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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뒤의 공포: 디즈니 사태와 한국 기업의 '이념적 청구서'

AI News Team
웃음 뒤의 공포: 디즈니 사태와 한국 기업의 '이념적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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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타임의 농담, 여의도의 침묵

미국 동부 시간 저녁 8시, 케이블 뉴스 채널의 프라임타임 토론 쇼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화면에는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플로리다 주지사가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다시금 기업의 'Woke(깨어있는 척하는)' 문화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특정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하는 영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3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디즈니와의 전쟁'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더욱 정교해진 형태로 부활한 것입니다.

스튜디오의 한 베테랑 정치 평론가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아직도 미키 마우스와 싸우고 있군요. 이건 지지층 결집을 위한 지루한 3류 연극의 재방송일 뿐입니다." 진행자와 패널들은 가볍게 동조하며 넘어갔습니다. 미국 미디어의 문법에서 이러한 정치적 공세는 시청률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이자, 곧 잊혀질 해프닝으로 소비되곤 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각, 태평양 건너 서울 여의도의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는 그 누구도 웃지 못했습니다. 미국 현지 법인에서 타전된 긴급 보고서와 모니터링 화면을 응시하는 임원들의 표정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워싱턴의 씽크탱크나 뉴욕의 언론이 '정치적 쇼(Political Theater)'라고 치부하며 조롱하는 그 순간이, 한국 기업들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주권 리스크(Sovereign Risk)'**의 명백한 신호탄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정치적 수사학이, 이방인인 외국 기업에게는 당장 내일의 공장 가동과 세제 혜택을 위협하는 실체적 공포로 다가오는 역설입니다.

우리는 지금 '웃음'과 '공포' 사이의 간극에 주목해야 합니다. 2026년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정치는 더 이상 법치(Rule of Law)의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최근 법무법인 태평양(Bae, Kim & Lee)이 발간한 '2026 통상 리스크 리포트'에서 지적했듯, "미국 주지사가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행정 명령을 동원하는 행위가 설령 훗날 위헌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불확실성의 시간' 동안 기업 가치는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즉, 미국 미디어가 '결과(법적 실효성)'를 두고 웃을 때, 기업은 '과정(비즈니스 불확실성)'에서 피를 흘립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사설에서 "미국 보수 진영의 기업 공격은 더 이상 예외적 일탈이 아닌 새로운 통치 도구"라고 분석했듯, 이는 **'이념적 보호무역주의(Ideological Protectionism)'**라는 새로운 형태의 장벽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보호무역이 관세나 쿼터 같은 경제적 숫자로 기업을 압박했다면, 2026년의 보호무역은 '우리의 가치에 동참하는가'라는 사상 검증을 요구합니다.

입법의 무기화 (The Weaponization of Legislation)

우리가 디샌티스 주지사의 발언을 기시감 느껴지는 정치적 쇼로 치부하는 사이, 워싱턴과 주요 공화당 우세 주(Red States)에서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입법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Legislation)'는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닙니다. 이는 2026년 트럼프 2.0 행정부의 핵심 통치 기조이자,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실체적인 위협입니다.

과거의 무역 장벽이 관세와 쿼터라는 눈에 보이는 숫자로 존재했다면, 지금의 장벽은 '가치관'이라는 모호한 기준 뒤에 숨어 있습니다. 2025년 하반기 텍사스주 의회가 통과시킨 '공정 접근법 개정안(Fair Access Amendment)'은 그 시발점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금융 기관의 차별 금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보수적인 미국의 가치에 반할 경우 주 정부와의 계약을 원천 차단하는 '이념적 충성 서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연방 정부 차원에서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직후 서명한 행정명령들은 연방 정부 조달 시장에서 '미국적 가치'를 훼손하는 기업을 배제할 수 있는 권한을 상무부에 부여했습니다. 여기서 '미국적 가치'의 정의가 행정부의 광범위한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이 한국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인 불확실성으로 작용합니다.

실제로 조지아주와 테네시주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가동 중인 한국의 주요 그룹사들은 최근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본사 차원에서 글로벌 표준에 맞춰 수립한 '탄소 중립 로드맵'과 '다양성 및 포용성(D&I) 정책'이, 해당 주 정부로부터 "급진적 의제에 동조한다"는 이유로 세제 혜택 재심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지연이 아닙니다. 기업의 글로벌 경영 전략이 미국의 지역 정치 논리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자본 비용을 급격히 상승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입니다.

미국 내 'ESG 반대' 및 '이념 검증' 관련 법안 발의 추이 (2022-2026)

위 데이터가 보여주듯,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정치적 잣대로 검열하려는 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한 달 동안 발의된 법안 수만 해도 45건에 달해, 2023년 한 해 수준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입법 트렌드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합니다.

