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ALK.
Economy

영국 부동산의 지각변동: '지대(Ground Rent)' 폐지와 21세기 봉건제의 종말

AI News Team
영국 부동산의 지각변동: '지대(Ground Rent)' 폐지와 21세기 봉건제의 종말
Aa

내 집인 듯 내 집 아닌: 런던 아파트의 역설

런던 템즈강변의 화려한 스카이라인 뒤에는 11세기 노르만 정복 시대부터 이어져 온 중세의 유산이 끈질기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한국의 '아파트 키즈'들에게는 낯설기 그지없는 풍경이지만, 영국 부동산 시장의 핵심은 여전히 건물과 토지의 소유권을 분리하는 이원화된 구조, 즉 '리스홀드(Leasehold)' 시스템에 묶여 있습니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옷을 입은 '21세기형 봉건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런던 금융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인근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명) 김서연 씨(36)**의 사례는 이 시스템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3년 전, 소위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60만 파운드(약 10억 원) 상당의 2 베드룸 아파트를 매입한 김 씨는 최근 매도를 준비하다가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아파트 계약서에 포함된 '지대(Ground Rent) 10년 주기 배가 조항(Doubling Clause)' 때문에, 제1금융권 은행들이 예비 구매자에게 주택담보대출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 씨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매달 수십만 원의 관리비(Service Charge)는 엘리베이터 유지보수나 컨시어지 서비스의 대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내야 하는 수백 파운드의 지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비용입니까? 땅 주인(Freeholder)은 건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말이죠. 내 돈 주고 산 내 집인데, 마치 평생 월세를 내는 세입자가 된 기분입니다." 김 씨의 토로는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 내 500만 명 이상의 리스홀더들이 겪고 있는 구조적 착취의 현실입니다.

리스홀드는 엄밀히 말해 소유권이 아닌 '장기 임차권'입니다. 수십억 원을 지불하고 등기를 마쳤다 해도, 구매자는 건물 내부의 공간을 99년 혹은 125년 동안 점유할 권리만 샀을 뿐입니다. 땅은 여전히 프리홀더의 소유이며, 집주인은 땅 주인에게 토지 사용료인 '지대'를 납부해야 합니다. 한국의 집합건물법상 아파트 소유자가 대지권(토지 지분)을 건물과 함께, 불가분의 관계로 소유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입니다.

문제는 이 낡은 관행이 현대 금융 공학(Financial Engineering)과 결합하며 괴물로 변질되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페퍼콘(Peppercorn·후추 한 알)'이라 불릴 만큼 상징적인 금액에 불과했던 지대가, 2000년대 이후 개발업자들과 투기 자본의 수익 모델로 악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리스홀드 지대 상승 시뮬레이션: 고정액 vs 10년 배가 조항 (단위: 파운드)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초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았던 지대가 복리 효과를 통해 수십 년 후에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등하게 됩니다. 이는 자산 가치를 갉아먹는 치명적인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작용합니다.

2026년 현재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인 개혁안이 지대 상한선을 연간 250파운드(약 42만 원)로 묶거나 아예 '0원'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배경에는 이러한 절박함이 깔려 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중산층에게, 아무런 용역도 제공하지 않는 불로소득(Unearned Income) 성격의 지대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갑질'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 개혁법안과 '페퍼콘'의 경제학

영국 법률 용어에서 '페퍼콘(Peppercorn, 후추 열매)'은 요리에 쓰이는 향신료가 아닌, '명목상의 가치'를 뜻하는 강력한 법적 장치로 통용됩니다. 2024년 제정된 '리스홀드 및 프리홀드 개혁법(Leasehold and Freehold Reform Act 2024)'의 핵심은 바로 이 페퍼콘의 경제학에 있습니다. 과거 토지 소유주(프리홀더)가 주택 점유자(리스홀더)에게 요구하던 연간 수백 파운드에서 수천 파운드에 이르는 지대(Ground Rent)를 법적으로 '0원(Peppercorn rent)'으로 강제하거나, 극도로 제한하려는 시도가 이 법안의 골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주거비 경감을 넘어, 수 세기 동안 영국 부동산 시장을 지배해 온 자본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런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인근의 고층 아파트를 15년째 보유 중인 (가명) 박지훈 씨의 사례는 이 변화가 개인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박 씨는 매년 400파운드(약 70만 원)의 지대를 건물주에게 납부해왔으며, 이 금액은 10년마다 두 배로 인상되는(doubling clause) 계약 조건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4년 개혁법안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2026년 현재, 그가 리스 연장을 신청할 때 적용되는 지대는 '페퍼콘', 즉 0원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이는 리스홀더인 박 씨에게는 주거 비용의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축복이지만, 해당 건물의 프리홀드를 소유한 투자 기관 입장에서는 확정된 미래 현금 흐름이 증발하는 재앙입니다.

