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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한 사이렌: 러시아의 지연 전술과 한반도 안보의 청구서

AI News Team
침묵한 사이렌: 러시아의 지연 전술과 한반도 안보의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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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lence After the Siren

브뤼셀의 시계탑이 자정을 알리고 서방 세계가 설정한 '핵 최후통첩(Nuclear Ultimatum)'의 시한이 만료된 순간, 세계가 목격한 것은 거대한 폭발음이 아닌 기이한 정적이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위치한 벨기에의 밤은 긴장으로 얼어붙었지만, 6,000km 떨어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은 마치 이 최후통첩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함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무시가 아닙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침묵은 철저하게 계산된 '비대칭 외교'의 일환이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립주의적 성향을 정확히 겨냥한, 소리 없는 메시지였습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최근 발간한 2026년 정세 보고서가 지적하듯, 러시아의 이러한 '전략적 인내'는 서방 동맹의 균열을 노리고 있습니다. 유럽의 동맹국들은 집단 방위 조약인 나토 5조의 신뢰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제3차 대전보다는 거래(Deal)가 우선"이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기며 유럽의 불안감과 미국의 국익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보였습니다. 러시아 외무부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이 마감 시한 직후 "우리는 런던이나 파리가 아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상대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논평한 것은, 결국 유럽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짓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입니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위험한 줄타기는 한반도, 특히 세종시의 외교 전략가들에게는 단순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가 보여주는 '현상 변경의 고착화'가 미국과의 타협을 통해 용인된다면, 이는 곧 '힘에 의한 국경 변경'이 21세기에도 유효하다는 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분석에 따르면, 평양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의 '레드라인'이 실제로는 얼마나 유동적인지,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동맹의 안보 공약보다 우선시될 때 어떤 틈새가 발생하는지를 학습하고 있습니다.

The Art of the Stall

모스크바의 크렘린궁과 워싱턴의 백악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시차가 존재합니다. 러시아가 구사하는 현재의 외교 전략은 단순한 '협상'이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지연전(The Art of the Stall)'에 가깝습니다. 최후통첩이 만료되기 불과 수일 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제네바에서 비공개 채널을 통해 서방 외교관들과 접촉한 사실은 이러한 이중성을 잘 보여줍니다. 공식적으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상대를 압박하되, 물밑에서는 협상의 여지를 남겨 시간을 버는 전형적인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입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행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립주의 성향을 정밀하게 타격하고 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해외 개입 비용을 줄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은 "유럽의 문제는 유럽이 해결하게 두고, 우리는 양자 간의 거래를 하자"는 달콤한 제안을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2026년 초 워싱턴 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비공개 보고서가 지적했듯, 모스크바는 미국이 나토(NATO)와 유럽연합(EU)이라는 전통적 동맹의 틀을 우회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서방의 단일대오를 균열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안보 전문가들이 이 지점에서 뼈아프게 직시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 강대국 간의 타협으로 용인될 경우 발생할 파장입니다. 만약 미국이 러시아의 영토 점령을 사실상 인정하는 형태로 '나쁜 평화'를 선택한다면, 이는 한반도에 치명적인 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평양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에게 "미국은 자국 이익에 부합하면 동맹의 원칙도, 국경선의 신성함도 타협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Washington's Pivot, Brussels' Panic

워싱턴의 펜실베이니아 거리(Pennsylvania Avenue)에 내려앉은 것은 비단 동부 해안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설만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월가를 강타한 '레일게이트(Railgate)' 금융 스캔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습니다. 미네소타발(發) 금융 위기와 인프라 마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연방 정부의 재정이 천문학적으로 투입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과 같은 해외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압박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백악관의 침묵은 이러한 내부의 경제적 위기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스크바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외무부의 비공개 전문을 분석한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크렘린궁은 워싱턴과 브뤼셀을 철저히 분리 대응하는 '이중 트랙(Two-Track)'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재정 부담의 즉각적인 해소"라는 명분을 제공하며 신속한 협상을 제안하는 반면, 유럽에게는 에너지 공급 차단과 전술핵 배치를 동시에 위협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비용을 지불할 때만 유효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직후,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향한 가스 공급 밸브를 또다시 조이며 유럽 내 여론 분열을 유도했습니다.

