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뉴스 합의 3년: '1조 원짜리 거짓말'이 한국 언론에 던지는 청구서

웃음을 참아야 했던 앵커, 그리고 1조 원의 청구서
CNN의 간판 앵커 제이크 태퍼(Jake Tapper)가 생방송 중 입술을 꽉 깨물며 폭스 뉴스(Fox News)의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던 그 순간은, 전 세계 저널리즘 역사에 묘한 아이러니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도미니언(Dominion)에 대한 일부 주장이 거짓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한다." 이 지극히 건조하고 방어적인 한 문장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폭스 뉴스는 무려 7억 8,750만 달러(당시 환율 약 1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태퍼가 억누르려 했던 그 실소(失笑)는 단순한 비웃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허상이 법적인 진실(Legal Truth)과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파열음이었습니다. 화려한 스튜디오 조명 아래 낭독된 이 성명서는 미디어 기업이 '진실'을 외면하고 '비즈니스'를 선택했을 때 받아들게 될 청구서의 무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폭스 뉴스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는 음모론을 재생산하며 단기적인 시청률 방어와 광고 수익 창출에 성공했지만, 법정의 계산기는 냉혹했습니다. "수익을 위한 거짓말(Profit from falsehood)"은 수정헌법 제1조의 방패 뒤에 영원히 숨을 수 없다는 판례가 남겨진 것입니다.
이 사건은 3년이 지난 2026년 현재, '유튜브화(YouTubization)'된 한국 미디어 생태계에 서늘한 경고를 보냅니다. 확증 편향에 갇힌 시청자들을 위한 맞춤형 뉴스가 알고리즘을 타고 넘쳐나는 지금, 한국의 레거시 미디어들 역시 생존을 위해 '사이다 발언'과 '자극적인 썸네일'이라는 유혹 앞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확인(Fact-check)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 속보 경쟁과 팬덤(Fandom) 정치에 밀려나는 현실은, 폭스 뉴스가 벼랑 끝으로 걸어갔던 그 궤적과 위험할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에코 챔버의 경제학: 진실이 비용이 될 때
미디어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진실'은 종종 비용으로, '확증 편향'은 수익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2023년 폭스 뉴스가 지불한 합의금은 천문학적이었지만, 월스트리트의 일부 분석가들에게는 그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폭스 내부 이메일이 드러낸 것은 이념적 확신범의 모습이 아니라, 뉴스맥스(Newsmax)와 같은 극우 경쟁사에게 시청자를 뺏길 것을 두려워한 경영진의 철저한 손익 계산이었습니다. 이는 미디어 경제학에서 말하는 '관객 포획(Audience Capture)' 현상의 가장 파괴적인 사례입니다.
2026년 현재, 이러한 '에코 챔버의 경제학'은 한국 미디어 시장에서도 더욱 정교하고 위험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서울 여의도의 방송가와 유튜브 스튜디오들은 클릭 수와 광고 단가(CPM)라는 즉각적인 현금 흐름을 위해 팩트 체크라는 '비용'을 과감히 절감하고 있습니다. 소위 '사이버 렉카'라 부르는 1인 미디어의 약진은 레거시 미디어조차 자극적인 섬네일 경쟁으로 내몰았습니다. 한국광고주협회의 2025년 보고서가 지적했듯, "논란이 될수록 광고 도달률은 높아지지만, 브랜드 안전성(Brand Safety)은 급격히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일상화되었습니다.
폭스 사태가 한국 언론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허위 정보로 쌓아 올린 수익은 '이익잉여금'이 아니라, 언젠가 사회적 신뢰 붕괴와 법적 배상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올 '부채'라는 점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미국 내 미디어 환경이 규제 완화와 시장 논리로 더욱 치달을수록, 역설적으로 '신뢰'라는 자산의 희소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폭스 뉴스 합의금 vs 2023년 연간 순이익 비교 (단위: 백만 달러)
수정헌법 제1조의 비싼 대가와 한국의 현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지만, 그 뒤에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라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습니다. 폭스 뉴스의 합의금은 언론사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수익을 위해 가짜 뉴스를 유포했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이었습니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이 사건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의 명예훼손 법리는 '현실적 악의' 입증을 요구하여 언론에 높은 면책 특권을 부여하지만, 폭스 뉴스는 경영진과 앵커들이 사적으로는 "그 주장은 미친 소리다"라고 토로하면서도 방송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쏟아냄으로써 이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법적으로 '보호받는 거짓말'과 '처벌받는 사기'의 경계인 '고의성'이 입증된 것입니다.
