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애폴리스의 역설: '국경 장벽'은 왜 내부 붕괴를 막지 못했나

혹한 속 총성, 공허해진 국경 슬로건
2026년 1월, 미니애폴리스의 살을 에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울린 총성은 역설적으로 워싱턴 정가에 기이한 침묵을 가져왔다. 통상 민주당 강세 지역인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에서 강력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화당 지도부가 보여왔던 즉각적이고 맹렬한 비난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줄곧 "국경이 곧 안보"라 외치며 남부 국경 장벽 강화에 행정력을 집중해온 백악관조차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 침묵은 단순한 정무적 판단 유보가 아니라, 공화당이 마주한 새로운 딜레마, 즉 '외부의 적'을 막는 데 치중하느라 '내부 시스템'의 붕괴를 놓쳤다는 뼈아픈 자각을 방증한다.
이번 미니애폴리스 사태의 본질은 단순 치안 부재가 아닌, 인프라 마비가 초래한 공권력의 진공 상태였다. 혹한을 견디지 못한 전력망이 셧다운되자 보안 시스템이 무력화되었고, 마비된 도로는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이 사건은 국가 안보의 개념이 물리적 국경선을 넘어,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기반 시설의 안정성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미국 우선주의'의 그늘: 방치된 심장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 아래 국토안보부(DHS) 예산의 상당 부분은 텍사스의 국경 장벽 보강과 첨단 감시 기술 도입에 투입되었다. 그 사이, 미국 중서부의 심장을 지탱하던 낡은 전력망과 배관 시스템은 조용히 붕괴의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었다. 미국 토목학회(ASCE)가 2025년 인프라 보고서에서 "미국 주요 인프라의 평균 학점은 C- 수준"이라며 상하수도와 전력망의 내구연한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워싱턴의 정치적 셈법은 철저히 '외부의 적'에 맞춰져 있었다.
미니애폴리스 외곽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교민 김영수(가명) 씨의 절규는 이러한 정책적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선거 때는 국경만 막으면 미국이 다시 안전해질 것처럼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내 가게와 집을 박살 낸 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3일째 끊긴 난방과 터져버린 수도관"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재난은 단순한 기상이변의 결과가 아니다. 안보를 위해 감내했던 비용이 정작 자신의 삶을 지키는 데는 쓰이지 않았다는 배신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에 따르면, 2026 회계연도 국방 예산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동안, 연방 재난 관리 및 노후 인프라 유지 보수 예산은 '규제 완화' 명목하에 전년 대비 12% 삭감되었다.
2026 회계연도 미국 안보 vs 내부 인프라 예산 증감률 비교
유권자의 변심: 공포의 대상이 바뀌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반이민' 구호가 얼어붙은 현실 앞에서 힘을 잃고 있다. 수십 년간 방치된 노후 인프라와 안일한 행정 시스템의 합작품이라는 자명한 사실은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의 인식에 분명한 균열을 만들고 있다. 분노의 대상이 '외부의 침입자'에서 '무능한 내부 시스템'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폭스뉴스와 하트랜드 연구소의 공동 여론조사는 이러한 민심의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2026년 1월 말, 위스콘신, 미시간 등 주요 경합주 유권자들에게 '국가 안보에 가장 시급한 위협'을 물은 결과, '사회 기반 시설 붕괴 및 정부의 무능'이라는 응답이 41%로 1위를 차지했다. 불과 두 달 전 45%로 압도적 1위였던 '불법 이민 및 국경 문제'는 26%로 급락했다.
미 중서부 공화당 지지층의 최대 안보 위협 인식 변화 (폭스뉴스/하트랜드 연구소, 2026.01)
위스콘신에서 작은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마이클 존슨(가명) 씨의 분노는 개인의 불만을 넘어, 공화당이 직면한 정치적 딜레마를 상징한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그는 지역 언론에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으라고 그를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너진 것은 내 사업의 생명줄인 주(州)간 고속도로였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딜레마에 빠진 코끼리, 안보를 재정의하라
미니애폴리스 사태는 공화당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이밀고 있다. 외부의 벽을 높이는 동안 내부의 기둥이 썩어간다면, 그 요새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공화당 내부는 '이념적 순수성'을 고수하며 국경 봉쇄 강화를 외치는 강경파와, "지금 필요한 것은 텍사스의 철조망이 아니라 미네소타의 난방 파이프"라며 긴급 인프라 예산 편성을 요구하는 실용주의파로 갈라지고 있다. 이는 보수 진영이 정의해 온 '국가 안보'의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유권자들은 "무엇이 진정한 안보인가?"를 묻고 있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경을 잠그는 것만이 아니라, 혹한 같은 재난에서도 국민이 얼어 죽지 않도록 시스템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진짜 안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다가오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은 '국경을 지키는 당'이라는 기존의 정체성과 '국민의 삶을 지키는 당'이라는 새로운 요구 사이에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는 한국에도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K-방산' 수출 실적에 환호하는 동안, 지하에 매설된 30년 넘은 열수송관과 통신구는 조용히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화려한 마천루나 최첨단 무기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순간에도 시민의 일상을 지켜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견고함에서 증명된다. 무너진 미니애폴리스의 전력망 앞에서, 우리는 지금 안보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