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덫: SNS 규제 지연이 우리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

멈춰버린 시계와 부모들의 눈물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김미정(가명, 45) 씨의 집에는 유독 시간이 멈춘 방이 하나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딸 지민이가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책상 위에는 여전히 2025년 1월의 달력이 걸려 있습니다. 김 씨는 지민이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 여전히 두렵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보고 있던 건 친구들의 소식이 아니었어요. 우울증, 자해, 그리고 '사라지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추천되고 있었죠."
지민이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닙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의 자살률과 우울증 유병률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증가 추세와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특히 10대 여성 청소년의 경우, SNS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마른 몸(Pro-ana)'이나 '우울 전시' 콘텐츠에 노출되는 빈도가 성인 대비 4배 이상 높다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분석은, 이것이 기술적 구조(Architecture)의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피해 부모들의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여의도의 시계는 멈춰 서 있습니다.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아동·청소년의 SNS 이용 시간을 제한하거나 알고리즘 추천을 차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다수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지난 1년여간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IT 업계와 일부 단체에서 제기하는 "과도한 규제가 국내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딪혀 논의가 공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청소년(10대) 스마트폰 과의존 및 우울증 진료 추이 (2021-2025)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입법 지체(Legislative Delay)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경고합니다.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의 한 교수는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콘텐츠를 증폭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며, "성인조차 제어하기 힘든 이 중독적 메커니즘에 판단력이 미성숙한 아동·청소년을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것은 방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영국이 '온라인 안전법(Online Safety Act)'을 통해 플랫폼 기업에 유해 콘텐츠 제거 의무를 부과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연령 적합 설계 코드(Age-Appropriate Design Code)'를 도입해 서비스 설계 단계부터 아동 보호를 의무화하는 동안, 한국은 여전히 '자율 규제'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잠들지 않는다: 중독의 메커니즘
지민이와 같은 아이들이 겪는 고통의 이면에는 정교한 기술적 덫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울 양천구의 또 다른 가정, 학원 숙제를 마친 중학교 2학년 민준(가명, 14세)이 침대에 눕습니다. 방 불은 꺼졌지만, 스마트폰 화면의 푸른 빛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15초짜리 춤 영상, 자극적인 썸네일의 이슈 정리,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머 영상들. 민준이는 "딱 10분만 보다 자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의 졸음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민준이의 단순한 의지력 부족 문제가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정교한 덫, 바로 '가변적 보상(Variable Rewards)'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넷플릭스의 CEO였던 리드 헤이스팅스가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는 디즈니가 아니라 인간의 수면 시간"이라고 공언했던 것처럼, 빅테크 기업들의 알고리즘은 아이들의 잠재된 도파민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수면과 학습, 그리고 건강한 일상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전 구글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스마트폰의 '새로고침(Pull-to-refresh)' 기능을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기는 행위에 비유했습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뇌의 보상 중추를 자극해 끊임없이 화면을 내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이 무방비한 도파민의 전쟁터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만 10~19세)의 40.1%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 4명이 스스로 사용 시간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인(22.7%)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로, 자제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알고리즘의 유혹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방증합니다.
