선 아래로 추락한 상황에서 탈레반 정권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면죄부가 아니라 당장 쓸 수 있는 '달러'입니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 각국에 동결된 아프가니스탄 중앙은행(DAB) 자산은 약 90억 달러(한화 약 12조 원)에 달합니다. 탈레반은 미국 시민의 신병을 고리로 이 막대한 자금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나아가 국제사회로부터 '정상 국가'로서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한반도 안보 지형에서 우리가 수십 년간 목격해 온, 생존을 위해 위기를 고조시키는 북한의 외교 전술을 연상케 합니다. 서울의 외교가에서 흔히 거론되는 "위기의 자산화" 전략이 카불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윌슨 센터(Wilson Center)의 분석가들은 이번 제안을 두고 "탈레반이 서방의 '인권 딜레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고 평가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민 보호라는 헌법적 책무와 테러 집단과의 타협 불가라는 외교적 원칙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협상의 딜레마: 정당성이라는 함정

미국 정부가 마주한 가장 뼈아픈 딜레마는 탈레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들의 '인질 외교(Hostage Diplomacy)'가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유효한 전략임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워싱턴의 외교가와 싱크탱크들은 이를 두고 "악마와의 거래(Deal with the Devil)"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억류된 라이언 코벳이나 조지 글레즈만과 같은 자국민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이지만, 그 대가로 탈레반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나 자산 동결 해제에 응하는 것은 곧 탈레반 정권에 정치적 면죄부를 쥐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국제위기감시기구(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최근 분석은 이러한 협상이 탈레반의 사법 체계를 간접적으로 승인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탈레반은 억류된 미국인들을 자신들의 법에 따른 '범죄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석방을 마치 주권 국가가 행하는 '사면'이나 합법적 '수감자 교환'인 양 포장하려 듭니다.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구체적인 조건을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탈레반이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율법 통치를 정상적인 국가의 사법 집행으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입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가 정치적, 경제적 보상이라면, 이는 전 세계의 독재 정권과 무장 단체들에게 '미국 시민은 가장 수익성 높은 협상 카드'라는 잘못된 신호를 송출하는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실제로 과거 이란과의 수감자 맞교환 이후 적대적 국가들이 미국인을 억류하여 외교적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반복되었던 역사는 이러한 경고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2007년의 기억과 한국의 시선

2026년 1월의 아프가니스탄발(發) 타전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닌, 19년 전의 쓰라린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기시감(déjà vu)으로 다가옵니다. 2007년 7월,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되었던 그해 여름은 한국 사회에 깊은 흉터를 남겼습니다. 당시 탈레반은 한국군 철수와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며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를 살해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테러 집단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잔혹한 딜레마를 겪었습니다.

미국이 지금 마주한 선택지는 그때 우리가 겪었던 고통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가 비공개 대면 협상을 통해 인질을 구출해냈을 때, 국제 사회 일각에서는 "테러와의 타협"이라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자국민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 앞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지극히 좁았습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는 라이언 코벳과 마흐무드 하비비의 생사 역시 워싱턴의 원칙론과 인도주의적 절박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탈레반의 전술이 진화했다"고 평가합니다. 2007년의 탈레반이 물리적 철군이라는 가시적 목표를 위해 인질을 이용했다면, 2026년의 탈레반은 국제적 고립 탈피와 자금 동결 해제라는, 훨씬 더 고도화된 정치·경제적 실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상대와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우리에게, '적대적 집단이 자국민을 볼모로 잡았을 때 국가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는 영원한 난제이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의 계산법과 트럼프의 선택

백악관 상황실의 불빛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탈레반이 던진 이번 제안서는 단순한 외교적 협상 카드가 아닙니다. 그것은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한 자국민 보호와 '테러와의 타협 불가'라는 강경한 외교적 수사 사이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워싱턴의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사석에서 이를 두고 "마치 지뢰밭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딜레마는 단순한 정치적 계산을 넘어섭니다. 최근 헤리티지 재단의 비공개 메모가 지적했듯, 탈레반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는 단순히 아프가니스탄의 경제적 숨통을 틔워주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는 국제 사회가 탈레반 정권을 합법적인 통치 주체로 인정하는 첫 번째 도미노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인질 석방을 대가로 제재의 빗장을 푼다면, 이는 전 세계의 '불량 국가'들에게 위험한 시그널을 보내는 셈이 됩니다. "미국 시민을 억류하면, 닫혀있던 달러 금고가 열린다"는 잘못된 학습 효과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국무부 내부 매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국 공은 다시 대통령의 집무실, 오벌 오피스로 넘어갔습니다. 인질 가족들의 절박한 호소는 매일 아침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백악관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라(Bring them home)"는 구호는 그 어떤 지정학적 논리보다도 트럼프의 지지층인 'MAGA' 유권자들에게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차가운 이성으로 국제 질서의 붕괴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뜨거운 쇼맨십으로 국민의 환호를 이끌어낼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거래적 외교의 시대가 오는가

탈레반이 제시한 '미국인 수감자 석방'이라는 카드는 표면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제스처로 포장되어 있으나, 그 이면에는 국제 제재라는 거대한 댐에 균열을 내기 위한 정교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지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제 관계가 '가치(Value)' 중심에서 철저한 '거래(Transaction)'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이러한 '인질 외교' 혹은 '자산화된 인간(Human Assets)'이 외교 테이블의 메인 칩으로 등장하는 현상을 목격해 왔습니다. 러시아가 악명 높은 무기상 빅토르 부트와 여자 농구 스타 브리트니 그라이너를 맞교환했던 사례나, 이란이 수감자 석방의 대가로 한국에 동결되어 있던 60억 달러의 자금 해제를 이끌어낸 사례는 더 이상 예외적인 일탈이 아닙니다. 이제 외교관의 협상력은 국제법 준수 여부가 아니라, 상대가 인질로 잡은 생명의 무게를 견적서에 어떻게 기입하느냐에 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거래적 외교의 시대'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탈레반의 이번 제안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억류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구의 제재는 인질을 통해 언제든 뚫을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를 국제 사회에 각인시키게 될 것입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면서도, 냉혹한 거래의 테이블에서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 2026년의 외교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기를 두드릴 수 있느냐를 묻는 잔인한 시험대 위에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