문제는 이 '증발한 현금 흐름'의 규모가 천문학적이라는 점입니다. 영국 주택부(Department for Levelling Up, Housing and Communities)의 초기 영향 평가 보고서와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금융 분석을 종합해보면, 지대 수입을 기초 자산으로 삼는 연기금과 보험사들의 자산 가치 하락분은 최대 270억 파운드(약 4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블랙스톤(Blackstone)이나 웰컴 트러스트(Wellcome Trust) 같은 거대 자본이 영국 정부의 개혁안에 대해 "유럽 인권 협약(ECHR) 제1의정서 제1조(재산권 보호) 위반"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부가 사유 재산인 임대료 수익권을 정당한 보상 없이 박탈하려 한다는 논리입니다.

영국 프리홀드 자산 가치 변동 추이 및 예측 (2023-2026)

위 차트에서 볼 수 있듯, 프리홀드 자산의 가치는 법안 통과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시장은 이미 지대 수익의 소멸을 가격에 선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영국 부동산에 투자한 한국의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 등 해외 기관 투자자들에게도 직접적인 포트폴리오 재조정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반발을 의식하여 기존 계약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0원'화 대신, 연간 250파운드(약 43만 원) 상한선(cap)을 두거나, 시장 가치의 0.1%로 제한하는 타협안을 제시하며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어떤 방식을 택하든 프리홀드 가치의 20~40% 하락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는 부동산을 '안전한 채권'처럼 운용해 온 금융 자본주의의 문법이 '거주권 중심'의 사회적 요구 앞에서 무력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입니다.

프리홀더의 반격: 연기금과 인권법의 충돌

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지대(Ground Rent)' 폐지는 단순히 세입자의 부담을 줄이는 민생 대책을 넘어, 수십 년간 고착화된 영국 부동산 금융의 근간을 뒤흔드는 '금융적 핵폭탄'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조 원에 달하는 퇴직 연금을 운용하며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지대 수입을 편입시켜 온 거대 연기금과 보험사들은 이번 개혁을 '국가에 의한 재산권 강탈'로 규정하며 전례 없는 법적 투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투자 시장에서는 지대 수익권(Ground Rent Portfolios)을 국채와 유사한 초장기 안전 자산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2024년 세빌스(Savills)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내 지대 수익권의 전체 시장 가치는 약 100억 파운드(한화 약 17조 원)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기존 계약에 소급 적용하여 지대를 '페퍼코른(Peppercorn, 사실상 0원)' 수준으로 강제 인하할 경우, 이 자산 가치는 하룻밤 사이에 휴짓조각이 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는 곧 국민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연기금의 수익률 하락으로 직결되며, 한국의 국민연금과 유사한 성격의 공공 부문 연기금들조차 자산 재평가라는 직격탄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반격 카드는 '유럽인권협약(ECHR) 제1의정서 제1조'입니다. 이는 모든 자연인과 법인이 자신의 소유물을 평화롭게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는 재산권 보호 조항입니다. 프리홀더들을 대변하는 법무법인들은 정부의 소급적 지대 폐지가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비례성을 상실했으며, 적절한 보상 없는 권리 박탈은 인권법 위반이라고 주장합니다. (가명) 박준형 글로벌 부동산 애널리스트는 "기관 투자자들은 단순한 임대업자가 아니라, 정부가 승인한 법적 틀 내에서 합법적인 수익권을 구매한 투자자들"이라며, "정부가 정치적 인기를 위해 계약의 소급적 파기를 정당화한다면 영국의 대외 신인도와 사유재산권의 성역은 무너질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기관 투자자들의 강력한 저항은 개혁의 속도 조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주택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법적 분쟁으로 인한 개혁 지연 리스크와 연기금 손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단계적 상한제(Cap)'나 '일시적 보상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주거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과 자본주의의 핵심 원칙인 재산권 보호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입니다.

영국 지대 개혁안에 따른 기관 투자자 예상 자산 가치 하락 (출처: Knight Frank 2026)

이러한 갈등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주거 안정을 위해 토지 소유주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번번이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벽에 부딪혔던 경험 때문입니다. 영국의 사례는 부동산을 '거주 공간'으로 보는 시민들의 요구와 '수익 자산'으로 보는 자본의 논리가 타협점을 찾지 못할 때, 국가가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커먼홀드: 진정한 소유권으로의 험난한 여정

영국 부동산 시장에서 '커먼홀드(Commonhold)'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영국 땅에서는 가장 낯선 개념입니다. 한국의 아파트 거주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구분소유권(Strata Title)', 즉 내가 사는 집의 전용 면적을 영구히 소유하고 대지 지분을 공동으로 나누어 갖는 방식이 바로 커먼홀드입니다. 그러나 2002년 영국 정부가 야심 차게 커먼홀드 제도를 도입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2026년 현재 영국 전체 주택 시장에서 커먼홀드 단지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준인 0.01% 미만에 불과합니다. 왜 한국에서는 '표준'인 이 제도가 금융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는 처참한 실패로 기록되고 있을까요?