반면, 한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재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상대적으로 미비하여, 가짜 뉴스로 얻는 수익이 벌금보다 큰 '역설적 인센티브'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폭스 뉴스의 사례는 법적 제도의 차이를 떠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인 '진실 추구'를 버리고 '수익성 있는 거짓'을 선택했을 때, 그 청구서가 얼마나 가혹하게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입니다. 2026년 현재, 사법부가 '사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내린 이 역사적 결단은 자본 논리에 잠식당한 한국 언론에 서늘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거울 속의 서울: 한국형 양극화의 민낯
워싱턴 법정의 천문학적인 청구서는 태평양 건너 여의도 방송가에도 경고장을 던집니다. 한국은 '슈퍼챗(Super Chat)'의 나라입니다. 2025년 플레이보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슈퍼챗 수익 상위권은 여전히 한국의 정치 시사 채널들이 석권하고 있습니다. 지지층의 분노를 자극하는 주장이 실시간으로 현금화되는 구조 속에서, 팩트 체크는 수익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이 '사이버 렉카' 식 비즈니스 모델이 레거시 미디어까지 잠식했다는 점입니다. 시청률과 수익 감소에 시달리는 주요 언론사들은 유튜브 문법을 차용하여 선정적인 썸네일과 섣부른 의혹 제기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전후 급증했던 검증 없는 의혹 보도들은 한국 언론이 이미 '진실'보다 '주목'을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폭스 뉴스의 2023년 합의가 3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장의 슈퍼챗 수익과 조회 수가 가져다주는 달콤함이, 훗날 들이닥칠 사회적 신뢰의 파산 선고보다 가치 있는 것인가? 한국 미디어는 지금 '아직 청구서가 도착하지 않았을 뿐인' 외상 장부를 쓰며, 진실의 파산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사과가 가치를 잃었을 때: 도덕적 해이의 끝
7억 8,750만 달러라는 합의금은 뼈아픈 징벌처럼 보이지만, 폭스 코퍼레이션에게는 당시 보유 현금의 2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합의가 '방송 중 구체적인 거짓말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을 면제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이 거액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비즈니스 비용'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진실이 수익성 분석의 변수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한국 미디어 생태계에 더 치명적입니다. 한국의 언론 중재 시스템이나 처벌 수위는 소위 '가성비'가 너무 좋아,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유혹이 강합니다. 폭스 뉴스의 사례는 거짓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인 마케팅 도구일 수 있음을 증명했지만,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는 '신뢰 자본'의 파산을 간과했습니다. 돈으로 때운 거짓말은 진실로 둔갑하여 살아남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잠식합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금전적 합의금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완전한 붕괴일 수 있습니다.
공통의 기반을 다시 세우며
폭스 뉴스가 치른 합의금은 '진실'을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여겼던 미디어 기업들에게 시장이 청구한 가장 비싼 청구서이자, 민주주의 시스템이 지불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수업료입니다. 2026년, 우리는 더 이상 "가짜 뉴스가 돈이 된다"는 명제에 동의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단기적인 트래픽 뒤에는 기업의 존폐를 흔드는 리스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규제와 시장의 양면 작전에서 찾아야 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는 언론사 스스로 엄격한 검증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면 외부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또한 광고주들은 이미 브랜드 안전을 이유로 극단적인 매체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복수의 미디어 산업 전문가들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라도 일단 쓰고 보자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장기적 생존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결국 2026년 이후의 생존 전략은 '신뢰의 복원'입니다. 블록체인 기사 이력 추적이나 AI 팩트체크 기술 도입은 긍정적이나, 본질은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반론을 청취하며, 맥락을 설명하는 느리지만 단단한 보도만이 파편화된 사회를 다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언론이 치러야 할 비용은 '사실 확인을 위한 시간'입니다. 그 비용을 아끼려다가는, 나중에 닥쳐올 '민주주의의 청구서'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