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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규범의 황혼: '브레이버먼 경고'와 한국 외교의 딜레마

AI News Team
국제 규범의 황혼: '브레이버먼 경고'와 한국 외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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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울린 경보음

2026년 1월, 런던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날카롭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맞은편, '국가 주권과 민주주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수엘라 브레이버먼(Suella Braverman) 전 내무장관이 단상에 올랐을 때, 장내는 묘한 긴장감으로 휩싸였습니다. 비록 2024년 총선 패배로 보수당은 야당석에 앉아 있지만, 그녀가 설파하는 '개혁(Reform)'의 메시지는 집권 노동당 정부를 압도하는 정치적 중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브레이버먼이 내뱉은 개혁은 단순한 행정적 효율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세계를 지탱해 온 '국제 규범'이라는 거대한 합의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브레이버먼은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결이 영국의 국경 통제권을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선출되지 않은 판사들이 주권 국가의 안보를 결정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법의 지배(Rule of Law)에 대한 정의를 보편적 가치에서 배타적 국가 이익으로 좁히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습니다. 이 장면은 대서양 건너 워싱턴 D.C.의 풍경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본격화되면서, 백악관은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국제기구 무용론을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시의 관료들과 여의도의 전략가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가 교과서적으로 믿어왔던 '가치 동맹'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 내에서 ECHR 탈퇴 여론이 비등하다는 것은, 한국이 의존해 온 다자주의 무역 질서와 국제법 중심의 외교 안보 프레임이 더 이상 서구 선진국들의 공통된 상식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가디언(The Guardian)의 수석 정치 평론가가 지적했듯, "브레이버먼의 개혁론은 트럼프 2.0 시대의 시대정신(Zeitgeist)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는 분석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느린 국제 협력 대신, 빠르고 직관적인 국가 이익의 실현을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포장하며 대중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게 단순한 관찰의 대상을 넘어 실존적인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수출 중심 경제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 공조에 사활을 걸어온 우리에게, '국제법의 권위'가 런던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부정당하는 현실은 외교 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합니다. 브레이버먼이 런던에서 울린 경보음은 단순히 영국의 내부 사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각자도생'이 새로운 글로벌 표준(New Normal)이 된 2026년, 규칙을 지키는 자가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냉혹한 국제 정치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대서양을 건너온 고립주의의 파도

대서양은 더 이상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내해(內海)가 아닙니다. 워싱턴과 런던 사이를 오가는 것은 이제 '가치 동맹'의 확인이 아니라, 철저한 국익 우선주의라는 새로운 암호문입니다. 2026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주도하는 고립주의 파고는 영국 보수당의 강경 개혁론과 만나 거대한 공명(Resonance)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24년 이후 영국의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했든, 경제적 생존을 위해 미국 시장에 접근해야 하는 런던의 입장은 트럼프의 '규제 철폐' 압박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냈습니다.

런던 금융가 '더 시티(The City)'의 분위기는 이를 방증합니다. 비록 현 집권당이 노동당일지라도, 경제계는 생존을 위해 '제2의 빅뱅' 수준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티 오브 런던 코퍼레이션(City of London Corporation)의 최근 보고서는 "미국 시장과의 동조화를 위해 브뤼셀(EU) 식의 ESG 규제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영국이 유럽 대륙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과 결별하고, 뉴욕과 직접 연결되는 '규제 자유 구역'으로 변신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러한 경제적 밀착이 사법 및 인권 분야의 '탈(脫)국제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 내 강경파가 주도하는 ECHR 탈퇴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형사재판소(ICC)나 세계무역기구(WTO)를 대하는 태도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양국 모두 자국 법률의 절대적 우위를 주장하며 초국가적 사법 기구의 권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윤리, 법, 무력 분쟁 연구소(ELAC)'가 2025년 보고서에서 지적했듯, 이는 2차 대전 이후 서구 세계를 지탱해 온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합의가 그 설계자들에 의해 내부로부터 해체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앵글로색슨 요새화'는 한국의 외교 전략에 심각한 딜레마를 던집니다. 그동안 여의도와 세종의 전략가들은 '한미동맹'과 '민주주의 가치 연대'를 동의어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블록이 다자주의 규범보다 자국 우선주의와 거래적 관계를 앞세운다면, 한국이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국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영국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중심의 정보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이에 동조하는 흐름은 주목해야 합니다.

