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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AI 요새'와 앨라배마의 반란: 전력망이 가른 기술 패권의 미래

AI News Team
트럼프의 'AI 요새'와 앨라배마의 반란: 전력망이 가른 기술 패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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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붉은 주(Red State)의 반란: 왜 앨라배마는 트럼프의 AI 꿈을 거부하는가

앨라배마주 헌츠빌(Huntsville) 외곽, 끝없이 펼쳐진 목화밭 사이로 거대한 송전탑들이 흉물처럼 솟아오를 예정이었던 자리에는 현재 'No Data Center, Save Our Grid(데이터센터 반대, 우리 전력망을 지켜라)'라고 적힌 붉은 팻말만이 박혀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 2024년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62%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심장부입니다. 하지만 2026년 1월 현재, 이곳은 트럼프 행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AI 인프라 행정명령'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동지가 경제적 적으로 돌변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과 실리콘밸리의 테크 거인들이 간과했던 '물리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앨라배마 공공서비스 위원회(PSC)의 최근 회의록을 분석해보면, 지역 공화당 의원들은 "우리의 전기를 캘리포니아 빅테크의 배를 불리는 데 쓸 수 없다"며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를 사실상 동결시키는 조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여당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 지자체가 중앙 정부의 핵심 국책 사업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거부하고 나선 것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목장주이자 30년 차 공화당 당원인 제임스 헨리(64) 씨의 말은 이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우리는 트럼프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가 보낸 아마존과 구글의 데이터센터들이 우리 마을의 전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그 결과 내 농장의 전기요금이 40%나 폭등한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이건 애국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테네시강 유역 개발청(TVA)이 2025년 말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앨라배마와 테네시 접경 지역에 계획된 3개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완공될 경우, 이 지역의 예비 전력률은 15%에서 위험 수위인 4%대로 급락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지난겨울 텍사스 한파 당시 겪었던 '블랙아웃'의 공포가 남부 전역에 '전력 안보'라는 새로운 보수주의 어젠다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골드만삭스의 2025년 하반기 에너지 리포트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AI 붐이 '전력 병목(Power Bottleneck)'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고 진단했습니다.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30년까지 전체 전력의 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며, 송배전망 현대화 없이는 AI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의 야망과 달리, 지방 정부들은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 '님비(NIMBY)'를 넘어 '님투(NIMTOO, Not In My Term Of Office: 내 임기 중엔 절대 안 돼)'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붉은 주의 반란'은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의 AI 확장이 더 이상 엔비디아의 칩 공급 속도가 아닌, 변압기와 송전선로의 설치 속도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LS일렉트릭이나 효성중공업 같은 한국의 전력 기기 업체들이 앨라배마발(發)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트럼프의 AI 꿈이 앨라배마의 낡은 전봇대 앞에서 멈춰 선 지금, 역설적으로 '에너지 효율화'와 '독립형 전력원(SOFC 등)' 기술을 가진 기업들에게는 전례 없는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2. '전기 먹는 하마'의 습격: 데이터센터가 마을을 삼키다

"처음엔 이명(耳鳴)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창문을 닫아도, 귀마개를 해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더군요. 마치 거대한 기계 뱃속에 들어와 사는 기분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의 '그레이트 오크' 주택가에 거주하는 데일(54) 씨는 집 뒷마당을 가리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불과 8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축구장 10개 크기의 거대한 회색 요새, AWS의 데이터센터가 24시간 웅웅대며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데이터센터 냉각팬이 뿜어내는 '저주파 소음'입니다. 2026년 현재,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시위는 단순한 님비 현상을 넘어, AI 산업이 '에너지 안보'와 '지역 정치'라는 거대한 물리적 장벽에 충돌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소음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물'입니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과 대화할 때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양의 물을 '마십니다'. 2024년 구글의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은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17% 증가한 약 60억 갤런(약 227억 리터)의 물을 데이터센터 냉각에 사용했습니다.

빅테크 기업의 연간 물 소비량 증가 추이 (단위: 10억 갤런)

