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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터 경쟁의 종말: 얀 르쿤의 경고와 한국 AI의 물리적 전환

AI News Team
파라미터 경쟁의 종말: 얀 르쿤의 경고와 한국 AI의 물리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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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장에서 들려온 불협화음

2026년 1월, 네바다 사막의 라스베이거스와 알프스 산맥의 다보스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CES 2026의 메인 스테이지였던 ‘스피어(Sphere)’ 돔 전체가 인간 지능을 넘어섰다고 자평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의 시각화 영상으로 뒤덮였을 때, 관객들은 환호했습니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오픈AI(OpenAI)와 구글(Google)의 경영진이 트럼프 2.0 행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에 힘입어 AI 인프라 투자의 지속적인 확대를 역설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자본은 이제 소프트웨어를 넘어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로 팽창하고 있었고, 한국의 판교 테크노밸리 역시 이 거대한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파라미터(매개변수)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샴페인 잔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찬물을 끼얹는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들려왔습니다. 메타(Meta)의 수석 AI 과학자이자 튜링상 수상자인 얀 르쿤(Yann LeCun) 교수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모두가 찬양해 마지않는 현재의 LLM 방식에 대해 "AGI(범용인공지능)로 가는 길은 이곳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수천억 달러가 쏟아지는 축제의 한복판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석학 중 한 명이 파티의 끝을 예고한 것입니다.

르쿤 교수의 비판은 2026년 현재 AI 산업이 직면한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그는 현재의 LLM이 아무리 데이터를 많이 학습하고 파라미터를 키워도, 본질적으로는 "확률론적 앵무새(Stochastic Parrots)"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다음 단어를 그럴듯하게 예측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인간이나 동물처럼 물리적 세계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거나 추론하는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25년 하반기부터 보고되기 시작한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의 수확 체감' 현상은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데이터 학습량을 늘려도 지능 향상 폭이 투입 비용 대비 효율적이지 않다는 보고서들이 골드만삭스와 세쿼이아 캐피탈 등 월가 투자은행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고는 미국 빅테크의 뒤를 쫓아 '한국형 거대 모델' 개발에 몰두해 온 우리 기업과 정부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그동안 '누가 더 큰 모델을 만드는가', '누가 더 많은 GPU를 확보했는가'를 AI 주권의 척도로 삼아왔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방향 자체가 틀렸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최신 GPU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좇고 있는 것이 신기루일 수도 있다는 공포는 판교의 밤을 지새우는 개발자들에게 단순한 기우가 아닙니다.

다음 단어 맞추기의 비극적 한계

우리가 열광했던 거대언어모델(LLM)의 본질은 결국 '자기회귀(Auto-regressive)'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나온 단어들을 보고 '다음에 올 단어'를 확률적으로 찍어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하지만, 논리나 물리 법칙을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최첨단 모델조차 "투명한 유리컵을 망치로 쳤을 때 일어날 일"을 텍스트로는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수천만 개의 텍스트 데이터에 '유리', '망치', '깨짐'이 함께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봇 팔에 이 모델을 심어 실제로 망치질을 시키면, 유리의 강도나 타격 각도에 따른 파편의 비산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엉뚱한 동작을 수행하곤 합니다. 르쿤 교수가 지적했듯, "텍스트는 세상을 설명하는 그림자일 뿐, 세상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2026년 현재, 학습 가능한 고품질의 인간 데이터가 사실상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입니다. 인터넷상의 텍스트는 이미 모두 학습에 사용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AI가 AI를 위해 쏟아낸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의 범람입니다. 네이처(Nature)지가 경고했던 '모델 붕괴(Model Collapse)'—합성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이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기괴한 결과물을 내놓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GPU 수만 장을 투입해도 성능 향상 폭이 예전만 못한 '수확 체감의 법칙'이 가시화되면서, 단순히 모델의 크기만 키우는 경쟁은 그 유효수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르쿤이 제안한 '세계 모델(World Model)'과 'JEPA(Joint Embedding Predictive Architecture)'는 한국 AI 생태계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는 AI가 텍스트의 확률 분포를 외우는 대신, 인간의 아기처럼 세상의 작동 원리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기는 "공을 놓으면 떨어진다"는 것을 수천 번의 텍스트가 아닌, 단 몇 번의 관찰로 배웁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물리적 지능(Physical Intelligence)'의 기초입니다.

판교의 시계는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

판교 테크노밸리의 밤은 여전히 낮보다 밝습니다. 네이버 1784 사옥과 LG 사이언스파크의 불 꺼지지 않는 창문들은 '한국형 AI', 이른바 '소버린 AI(Sovereign AI)'를 지켜내려는 치열한 항전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2026년 1월,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판교의 시계는 과연 실리콘밸리의 '현재'와 동기화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이미 지나쳐 온 '과거'를 맹렬히 뒤쫓고 있습니까.

지난 3년간 한국의 빅테크들은 눈물겨운 추격전을 벌였습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의 '엑사원' 등은 분명 한국어 처리 능력과 로컬 데이터 이해도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정부 역시 'AI G3 도약'을 기치로 내걸고 초거대 모델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의 파라미터를 늘리면 지능은 출현한다"는 믿음 위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의 기술 지형도는 이 믿음이 '절반의 진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오픈AI와 구글이 주도하던 파라미터 경쟁은 효율성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텍스트를 그럴듯하게 이어 붙이는 '확률론적 앵무새'의 한계는 명확해졌고, 환각(Hallucination) 현상은 단순히 데이터를 더 넣는다고 완벽히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학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의 딜레마입니다. 선두 주자가 닦아놓은 고속도로를 가장 빨리 달리는 법은 익혔지만, 선두 주자가 갑자기 숲길로 방향을 틀었을 때 멈춰 설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인 것입니다.