무너지는 전후 체제의 방파제

런던과 워싱턴, 스스로 걷어차는 '법의 사다리'

1945년 얄타와 포츠담에서 설계된 전후 국제 질서의 핵심은 '힘'이 아닌 '규범'이 세계를 지탱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유엔 헌장과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거대한 방파제를 쌓아 올린 주역은 다름 아닌 미국과 영국이었습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이 방파제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은 외부의 파도가 아니라 방파제 안쪽의 설계자들입니다. 영국 내에서 힘을 얻고 있는 강경 개혁 담론과 미국 트럼프 2.0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는 서구가 스스로 구축한 시스템을 해체하는 과정입니다.

최근 런던 정가에서 재점화된 '유럽인권협약(ECHR)' 탈퇴 논의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2025년 채텀하우스(Chatham House)가 발행한 '주권의 귀환' 보고서가 지적했듯, 영국의 ECHR 탈퇴 움직임은 단순한 이민 통제 문제를 넘어섭니다. 이는 "국가 주권이 초국가적 법률적 판단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철학의 선언이자, 윈스턴 처칠이 초석을 놓았던 유럽 인권 체제와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영국이 국제 조약 준수 의무를 '선택적 옵션'으로 격하시키는 순간, 국제법 준수를 생존 전략으로 삼아온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이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집니다.

대서양 건너편의 상황은 더욱 노골적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는 체계적인 '거래주의적 국제관'을 확립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이 제언한 "미국의 헌법적 가치와 상충되는 다자 조약의 전면 재검토"는 미 통상대표부(USTR)의 WTO 분쟁 해결 절차 무력화로 이어졌습니다. 과거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서 규범의 집행자 역할을 했다면, 2026년의 미국은 '세계의 건물주'로서 임대료(분담금 및 관세)를 내지 않는 세입자에게는 법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앵글로스피어(Anglosphere)'의 변심은 한국 외교에 심각한 경고등을 켭니다. 한국은 그동안 미·중 갈등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라는 닻에 의지해 왔습니다. 통상은 WTO 규범으로, 안보는 유엔 결의안과 상호방위조약으로 지탱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규범의 창시자들이 먼저 그 룰을 깨기 시작한 지금, 한국이 계속해서 '국제법 준수'만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위험이 큽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2025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구권의 이러한 규범 이탈은 남반구(Global South) 국가들에게 "서구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위선"이라는 명분을 제공하며,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대안적 질서 구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가 '법의 지배'에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19세기적 야생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섬나라의 도박과 경제적 청구서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이라는 화려한 구호 아래 시도된 영국의 독자 노선은 2026년 1월 현재, 냉혹한 경제적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비록 정치권은 주권을 외치지만, 경제 현장은 고립의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영란은행(BoE)이 최근 발표한 '2026 경제 전망 하방 시나리오'에 따르면, 규제 완화로 인한 단기적인 기업 투자 유입 효과는 비관세 장벽의 증가와 교역 비용 상승으로 인해 상쇄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 주권 회복을 명분으로 경제적 실리를 희생한 사례로, 여의도 금융 전략가들이 주목해야 할 '정치 리스크의 경제화' 현상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임기 시작과 함께 천명한 '상호주의 무역(Reciprocal Trade)' 원칙은 영국에게 뼈아픈 딜레마를 안겨주었습니다. 영국은 미국과의 포괄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환경 및 노동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으나, 돌아온 것은 미국 시장의 문호 개방이 아닌, 자국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압박과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요구였습니다. 런던 정경대(LSE)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이 EU 규범에서 멀어질수록 대유럽 수출 비용은 분기당 평균 1.5%씩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제조업 기반이 약화된 영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2024-2026 주요국 경제 성장률 전망 및 수정치 (단위: %)

위 차트는 영국의 경제 성장률이 유로존이나 미국에 비해 뚜렷하게 둔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2026년 전망치는 0.1%로 사실상 제로 성장에 가깝습니다. 이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개혁론이 필수 공공재의 공급 실패로 이어질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경고처럼, 사회적 인프라가 약화된 상태에서의 무리한 대외 개방은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결국 포퓰리즘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영국의 사례는 국제 규범의 붕괴가 가속화되는 트럼프 2.0 시대에, 중견국이 독자 생존을 모색할 때 겪게 되는 한계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중력'에 휩쓸려 전통적인 우방인 유럽과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약화시킨 결과, 영국은 대서양 사이에서 고립된 섬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는 다자주의 무역 질서와 한미 동맹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한국에게, 맹목적인 '코드 맞추기'식 외교가 얼마나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는지 시사하는 강력한 반면교사입니다.

