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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구아의 위험한 베팅: '그린 골드'와 2026년의 경제 딜레마

AI News Team
안티구아의 위험한 베팅: '그린 골드'와 2026년의 경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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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딜레마, 설탕 대신 대마를 심다

'365개의 해변, 에메랄드빛 카리브해.' 여행사 팸플릿 속 안티구아 바부다는 흠잡을 데 없는 지상 낙원이지만, 세인트존스(St. John's) 항구 뒷골목에서 마주한 경제의 민낯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섬 곳곳에 흉물처럼 방치된 녹슨 사탕수수 공장의 굴뚝들은 한때 이 나라를 지탱했던 설탕 산업의 몰락을 묵묵히 증언한다. '달콤한 시대'는 끝났고, 그 빈자리를 채웠던 관광업이라는 엔진마저 지난 몇 년간 굉음을 내며 멈춰 섰다.

2026년 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강달러 기조는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카리브해 소국들의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World Bank)의 데이터는 이 위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안티구아 바부다의 GDP 대비 관광 수입 비중은 팬데믹 이전 60%에 육박했으나, 외부 충격에 취약한 이 '외발자전거 경제'는 2020년 이후 회복 탄력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안티구아 바부다: 관광 의존도와 경제 성장률의 괴리 (2019-2025)

개스턴 브라운(Gaston Browne) 총리 내각이 꺼내 든 '대마(Cannabis)' 카드는 단순한 기호용 개방이 아닌, 무너진 설탕 산업과 불안정한 관광업을 대체할 제3의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절박한 경제적 승부수다. 과거 식민지 시대 플랜테이션 농업의 상징이었던 사탕수수밭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고부가가치 작물인 의료용 대마를 심어 '카리브해의 웰니스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현지 당국은 이를 '녹색 금광(Green Gold)'이라 부르며, 단순 재배를 넘어 추출, 가공, 그리고 이를 연계한 고급 요양 관광까지 밸류체인을 확장하고 있다.

라스타파리안의 역사, 자본의 상품이 되다

안티구아 바부다의 수도 세인트존스(St. John's)의 골목에서 마주치는 라스타파리안의 드레드락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들에게 대마초, 즉 '간자(Ganja)'는 신과 소통하는 신성한 성체(聖體)였으나, 공권력의 눈에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이자 라스타파리안을 탄압할 구실에 불과했다. 과거의 억압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자본이다.

정부는 라스타파리안 공동체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전과 기록 말소, 종교적 사용 허용을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실현이라 명명했다. 이는 서구 리버럴 진영의 지지를 끌어내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서사였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이 실제 경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훨씬 복잡하다. 정부는 라스타파리안 공동체에 라이선스 우선권을 부여하며 경제적 포용을 약속했으나, 실질적인 수익 구조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025년 카리브해 관련 경제 분석에 따르면, 대마초 관련 관광 수익의 상당 부분이 현지 라스타파리안 커뮤니티가 아닌 외국계 자본이 소유한 리조트와 유통망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원주민의 문화가 자본에 의해 '힙(Hip)'한 상품으로 소비되면서 정작 그 문화의 주인은 소외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유사하다. 라스타파리안 원로들은 그들의 신성한 의식이 관광객의 이국적인 체험 상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는 경제난 타개를 위해 종교적 상징조차 관광 자원화해야 하는 소국의 생존 전략이 낳은 그늘이다.

의료 관광의 최전선, '웰니스 허브' 전략

세인트존스 남쪽 열대우림 속에 자리 잡은 리조트들은 레게 음악 대신 은은한 허브 향과 전문 의료 상담으로 투숙객을 맞이한다. 2026년 현재, 안티구아 바부다 정부가 그리는 청사진의 실체는 바로 '의료 웰니스(Medical Wellness)' 시장이다.

정부는 기존의 저부가가치 관광 모델을 '치유'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티구아 의료 대마초 당국(AMCA)은 리조트 내 소비가 반드시 의료 전문가의 상담을 거친 '처방' 형태를 띠도록 엄격히 규제한다. 이는 태국이 초기 규제 공백으로 겪었던 혼란을 반면교사 삼아, 처음부터 '성인용 기호품'이 아닌 '고급 의료 서비스'로 포지셔닝하려는 전략이다.

카리브해 관광객 유형별 1인당 평균 지출액 비교 (2025년 기준)

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압도적인 객단가 차이에 있다. 카리브 관광기구(CTO)의 분석에 따르면, 의료 웰니스 관광객의 지출 규모는 전통적인 크루즈 관광객을 크게 상회한다. 특히 북미와 유럽의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겨냥한 이 전략은, 스위스의 럭셔리 요양 병원을 카리브해로 옮겨온 듯한 '부티크 헬스케어' 산업을 지향한다.

국제 금융의 벽과 트럼프 2.0의 파고

그러나 안티구아의 야심 찬 계획은 '국제 금융'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 내 다수의 주(State)가 대마초를 합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2026년 트럼프 2기 행정부 산하의 연방 정부는 여전히 국경 간 자금 흐름에 대해 엄격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마약 퇴치와 국경 통제를 강조하는 행정부 기조는 국제 은행 시스템에서의 '디리스킹(De-risking)' 현상을 심화시켰다.

글로벌 대형 은행들은 규제 준수 비용(Compliance Cost) 증가와 자금 세탁 위험을 이유로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환거래 관계(Correspondent Banking Relationships)를 축소하고 있다. 합법적인 대마초 판매 수익이라 할지라도, 국경을 넘는 순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 안에서는 '고위험 자금'으로 분류될 소지가 다분하다.

카리브해 지역 환거래 은행 관계 감소 추이 (2020-2026)

이러한 금융의 '동맥경화'는 투자 유치에 치명적이다. 카리브공동체(CARICOM)는 이를 "금융 소외(Financial Exclusion)이자 또 다른 형태의 경제 제재"라고 비판하지만, 월스트리트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요지부동이다. 안티구아 바부다의 실험은 규제 샌드박스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자유가 국제 금융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감시망 앞에서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한국인 여행객을 향한 '속인주의' 경고

안티구아 바부다의 에메랄드빛 유혹은 한국인 여행객에게는 법적인 지뢰밭이다. 대한민국 형법은 '속인주의' 원칙을 고수하므로, 해외에서의 합법적인 대마 체험도 국내법상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 안티구아 의회가 빗장을 풀었을지라도, 한국인에게 그곳은 여전히 '금지된 구역'이다.

2026년 한국 관세청과 사법 당국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다. 특히 인천공항에 도입된 차세대 마약 탐지 시스템은 미세한 흔적까지 감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도화되었다. 현지 가이드가 권하는 '의료용 젤리'나 '허브티'가 귀국 후에는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현지 법률이 허용한다는 사실이 국내 처벌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해외 여행 중 호기심에 의한 섭취나 구매 시도를 강력히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무리 개방적으로 변한다 해도, 한국인 여행객은 여전히 엄격한 국내법의 울타리 안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론: 생존을 위한 작은 섬의 거대한 질문

안티구아 바부다의 '그린 골드' 실험은 단순한 관광 상품의 다변화를 넘어, 강대국 중심의 질서 속에서 독자적인 생존 모델을 구축하려는 소국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의료 웰니스'라는 세련된 포장은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고위험 벤처 투자의 다른 이름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다른 개발도상국들에게 새로운 벤치마킹 사례가 되겠지만, 금융 고립과 사회적 비용이라는 부작용에 무릎 꿇는다면 섣부른 규제 완화의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2026년, 도덕과 생존, 그리고 국가의 주권과 국제 규범이 충돌하는 이 카리브해의 작은 섬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금기조차 상품화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