국내 청소년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 추이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시간을 빼앗는 것을 넘어, 알고리즘이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더 자극적이고, 더 양극화된 콘텐츠를 추천한다는 점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사이버 렉카(Cyber Wrecker)'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연예인에 대한 루머나, 특정인을 향한 혐오 표현이 담긴 영상들이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청소년들의 피드에 꽂힙니다. 유튜브와 틱톡의 추천 시스템은 아이들이 한 번 특정 이슈를 클릭하면, 그와 유사하거나 더 극단적인 주장을 담은 영상들을 연쇄적으로 보여줍니다. **2024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유튜브를 통해 사회 이슈를 접한다고 답했습니다. 알고리즘이 걸러내지 않은 혐오와 편향, 그리고 잔혹한 경쟁 논리가 교실 내의 언어와 따돌림 문화로 전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라는 이름의 방관: 해외 사례와의 비교
세계적인 규제 시계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동안, 한국의 시간은 멈춰 있는 듯합니다. 지난 2024년 말, 호주 의회가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SNS 접속을 원천 차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전 세계는 이를 '디지털 담배법'이라 부르며 주목했습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알고리즘이 우리 아이들을 해치고 있다. 이제 국가가 나설 때"라고 선언했을 때,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들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이었습니다. 위반 시 기업에게 최대 5천만 호주 달러(약 45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이 강력한 법안은 '부모의 책임'으로 떠넘겨졌던 디지털 안전의 무게추를 '기업의 법적 의무'로 옮겨놓은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주요 국가별 아동·청소년 SNS 규제 현황 (2025년 기준)
유럽연합(EU) 역시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통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브루셀의 정책 입안자들은 더 이상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은 빅테크의 알고리즘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틱톡(TikTok)과 인스타그램이 미성년자에게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전 세계 매출의 6%까지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는 구조는 이미 현실입니다.
반면, 서울 여의도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여전히 2021년 폐지된 '게임 셧다운제'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습니다. 당시 실효성 논란과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 속에 제도가 폐지된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규제조차 '검열'이나 '자유 침해'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해 발표한 '디지털 윤리 지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과 딥페이크 범죄 피해 연령은 12세까지 낮아졌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한국형 온라인 안전법'은 사업자의 '자율 규제'라는 모호한 단어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기업의 책임: 자율 규제의 한계
이러한 입법 공백 속에서 기업들의 대응은 어떨까요? "우리는 청소년의 안전을 위해 기본 60분 사용 제한을 도입했습니다." 지난해 틱톡(TikTok)이 발표한 이 '강력한' 자율 규제안은 학부모들에게 잠시나마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중학교 2학년 김민준 군에게 이 기능은 그저 귀찮은 '팝업창'에 불과했습니다.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풀리는데, 그걸 모르는 애들은 없어요. 엄마가 설정해놔도 계정을 새로 파면 그만이고요." 민준 군의 말처럼, 플랫폼이 내놓은 자율 규제는 아이들의 디지털 욕망 앞에서 무기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 주도 자율 규제의 현주소입니다. 메타(Meta)와 틱톡, 그리고 국내의 네이버와 카카오까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매년 수천억 원을 안전장치에 투자한다고 홍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대부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거나, 사용자 경험(UX)을 아주 조금 불편하게 만드는 수준에서 멈춥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려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폭로했던 '페이스북 페이퍼'가 보여주었듯, 기업은 알고리즘이 10대 소녀들의 신체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했습니다. 2025년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매체 이용 습관 진단 조사' 결과는 이러한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줍니다. 자율 규제가 강화되었다고 홍보된 지난 2년 동안, 오히려 사이버 폭력과 디지털 성범죄 노출 경험은 12.5% 증가했습니다. 이는 기업의 '자발적 선의'에 기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를 증명합니다.
주요 SNS 청소년 보호 기능의 실효성 분석 (2025)
위 차트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2025년 주요 SNS 청소년 보호 기능 실효성 분석' 결과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연령 제한 우회 경험률'이 67%**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10명 중 7명의 청소년이 플랫폼이 설치해 둔 '디지털 울타리'를 아무런 제약 없이 넘나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스크린 타임 제한 기능을 실제로 준수하며 이용 시간을 조절하는 비율은 18%에 그쳤습니다.
