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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청구서: 파산한 변호사들과 살아남은 가짜 뉴스 생태계

AI News Team
거짓의 청구서: 파산한 변호사들과 살아남은 가짜 뉴스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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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유령, 2026년의 법정

2026년 1월의 워싱턴 D.C. 연방 법원,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6년 전의 열기는 식지 않고 서류 더미 속에 남아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2020년 대선이 남긴 법적 공방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끈질기게 이어지며 '거짓말의 청구서'가 얼마나 뒤늦게, 그리고 가혹하게 도착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법의 심판은 대중의 관심이 식은 뒤에야 비로소 그 무게를 드러내는 법이다.

한때 "크라켄을 풀겠다"며 음모론의 최전선에 섰던 시드니 파월과, 뉴욕의 시장에서 '트럼프의 변호사'로 전락한 루디 줄리아니의 2026년은 초라하다. 연방 파산 법원에 제출된 줄리아니의 재산 목록은 화려했던 과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의 몰락을 결정지은 것은 2023년 조지아주 선거 관리 요원 루비 프리먼과 셰이 모스 모녀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의 1억 4,800만 달러 패소 판결이었다. 여기에 더해 스마트매틱(Smartmatic)과 도미니언(Dominion)이 제기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소송들이 파산 절차 속에서 여전히 계류 중이거나 조정 단계에 있어,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법조계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대선 불복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 지불했거나 지불해야 할 배상금과 소송 비용은 총 20억 달러(약 2조 6천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파멸이 '거짓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2026년의 역설이다. 줄리아니와 파월은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그들이 설계하고 유포한 '선거 사기'라는 서사는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이는 마치 한국 정치사에서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생성된 가짜 뉴스가 법적 처벌 이후에도 지지층 결집의 도구로 재생산되는 것과 유사하다. 법정 공방은 거짓을 말한 '메신저'를 파산시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거짓이라는 '메시지'가 유통되는 구조 자체를 해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거짓의 생태계가 가진 놀라운 회복 탄력성이다. 폭스 뉴스가 2023년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에 7억 8,75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합의금을 지불했을 때, 다수의 미디어 비평가들은 이를 '가짜 뉴스의 종언'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는 그 예측이 빗나갔음을 목격하고 있다. 막대한 합의금은 거대 미디어 기업에게는 '비즈니스 비용(Cost of Doing Business)'으로 처리되었고, 그들은 더 교묘하고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논조를 다듬어 수익 모델을 유지하고 있다.

파산한 '대통령의 변호사들'과 수익화된 믿음

한때 '미국의 시장(America’s Mayor)'이라 불리며 9.11 테러 수습을 진두지휘했던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의 2026년 1월은 더 이상 영웅 서사가 아니다. 그의 몰락은 법적 책임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가장 밑바닥까지 해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쇼케이스가 되었다. 워싱턴 D.C. 연방법원이 조지아주 선거 관리원들에게 내린 배상 명령은 단순한 판결이 아니라, '대통령의 변호사'라는 직함 뒤에 숨은 무책임한 발언에 대한 사법 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응징이었다.

줄리아니가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와 팜비치 콘도, 심지어 그가 아끼던 조 디마지오의 사인 셔츠와 롤렉스 시계까지 경매에 부쳐야 했을 때, 대중은 거짓말의 대가가 얼마나 물리적이고 구체적인지 목격했다. 파산 법원은 그에게 자비가 없었다. 2025년 내내 이어진 파산 보호 신청(Chapter 11)과 기각, 그리고 강제 청산 과정은 그를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기껏해야 수백만 원의 벌금형에 그치는 것과 달리, 미국 사법부는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통해 거짓 뉴스의 발원지를 경제적으로 '소멸'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줄리아니와 파월 같은 인물들이 막대한 법적 리스크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도난당한 선거'라는 서사를 계속 공급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에게 있어 법정은 심판대가 아니라,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후원금을 끌어모으는 가장 효과적인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몰락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특징은 '법적 위기'가 곧 '수익 모델'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줄리아니는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자신의 팟캐스트를 통해 '루디 커피(Rudy Coffee)'를 홍보하고, 건강보조식품을 팔았다.

법은 느리고, 가짜 뉴스는 빠르다

법정의 망치가 내려쳐지고 배상금 숫자가 확정되는 순간, 우리는 흔히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2026년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암울하다. 법적 심판은 명확하고 엄중했지만, 대중의 인식이라는 전쟁터에서 진실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2025년 말 발표된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심층 조사 결과는 이러한 '법적 승리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폭스 뉴스의 합의 이후에도, 특정 지지층 내에서 2020년 대선에 대한 불신은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았다.

법적 비용 증가와 음모론 신뢰도의 괴리 (2021-2025)

위 데이터는 법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미디어 기업과 개인들이 지불한 누적 배상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지만, 핵심 지지층의 신념은 요지부동이다. 이는 "거짓의 비용"을 금전적으로 청구하는 것만으로는 "거짓의 신념"을 해체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법원은 행위를 처벌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믿음까지 압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슈퍼챗' 민주주의, 남의 일이 아니다

워싱턴의 법정 드라마는 태평양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루디 줄리아니가 파산 법정에 서고, 폭스뉴스가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지불하는 동안, 우리는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거짓의 시장'이 서울의 광화문과 여의도, 그리고 우리의 스마트폰 속에서 얼마나 번성하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2026년 현재, 한국의 정치 유튜브 생태계는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수익 모델'을 구축했다.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슈퍼챗이 진실을 압도한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업체 플레이보드(Playboard) 등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전 세계 유튜브 슈퍼챗 수익 상위권에는 한국의 정치 시사 채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미국의 시장 규모가 절대적으로 크지만, 유권자 1인당 정치 콘텐츠 후원 강도와 몰입도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한국 사회의 진영 논리가 그만큼 견고하며, 확증 편향을 소비하려는 욕구가 강력함을 의미한다.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는 '스피커'들이 자극적인 음모론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실시간 후원을 받는 구조는 이미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문제는 이 게릴라전이 법적 제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미국 사법 시스템이 보여준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력은 한국에는 없다. 한국에서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배상액은 대부분 소액에 그치며, 이는 막대한 슈퍼챗 수익에 비하면 '영업 비용'에 불과하다. 심지어 일부 유튜버들에게 고소와 고발은 오히려 '훈장'이 된다. "권력의 탄압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후원 계좌를 열면, 벌금의 몇 배에 달하는 '법률 지원금'이 팬덤으로부터 쏟아지는 기이한 역설이 발생한다. 줄리아니는 파산했지만, 한국의 '줄리아니들'은 법정에 설 때마다 지갑이 두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