그 해답은 '돈의 흐름'에 있습니다. 건설사(Developer) 입장에서 리스홀드(Leasehold)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아파트를 분양해 수익을 챙기고, 그 아파트가 깔고 앉은 땅과 건물의 소유권(프리홀더 권리)을 제3의 투자 기관에 매각해 '제2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주요 연기금과 보험사, 그리고 최근 공격적으로 진입한 미국계 사모펀드들에게 이 프리홀더 권리는 매년 따박따박 현금이 들어오는 안전한 채권과도 같습니다. 트럼프 2.0 시대의 고금리 기조 속에서도, 물가 상승률과 연동해 인상할 수 있는 지대 수익은 포기하기 힘든 매력적인 자산입니다. 즉, 커먼홀드의 도입은 건설사의 추가 이익과 금융 기관의 안정적 수입원을 동시에 박탈하는 행위이기에, 시장의 자발적 전환은 요원했던 것입니다.

2026년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인 개혁안이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부는 신규 주택의 리스홀드 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기존 리스홀더들이 훨씬 저렴하고 간소한 절차로 커먼홀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전세나 월세로 살던 집을 강제로 '자가'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기존 기득권인 대형 토지 소유주들과 자산 운용사들은 "사유 재산권 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으며, 런던 고등법원에는 위헌 소송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영국 내 주택 소유 형태 비율 (2025년 기준)

시장 붕괴인가, 정상화인가: 부동산 가치 재평가

런던 배터시(Battersea) 지역의 신축 아파트를 보유한 (가명) 정수민 씨는 최근 자산 평가액을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건물 소유주인 프리홀더(Freeholder)에게 매년 지불해야 했던 수천 파운드의 지대(Ground Rent)와, 향후 매각 시 프리홀더에게 떼어줘야 했던 막대한 '결합 가치(Marriage Value)'가 법 개정으로 사실상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정 씨의 아파트 가치는 장부상 급등했지만, 반대로 해당 건물의 토지 소유권을 쥔 투자 회사의 자산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추진한 '리스홀드 및 프리홀드 개혁 법안'이 2026년 본격적인 시행 궤도에 오르며 발생한 시장의 지각변동입니다.

영국 주택부(Ministry of Housing)와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의 자료를 종합하면, 이번 개혁의 핵심인 '지대 0원화(Peppercorn Ground Rent)'와 '임대차 연장 비용 표준화'는 기존 프리홀드 자산 가치에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와 같은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들은 2024년 법안 논의 당시부터 "프리홀드 자산 가치가 최대 40% 이상 증발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으며, 2026년 현재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지대는 더 이상 채권처럼 안정적인 현금 흐름(Cash Flow)을 창출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유지보수 책임과 법적 분쟁 리스크만 남은 '독이 든 성배'로 전락했습니다.

영국 부동산 권리 유형별 자산 가치 변동 추이 (2024-2026)

문제는 이 충격파가 단순히 악덕 건물주에게만 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수많은 연기금(Pension Funds)과 보험사들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며 프리홀드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대거 편입해 왔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아비바(Aviva)'나 '리걸 앤 제너럴(Legal & General)' 같은 기관 투자자들은 이번 개혁을 "재산권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제소할 움직임까지 보이며, 영국 정부가 사유 재산을 부당하게 박탈했다고 주장합니다.

2026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이 '규제 철폐'와 '자본의 자유'를 외치며 기업 친화적인 노선을 걷는 것과 대조적으로, 영국은 '주거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자본 시장의 룰을 강제로 변경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유사한 '영국 정책 리스크(UK Policy Risk)'를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시장은 현재 극심한 혼란, 즉 '가격 발견 기능(Price Discovery)'의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투자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국내 주요 공제회와 자산운용사들이 포함된 해외 부동산 펀드 중 일부는 영국의 오피스나 주거용 빌딩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들 구조의 상당수가 그라운드 렌트 수익을 기반으로 수익률을 산정했기 때문입니다.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던 선진국 부동산이 정치적 결단 한 번으로 '부실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글로벌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무조건적인 리스크 헤지 수단이 아님을 방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