교실 붕괴와 가정의 고립: "선생님, 제 알고리즘은 멈추지 않아요"
기업과 제도가 멈춰 있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으로 전이됩니다. 경기도 분당의 한 중학교에서 14년째 영어를 가르치는 김민정(가명, 41) 교사는 최근 수업 시간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학교 규정상 학생들의 스마트폰은 조회 시간에 수거되지만, 교실의 집중력은 이미 산산조각 났기 때문입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의 몸은 책상 앞에 있지만, 머릿속은 쉬는 시간에 확인했던 숏폼(Short-form) 콘텐츠와 실시간으로 울리는 스마트워치 진동에 가 있습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단순히 수업 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4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실시한 '학교 내 디지털 기기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78.2%가 "디지털 기기로 인한 수업 방해와 생활 지도 불응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과거에는 쪽지가 돌던 자리를 이제는 에어드롭(AirDrop)으로 전송되는 혐오 밈(Meme)과 딥페이크 합성물이 채우고 있습니다. 김 교사는 "점심시간에 발생한 SNS상의 다툼이 5교시 교실 내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알고리즘이 증폭시킨 갈등을 교사가 중재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학교의 담장이 무너진 곳에는 가정의 비명이 자리합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이성수(45) 씨는 지난 주말,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스마트폰 이용 시간 제한 앱(App) 문제로 몸싸움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 씨는 "아이가 '친구들은 다 보는데 나만 뒤처진다'며 울부짖을 때, 부모로서의 권위는 알고리즘 앞에서 무력해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성가족부의 '2024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는 이러한 가정 내 갈등이 임계점에 달했음을 시사합니다. 청소년의 34.5%가 부모와의 갈등 원인 1순위로 '스마트폰 사용'을 꼽았으며, 이는 성적이나 진로 문제를 앞지른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세대 차이'나 '훈육 부족'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김지연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현재의 SNS 알고리즘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심리적 고리인 '소속감'과 '공포'를 동시에 자극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학생이 수업 시간에 폰을 놓지 못하는 것은 의지 박약이 아니라, 거대 테크 기업이 설계한 행동 심리학적 덫(Hook)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금지를 넘어 '안전한 설계'로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뺏는 것만으로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의 손이 아니라, 아이들을 붙잡아두도록 설계된 '화면 너머의 공학'에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는 이미 '셧다운제(강제적 셧다운)'라는 강력한 규제를 경험했습니다. 심야 시간대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기술적으로 차단하려 했던 이 시도는 실효성 논란과 기본권 침해 논쟁 끝에 2021년 결국 폐지되었습니다. 이 실패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명확합니다. 단순한 '접속 차단'이나 '금지'는 우회로를 낳을 뿐이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삶을 근본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전 세계 규제 당국과 윤리 전문가들은 '차단'이 아닌 '설계'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로 **'설계에 의한 안전(Safety by Design)'**입니다.
이 개념은 자동차 안전벨트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운전자에게 "사고를 내지 말라"고 훈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충돌 시 에어백이 터지고 차체가 충격을 흡수하도록 자동차를 '설계'합니다. 디지털 공간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영국 정보위원회(ICO)가 제정한 '연령 적합 설계 규약(Age Appropriate Design Code, AADC)'은 이 변화를 선도하는 가장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ICO의 규약은 플랫폼 기업들에게 15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핵심은 '기본 설정(Default)'의 전환입니다. 위치 추적은 기본적으로 '꺼짐(Off)' 상태여야 하며, 데이터 수집은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됩니다. 또한, 아이들이 더 오래 머물도록 유도하는 '좋아요' 알림이나 '자동 재생' 기능을 미성년자 계정에서는 비활성화해야 합니다. 실제로 틱톡(TikTok)과 인스타그램은 이 규약의 시행을 앞두고 미성년자 계정의 기본 설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야간 알림을 제한하는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기업의 자발적 선의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설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규제의 압박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업이 이윤을 위해 아동의 심리적 취약성을 착취할 자유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품회사가 유해 성분이 든 과자를 팔 수 없듯이, 테크 기업도 중독과 불안을 유발하는 알고리즘을 아이들에게 '팔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뺏을 '통금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도 다치지 않는 '디지털 놀이터'의 안전 기준입니다. 규제의 방향은 명확합니다. "안전하지 않으면, 출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