2023-2026 LLM 파라미터 증가 대비 추론 능력 향상 추이 (자료: 2026 과기정통부 AI 백서 재구성)

위 그래프는 이러한 '수확 체감'을 보여줍니다. 2024년까지는 파라미터 투입량이 늘어나는 만큼 추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2025년을 기점으로 투입 비용 대비 성능 향상 폭은 둔화되었습니다. 한국의 주요 모델들이 글로벌 벤치마크 점수 맞추기에 사활을 걸고 있을 때, 정작 시장의 게임 체인저는 '점수'가 아닌 '물리적 실체'와의 결합으로 이동했습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최근 발표한 '2026 AI 산업 전망' 보고서 역시 "한국 기업들이 언어 모델 고도화에 집중하는 사이, 글로벌 시장은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행동하는 AI'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네이버가 쇼핑 검색 결과를 요약해주는 동안, 테슬라와 피규어AI(Figure AI)는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물리적 지능'을 상용화 단계로 끌어올렸습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이 필수적인 이 새로운 전장에서, 순수 소프트웨어 중심의 LLM 경쟁력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조 강국 한국, 뜻밖의 기회를 만나다

실리콘밸리가 '더 큰 파라미터'라는, 이제는 다소 지루해진 전쟁에 매몰되어 있을 때, 얀 르쿤이 던진 '세계 모델'이라는 화두는 역설적이게도 태평양 건너 한국의 제조 현장에서 가장 큰 공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르쿤이 지적한 LLM의 결정적인 약점, 즉 "물리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텍스트 생성기"라는 한계는 거꾸로 말해 "물리적 실체와 상호작용하는 데이터"가 차세대 AI의 핵심 자원임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이 오픈AI나 구글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한국형 GPT-5'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과 인프라의 격차를 고려할 때 승산이 낮은 싸움입니다. 하지만 전장이 '디지털 텍스트'에서 '물리적 지능(Physical Intelligence)'으로 옮겨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르쿤이 주창한 '목표 지향적 AI'는 단순히 그럴듯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 구체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현실 세계의 데이터'는 웹 크롤링으로 긁어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25년 맥킨지(McKinsey)가 발표한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생성형 AI가 사무직의 생산성을 개선했다면, 물리적 지능을 갖춘 AI는 제조 및 물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잠재력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빅테크 기업들이 가지지 못한, 그러나 울산의 조선소와 창원의 기계 단지, 화성의 반도체 라인에는 차고 넘치는 자산입니다. 한국의 제조업은 '구식 산업'이 아니라, 세계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실험실'인 셈입니다.

트럼프 2.0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 역시 미묘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미국이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할 자동화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1월 발효된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위한 기술 가이드라인'이 해외 소프트웨어 플랫폼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로보틱스와 자동화 하드웨어 도입에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이 소프트웨어 패권 경쟁의 2등 전략에서 벗어나, AI를 담는 '몸(Body)'을 제공하는 필수 파트너로서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틈새입니다.

추격을 멈추고 질문을 던질 시간

얀 르쿤 메타 수석 AI 과학자가 지난 수년간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경고는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었습니다. "데이터의 확률적 나열이 아닌, 세계의 물리적 법칙을 이해하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2026년 한국 AI 생태계에 있어 '멈춤 신호'가 아니라 절실한 '방향 지시등'입니다. 텍스트 생성의 유창함에 가려져 있던 LLM의 환각 현상과 논리적 결함은, 정밀함이 생명인 반도체 공정이나 자율주행, 로보틱스 분야에서 치명적인 한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제조업과 하드웨어 강국인 한국이 파고들어야 할 틈새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르쿤이 제안한 '세계 모델'과 한국의 제조 경쟁력의 결합, 즉 '물리적 지능'입니다. 텍스트라는 1차원적 데이터를 넘어, 물리 세계의 인과관계를 학습하고 예측하는 AI는 한국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하드웨어 및 제조 데이터와 만났을 때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 기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미세 공정 데이터, 그리고 네이버가 구축해온 디지털 트윈 기술은 텍스트 기반의 미국 빅테크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실체 있는' 자산입니다.

이제 '한국형 챗GPT'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미국보다 말을 더 잘하는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보다 일을 더 잘하는 AI를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과기정통부와 정책 입안자들은 GPU 구매 보조금에 치우친 예산을 '임바디드 AI(Embodied AI)' 연구와 산업 현장 적용 실증 사업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합니다. 확률에 의존해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는 AI가 아니라,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실제 세계에서 오차 없이 작업을 수행하는 AI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소버린 AI'가 될 것입니다.

2026 AI 모델 유형별 산업 적용 효율성 비교 (제조/물류 분야)

2026년, 글로벌 AI 경쟁의 전장은 클라우드 서버에서 '현실 세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만든 지도를 따라가다 절벽 끝에 설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영토에서 새로운 지도를 그릴 것인가. 추격을 멈추고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