국제통상연구원(IIT)의 관계자는 "과거에는 워싱턴의 K스트리트 로비스트들을 통해 연방 의원들만 설득하면 됐지만, 지금은 주지사, 주 법무장관, 심지어 지역 교육위원회의 이념 성향까지 파악해야 공장을 돌릴 수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미국 시장이 더 이상 단일한 규제 시장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파편화된 '지뢰밭'으로 변모했다는 것입니다.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과거 우리 기업들에게 워싱턴의 정쟁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침묵'은 미덕이었습니다. 묵묵히 공장을 돌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만이 최고의 대관 전략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본격화된 2026년 현재, 그 침묵은 더 이상 유효한 방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양쪽 진영 모두에게 의심을 사는 '회색지대'의 덫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이제 '하면 비난받고, 안 하면 도태되는(Damned if you do, damned if you don't)' 진퇴양난의 딜레마, 즉 **'ESG의 정치화'**라는 전장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글로벌 투자의 표준으로 여겨지던 ESG 경영은 이제 미국 내에서 가장 치열한 '이념 전쟁터'로 변모했습니다. 플로리다나 텍사스 같은 공화당 우세 주(Red States)에서는 ESG를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라 부르며 공적 자금 투자를 철회하거나 주 정부 계약을 파기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반면,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민주당 우세 주(Blue States)와 유럽의 기관 투자자들은 여전히 엄격한 탄소 중립과 다양성(DEI) 준수를 요구합니다.

현대차그룹이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가동하며 겪고 있는 미묘한 기류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현지 주지사는 일자리 창출을 환영하면서도, 기업의 탄소 중립 캠페인이 자칫 보수 지지층에게 '좌파적 의제'로 비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념적 보호무역주의'는 단순히 대관 업무의 피로도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인 '인재 확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최근 발표한 2025년 노동 시장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Z세대와 알파 세대 고숙련 엔지니어의 **약 68%**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기업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실리콘밸리나 오스틴의 한국 R&D 센터들이 직면한 위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본사는 보수적인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려 하지만, 현지 채용 시장에서는 이러한 모호함이 '소신 없음'으로 간주되어 인재 이탈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미국 시장에서 '가치 중립적인 경영'은 허상이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강제로 입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아래 데이터는 이러한 압박 속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미국 S&P 500 기업의 'ESG' 언급 빈도 vs 실제 규제 대응 비용 추이 (출처: FactSet, 2026)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들의 공개적인 ESG 언급량(mentions)은 202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하여 2026년에는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각 주별 상이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법률 및 컴플라이언스 비용(cost)은 같은 기간 2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비용'이 되어 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026년, 트럼프 2기 시대에 우리 기업들이 마주한 **'침묵의 청구서'**입니다.

재벌을 기다리는 '보이지 않는 덫'

워싱턴의 싱크탱크 패널 토론장에서 디즈니와 주지사의 갈등이 '정치적 쇼'라며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렸을 때, 한국의 재벌들은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해야 했습니다. 디즈니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전형입니다. 그들은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며, 공화당원들조차 자신의 자녀들에게 미키 마우스를 보여줍니다. 정치적 공격은 있을지언정, 그 뿌리를 뽑으려는 시도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 즉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현대, LG의 입장은 다릅니다. 우리는 미국 경제의 필수적인 파트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부자'가 아닌 언제든 초대장이 취소될 수 있는 '손님'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념적 보호무역주의'는 단순한 관세 장벽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위험한 덫을 놓고 있습니다. 과거의 무역 전쟁이 '가격'과 '물량'의 싸움이었다면, 2026년의 전선은 '가치관'과 '충성심'으로 이동했습니다.

2025년 대미 로비 효율성 대비 규제 리스크 (출처: 워싱턴 K-Street 인사이트)

위 데이터가 시사하듯, 한국 기업들의 대미 로비 지출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체감하는 '정치적 리스크'는 미국 본토 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디즈니의 경우 정치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로비력과 문화적 영향력으로 리스크를 중간 수준(55)으로 방어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리스크(80~85)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텍사스와 조지아에 수십조 원을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가장 먼저 희생될 수 있는 '소프트 타겟(Soft Target)'입니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자국 기업인 디즈니를 공격하는 것은 유권자의 절반을 적으로 돌릴 위험이 있는 도박이지만, 외국 기업을 때리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애국자'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선거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불안의 합중국'을 건너는 법

미국의 정치적 소음, 특히 정치인들의 과격한 발언을 단순히 '쇼(Show)'로 치부하고 비웃는 것은 한국 기업들에게 가장 위험한 오판입니다. 2026년 워싱턴의 기류는 명확합니다. 정치적 레토릭은 곧 규제가 되고, 이념은 관세 장벽보다 더 높고 불투명한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으로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자국 우선주의가 아닌, 기업의 국적과 이념적 성향을 따지는 **'이념적 보호무역주의'**의 완성입니다.

이제 삼성, 현대차, LG와 같은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재무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최고재무책임자(CFO)만큼이나, 정치적 지형을 읽고 대응할 **'최고정치리스크책임자(CPRO, Chief Political Risk Officer)'**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새로운 생존 전략의 핵심은 **'현지 기여 프레이밍(Local Contribution Framing)'**으로의 전환입니다. 단순히 미국에 공장을 짓고 고용을 창출하는 '투자' 행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해당 투자가 미국의 특정 지역 사회, 특정 유권자 층의 삶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개선시켰는지를 정치적 언어로 번역하여 전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지아주나 테네시주에 위치한 한국 배터리 공장은 '한국 기업의 해외 기지'가 아니라, '러스트 벨트의 부활을 이끄는 미국 제조업의 새로운 심장'으로 포지셔닝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미국 정치권이 한국 기업을 공격할 때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을 높이는 '방어 기제'를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현지화의 깊이를 더하는 것만이 2026년 '불안의 합중국'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입니다. 효율성만을 좇던 차가운 계산기 옆에, 뜨거운 정치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