세종의 외교 전략가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 '동맹의 균열'이 한반도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해 러시아의 영토 점령을 사실상 인정하는 형태의 '조기 종전'을 선택할 경우,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지탱해 온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불가'라는 대원칙이 무너짐을 의미합니다.

브뤼셀의 외교관들이 사석에서 토로하는 절망감은 수치로도 증명됩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뒤늦게 방위비 지출을 GDP 대비 3%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너무 늦고 너무 적다(Too little, too late)"고 일축하며 아시아-태평양, 특히 대중국 견제와 국내 경제 재건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2026년 미-유럽 안보 인식 격차 (자료: 퓨 리서치 센터/유로바로미터)

위 데이터가 보여주듯, 대서양을 사이에 둔 인식의 격차는 단순한 견해 차이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미국 유권자의 68%가 '영토 양보를 통한 종전'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정책이 '레일게이트'로 인한 경제적 불안감 속에서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The Pyongyang Connection

블라디미르 푸틴이 던진 '평양'이라는 카드는 단순한 군사 협력을 넘어, 워싱턴의 신(新)고립주의를 정밀 타격하는 외교적 덫입니다. 2026년 1월, 국방연구원(KIDA)의 보고서가 시사하듯,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하는 대가(quid pro quo)는 과거의 식량 지원 수준을 넘어섰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위성 분석 업체들이 평양 인근 산음동 미사일 연구 단지에서 포착한 열 징후에 대해 KIDA는 러시아의 독자적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Re-entry Vehicle technology) 이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습니다. 물론 미 국방정보국(DIA)을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들은 아직 이에 대한 공식적인 확인을 유보하고 있으나, 최근 북러 간의 물적 교류 빈도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모스크바의 셈법은 명확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서의 현상 변경을 용인한다면, 통제 불능의 김정은 정권을 우리가 '관리'하겠다"는 매혹적인 제안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종연구소의 정세 분석가들이 우려하듯, 이 '관리'의 실체는 위험천만합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망을 우회하는 뒷문을 열어주는 동시에, 북한을 자신의 지정학적 체스말로서 더욱 날카롭게 벼리고 있는 것입니다.

Seoul's Nightmare Scenario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얼어붙은 전선이 워싱턴의 서명 하나로 '새로운 국경'으로 굳어지는 순간, 한반도의 휴전선은 더 이상 '현상 유지(Status Quo)'의 상징이 아닌 '무력에 의한 변경 가능성'의 실험대로 전락하게 됩니다. 용산 대통령실과 외교부 청사 내의 침묵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러시아와의 타협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현실화한다면, 이는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한국 안보를 지탱해 온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불용'이라는 대원칙이 붕괴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지각 변동을 평양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보다 예리하게 주시하는 이는 없습니다. 북한에게 러시아-미국 간의 '빅 딜(Big Deal)'은 곧 '새로운 생존 모델'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의 악몽이 2018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패싱이 대화 국면에서의 소외였다면, 2026년의 패싱은 안보 공약의 '거래 대상화'입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SMA)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노골적인 증액 요구는, 유사시 미국의 개입이 자동적인 의무가 아니라 '비용 대 편익'의 계산 결과일 수 있다는 차가운 현실을 서울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러시아의 외교적 기동과 미국의 고립주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한국은 '핵우산'의 구멍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확장억제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문서상의 잉크로만 남고 실질적인 행동 의지가 결여될 때, 한국 내 독자 핵무장론은 더 이상 소수의 강경한 주장이 아닌, 국가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지로 급부상할 것입니다.

Beyond the Blind Reliance

2026년 1월, 워싱턴의 기류는 분명합니다. 70년간 한반도 안보를 지탱해온 '혈맹(Blood Alliance)'이라는 수사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낡은 계산기 앞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미국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흔들리지 않는 상수로 여겼다면, 지금의 백악관은 모든 관계를 손익계산서(P&L) 위에 올려놓고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2026년의 국제 정세에서 '가치 동맹'은 더 이상 우리의 안보를 담보하는 만능보증수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방향은 철저한 '이익 동맹(Interest Alliance)'으로의 전환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단순히 비용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리가 제공하는 전략적 자산—평택의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K-방산의 제조 역량, 그리고 독자적인 원전 기술—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자국 산업 재건에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각인시킬 협상의 지렛대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