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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의 촛불과 침묵: 2026년, '증인 없는 시대'의 기억법

AI News Team
버킹엄의 촛불과 침묵: 2026년, '증인 없는 시대'의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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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7일 밤, 런던의 심장부 버킹엄 궁은 평소의 위압적인 황금빛을 거두고 깊은 침묵 속에 잠겼다. 관광객들의 환호와 근위병 교대식의 절도 있는 발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흔들리는 촛불만이 궁의 거대한 그림자를 밝히고 있었다. 찰스 3세 국왕이 즉위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현대 군주제의 도덕적 의무'가 가장 극적으로 시각화된 순간이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대신 켜진 촛불은 단순한 추모의 도구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자국 우선주의와 혐오의 시대에 인류가 지켜야 할 마지막 이성의 불씨처럼 위태롭지만 선명하게 타올랐다.

이날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는 궁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생존자들을 맞이했다. 휠체어에 의지하거나 가족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고령의 생존자들. 영국 내 유대인 커뮤니티 통계에 따르면, 생존자의 평균 연령은 이미 9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 국왕은 의례적인 악수 대신, 떨리는 노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그들의 눈을 응시했다. 이는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비극을 반복할 형벌을 받는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경고를, 왕관의 무게를 빌려 런던과 세계를 향해 묵직하게 던지는 무언의 시위였다.

세대를 잇는 다리: 육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과제

올해 홀로코스트 추모일(HMD)의 공식 주제인 **'세대를 잇는 다리(Bridging Generations)'**는 생존자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024년의 주제가 '자유의 연약함'을 경고했다면, 2026년은 이제 그 경고를 육성으로 들려줄 증인들이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가 어떻게 '이양'받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행사장은 예년과 달리 생존자의 증언 시간보다, 그들의 손자·손녀 세대가 촛불을 이어받는 의식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생존자의 주름진 손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손으로 촛불이 옮겨지는 순간, 장내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 통제 정책과 유럽 내 극우 정당의 약진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2026년의 현실 속에서, 기억의 주체가 바뀌어야 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캔버스에 박제된 기억: 故 릴리 에버트가 남긴 눈빛

버킹엄 궁 퀸즈 갤러리 한편에는 특별한 전시가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찰스 3세가 2022년, 웨일스 공(Prince of Wales) 시절 직접 의뢰하여 완성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 7인의 초상'이 4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금 조명받은 것이다. 당시 생존자들의 모습을 담아낸 이 초상화들은, 이제 육체적 한계로 행사장에 직접 참석하기 어렵거나 세상을 떠난 이들을 대신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찰스 3세는 지난 2024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릴리 에버트(Lily Ebert) 여사의 초상화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틱톡(TikTok)을 통해 전 세계 MZ세대에게 알렸던 그녀는 떠났지만, 캔버스 속 강인한 눈빛은 시간의 풍화를 견디며 2026년의 관람객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국왕이 권위를 내려놓고 예술을 통해 기억을 보존하려 했던 노력은, 생존자가 사라진 '포스트 증언(Post-Witness)'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답을 제시한다.

증인이 사라진 시대, 부활하는 혐오와 '가짜 역사'

그러나 궁 밖의 현실은 냉혹하다. 베를린 미테 지구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는 나치 희생자를 기리는 보도블록 동판 '걸림돌(Stolpersteine)'이 훼손되거나 낙서로 더러워지는 사건이 빈번해지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던 독일 사회의 공기조차 트럼프 2.0 시대의 고립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열풍 속에서 미묘하게 탁해지고 있다는 현지의 우려가 나온다. '살아있는 증인'이 사라져가는 틈을 타, 혐오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는 불길한 징후다.

더욱 심각한 것은 디지털 공간의 오염이다. 2026년의 인터넷 공간은 AI가 생성한 그럴듯한 '가짜 역사'와 수정주의적 음모론이 판을 치는 전쟁터가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과장되었다"거나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은 팩트체크가 따라잡기도 전에 숏폼(Short-form) 콘텐츠를 타고 전 세계 청소년들의 스마트폰으로 침투한다. '진실의 무게'를 짊어진 노인들의 목소리는 잦아드는데, 혐오의 확성기는 6G 네트워크를 타고 빛의 속도로 거짓을 퍼나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유럽만의 위기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든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존자의 육성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역사의 비극이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위기임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 찰스 3세의 촛불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억의 횃불, 이제 우리의 손으로

버킹엄 궁전의 샹들리에가 꺼지고 마지막 생존자가 떠난 자리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남았다. 2026년 찰스 3세가 주재한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는 단순한 왕실의 의례를 넘어, 인류가 직면한 '증언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영국과 유럽 사회는 이미 이 시대를 대비해 AI 기반의 홀로그램 증언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기술은 도구일 뿐, 기억을 계승하는 본질은 결국 살아있는 세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찰스 3세가 켜 든 촛불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웅변한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정치적 자산이 되는 현실에서,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것은 미래의 야만을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다.

이제 횃불은 우리의 손으로 넘어왔다. 생존자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던 위로의 단계를 넘어, 이제는 그들이 남긴 피 묻은 증언을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안아야 한다. 역사는 묻고 있다. 마지막 증언자가 사라진 후,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