통상 국가 한국의 좁아지는 입지

규범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벌거벗은 힘의 논리뿐입니다. 2026년 현재, 한국 외교가 마주한 가장 뼈아픈 현실은 우리가 그토록 성실히 따라왔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작 그 설계자들인 서구 열강이 먼저 폐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 내 '국가 복원' 슬로건과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별개의 현상이 아닙니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무역을 지탱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의 퇴조이자, 수출로 먹고사는 통상 국가 한국에게 보내는 명백한 경고장입니다.

런던 금융가에서는 "이제 '공정'이나 '규범'을 따지는 것은 사치이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벽을 높이 쌓는 것만이 선(善)"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는 트럼프 2.0 행정부가 시행 중인 보편적 기본 관세(Universal Baseline Tariff) 정책과 정확히 공명합니다. 한국이 WTO 제소나 국제법적 대응을 운운하는 사이, 주요국들은 이미 심판이 사라진 링 위에서 글러브 안에 납덩이를 넣고 있습니다.

G7 국가의 안보 명목 무역 제한 조치 건수 (2022-2026)

위 차트가 보여주듯, 2024년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이 가시화된 시점부터 서구권의 무역 장벽은 수직 상승했습니다. 이 그래프의 기울기는 곧 한국 기업들이 겪는 불확실성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더 이상 '품질 좋고 가격 경쟁력 있는' 제품만으로는 이 장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딜레마는 여기서 깊어집니다. 우리는 여전히 '규범 준수자(Rule-follower)'로서의 모범생 콤플렉스에 갇혀 있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다자주의의 복원을 호소하고 국제 회의에서 규범 준수를 외치지만, 이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워싱턴과 런던의 정책 결정자들은 이미 '포스트 규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유연한 전략

현실의 자각: 무너진 댐과 새로운 항로

"국제법은 더 이상 약소국의 방패가 아니다." 이는 2026년 1월, 런던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확인된 냉혹한 현실입니다. 영국 정치권의 ECHR 탈퇴 논란과 트럼프 2.0 행정부의 초강경 이민 및 통상 정책은 '규범 기반 국제 질서'의 해체를 알리는 명백한 신호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의 전략가들과 세종시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제 불편한 질문을 마주해야 합니다. 지난 수년간 한국 외교의 근간이었던 '가치 외교(Value Diplomacy)'는 과연 유효한가? 바이든 시대에 구축된 '민주주의 연대'라는 틀은, 각자도생의 시대에도 우리의 국익을 지켜줄 수 있는가? 대답은 회의적입니다. 우리가 '자유, 인권, 법치'를 외치며 서구 주류에 밀착하는 동안, 정작 그 파트너들은 자국 우선주의라는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가치 외교의 함정과 '거래적 리얼리즘'

따라서 2026년 한국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의 대대적인 확장입니다. 이는 기존 한미 동맹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의 성격을 '가치 공유'에서 '이익 공유'로 재정의하는 과정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무역 수지 개선 압박을 단순한 '동맹의 위기'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를 레버리지로 삼아야 합니다. 한국의 AI 반도체 기술이나 방산 능력을 미국 공급망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 고리로 격상시키고, 이를 반대급부로 내세우는 '철저한 거래(Transaction)'를 성사시켜야 합니다.

다자주의의 종말과 '기능적 소다자주의'

또한, 마비된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공백을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로 신속히 메워야 합니다. WTO나 UN 같은 거대 담론의 장이 기능을 멈춘 상황에서, 특정 이슈와 이익을 중심으로 뭉치는 소규모 협의체는 생존을 위한 필수 도구입니다. 영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시사하듯, 지리적 인접성보다는 경제적·안보적 필요에 따른 이합집산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캐나다, 호주, 그리고 브렉시트 이후 독자적 생존을 모색하는 영국과 함께 '중견국 연대(Middle Power Coalition)'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미·중 양자 택일의 압박을 완충할 '제3의 지대(Third Zone)'를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지금은 '가치'라는 닻을 잠시 올리고, '국익'이라는 나침반을 다시 설정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