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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의 촛불: 사라지는 증언자들과 2026년 기억의 연대

AI News Team
버킹엄의 촛불: 사라지는 증언자들과 2026년 기억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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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흐르는 버킹엄, 예우를 갖춘 만남

2026년 1월, 런던의 겨울비가 젖어드는 버킹엄 궁전. 평소 화려한 연회장 대신 낮은 촛불만이 일렁이는 접견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HMD)을 맞아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가 생존자들을 맞이한 현장은 왕실의 권위보다는 '기억의 계승'이라는 인류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는 엄숙한 성소(聖所)에 가까웠다.

국왕은 화려한 훈장 대신 짙은 색의 정장을 택했고, 생존자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췄다. 이날 만남의 중심에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몸소 겪은 98세의 에스더(가명) 씨가 있었다. 그녀의 야윈 손목 위에는 여전히 선명한 수인 번호가 새겨져 있었으며, 찰스 3세는 그 번호 위로 시선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녀의 회고를 경청했다.

"폐하, 사람들은 숫자를 기억하지만 저는 그날의 냄새와 추위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누가 이 기억을 증언하겠습니까?"

에스더 씨의 물음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 생존자가 자연사로 인해 급격히 줄어드는 '포스트 위트니스(Post-Witness)'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서늘한 경종이었다. 영국 홀로코스트 기념재단(HMDT)의 2026년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직접적인 육성 증언이 가능한 생존자의 수는 매년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의 '기억의 공백'은 국제 사회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윤리적 위협 중 하나로 꼽힌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추이 및 2026년 이후 전망 (출처: HMDT 2026 Projections)

2026년, 다시 고개 드는 야만의 징후

이러한 만남이 주는 울림은 2026년 현재의 글로벌 정세와 맞물려 더욱 깊은 함의를 갖는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운 트럼프 2.0 행정부의 고립주의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자국 우선주의는 인권과 인도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축시키고 있다. 런던경찰청(Met Police)의 1월 예비 통계에 따르면, 올해 영국 내 반유대주의 범죄는 전년 대비 15% 급증했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정치적 양극화가 '타자화'를 정당화하는 풍경 속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한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와 같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야만'이다. 과거의 홀로코스트 부정이 투박한 텍스트와 조악한 이미지에 의존했다면, 2026년의 왜곡은 정교한 딥페이크 기술로 무장하여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분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런던의 비영리 연구소인 '디지털 메모리 센터(DMC)'가 발표한 보고서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기록 영상을 조작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비트는 숏폼 콘텐츠의 유통량이 전년 동기 대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주요 소셜 플랫폼 내 역사 수정주의 콘텐츠 증가 추이 (2024-2026)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틱톡에서 본 조작된 영상을 '진짜 역사'라고 믿고 질문할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며, "과거에는 무지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정교하게 조작된 '가짜 지식'이 진실을 압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물리적 증인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확증 편향을 무기로 한 '소음'이다.

한국 사회와 기억의 연대

찰스 3세 국왕은 이날 짧은 담화를 통해 "기억하지 않는 과거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증언자들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국가 공동체가 가져야 할 '대리 기억'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제강점기의 강제 동원 및 위안부 피해자 등 역사적 비극의 직접적인 목격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단순한 피해의 기록이 아니라 다시는 그러한 야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윤리적 근육'이기 때문이다.

실제 2026년 1월 기준 국내 역사 교육 단체들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아카이빙 프로젝트 참여도는 전년 대비 15.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정민우(26) 씨는 "홀로코스트의 촛불은 곧 우리의 할머니들이 외쳤던 진실의 등불과 맞닿아 있다"며 "과거를 지우려는 힘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더 밝게 기억의 불을 지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 기억은 동사(動詞)다

버킹엄 궁의 촛불은 81년 전의 어둠을 비추는 동시에, 지금 우리 곁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차별의 어둠을 향하고 있다. 에스더 씨가 찰스 3세의 손을 잡으며 건넨 무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혐오는 언제든 다시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6년의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적은 망각이며, 이에 맞서는 기억의 연대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시급한 안보 전략이다. 증언 없는 시대, 진실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며, 때로는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영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