특히 가뭄에 시달리는 애리조나주와 같은 서부 지역에서, 이러한 '물 먹는 하마'의 등장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지역 농부들은 "농업 용수도 부족한 판에 AI가 우리 우물을 말리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엔비디아의 GPU 공급량에만 주목하지만, 정작 그 GPU를 돌릴 전기가 없어 '더러운 전기(Dirty Energy)'라도 끌어다 써야 하는 것이 미국의 현실입니다. 골드만삭스는 2024년 보고서에서 "AI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가 미국의 전력망 인프라 투자를 10년 이상 앞당겨야 할 만큼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3. 낡은 전선이 발목 잡은 AI 혁명: 미국의 그리드(Grid) 위기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목격된 전력 부족 사태는 결코 국지적인 '해프닝'이 아닙니다. 이는 미국 전역의 전력망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동맥경화'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최신 칩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그 고성능 칩을 돌릴 전기는 1970년대에 깔린 구리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물리적 리스크' 그 자체입니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송전선의 70% 이상이 수명 연한인 25년을 이미 넘긴 상태입니다. 이는 마치 최신 페라리 엔진을 달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려는 것과 같습니다.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의 조셉 랜드 선임 연구원은 "발전소를 짓는 속도보다 전선에 연결하는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지는 '인터커넥션 큐(Interconnection Queue)' 현상이 AI 혁신의 최대 병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대 초반 3년이었던 그리드 연결 대기 시간은 2026년 현재 평균 6년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미국 그리드 연결 대기 용량 폭증 (단위: GW)

이러한 '전력 동맥경화'는 데이터센터의 성지라 불리는 버지니아주 라우든 카운티에서 이미 현실화되었습니다.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70%가 거쳐 가는 이곳에서, 지역 전력 회사인 도미니언 에너지는 이미 신규 데이터센터 접속을 사실상 무기한 대기 상태로 돌렸습니다. 이는 HD현대일렉트릭이나 LS일렉트릭과 같은 한국 기업들이 북미 시장에서 '슈퍼 사이클'을 맞이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4. 용인 클러스터의 거울: 한국이 마주할 '송전탑' 데자뷔

미국의 에너지 위기를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부인 용인 클러스터가 정확히 같은, 어쩌면 더 가혹한 '물리적 교착 상태'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공장은 3일 만에 지을 수 있어도, 전기는 3년이 걸려도 못 끌어온다"는 반도체 업계의 자조는 엄살이 아닙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의 분석에 따르면, 용인 클러스터가 가동되는 2030년대 중반부터는 수도권에만 최소 10GW 이상의 추가 전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해안의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나를 HVDC 건설 사업은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으로 수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민들의 연대와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증설 불허 사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예상 전력 수요 vs 수도권 송전 여유 용량 (단위: GW)

결국 용인 클러스터의 성공 여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세 공정 기술 확보뿐만 아니라, 강원도의 산악 지대를 넘어 경기도로 이어지는 송전탑 하나를 세울 수 있느냐는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습니다. 2026년 이후의 AI 전쟁은 칩(Chip)을 넘어 옴(Ohm, 저항)과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5. 대안은 있는가: 원전과 SMR, 그리고 빅테크의 자구책

펜실베이니아주 서스퀘하나 강변, 1979년 미국 최악의 원전 사고로 멈춰 섰던 스리마일섬(TMI) 원자력 발전소가 202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심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2024년 9월, MS가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체결한 20년 장기 전력 구매 계약(PPA)은 월가와 실리콘밸리에 명확한 시그널을 보냈습니다. "AI 패권의 병목은 이제 GPU가 아니라 전력(Power)이다."

빅테크들은 송배전망을 거치지 않고 발전소에서 데이터센터로 전력을 직접 끌어오는 '비하인드 더 미터(Behind-the-Meter)' 전략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송전망 대기열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아예 전력망을 우회하는 직거래를 택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구글과 아마존은 2030년 이후를 내다보며 소형모듈원전(SMR)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베팅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리서치는 SMR이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는 두산에너빌리티 등 원전 주기기 제작 능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에게는 '슈퍼 사이클'의 기회이지만, 동시에 자체 SMR 설계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단순 하청 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결국 빅테크의 '원전 러시'는 단순한 투자 트렌드가 아닙니다. "전력을 확보하는 자가 AI를 지배하고, AI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냉혹한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6. 결론: 전기를 지배하는 자가 칩을 지배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AI 패권을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느냐'의 소프트웨어 전쟁으로 착각해왔습니다. 하지만 2026년 오늘, 진짜 전쟁은 '물리적 인프라'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샘 알트만(Sam Altman)이 에너지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언급했을 때, 게임의 룰은 이미 바뀌어 있었습니다. 전기를 지배하는 자가 칩을 지배하고, 칩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가집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은 이제 '전력망 안보(Grid Security)'를 최상위 국정 과제로 격상해야 합니다. 송배전망 확충을 단순한 민원 해결의 영역이 아닌, 국가 안보 차원의 '패스트트랙'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또한, RE100의 압박 속에서 원자력의 기저 부하 능력과 재생에너지를 유연하게 결합하는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가 필연적입니다.

AI 시대, 코딩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코드를 돌릴 거대한 에너지를 24시간 끊김 없이 공급하는 '국가적 역량'은 아무나 가질 수 없습니다. 2026년 이후의 미래는 알고리즘을 짠 천재가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지탱할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연결한 자들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너지 빈국인 대한민국이 역설적으로 찾아내야 할 '승자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