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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치의 지각변동: 노동당의 텃밭 '고튼·덴튼'은 왜 흔들리는가?

AI News Team
영국 정치의 지각변동: 노동당의 텃밭 '고튼·덴튼'은 왜 흔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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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맨체스터의 산업적 유산을 상징하는 고튼·덴튼(Gorton and Denton) 지역구가 영국 정치 지형의 '태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노동당(Labour Party)의 견고한 텃밭으로 여겨졌던 이곳에서, 앤드류 그윈(Andrew Gwynne) 전 의원이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사임하며 치러지게 된 이번 보궐선거는 단순히 한 석의 의석수를 다투는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중간 평가이자, 2026년 영국 정치가 직면한 '대표성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잊혀진 계급의 역습: 노동계급당의 전략적 승부수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변수는 조지 갤러웨이(George Galloway)가 이끄는 영국 노동계급당(Workers Party of Britain, WPB)과 그들의 후보 샤바즈 사르와(Shahbaz Sarwar)입니다. 사르와는 2024년 지방선거에서 롱사이트(Longsight) 시의원으로 당선되며 지역 기반을 다진 인물로, "웨스트민스터의 엘리트가 아닌, 이웃의 목소리"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노동계급당은 지난 2024년 총선 당시, 노동당의 압승 분위기 속에서도 이 지역에서 10.3%라는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보수당(7.9%)을 앞선 수치로, 기성 양당 체제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이미 임계점에 달했음을 시사합니다. 사르와 후보는 고튼 지역의 높은 무슬림 인구 비중을 겨냥해 영국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트럼프 2.0 시대의 보호무역주의가 초래한 물가 상승 고통을 '서민 생존권' 문제로 프레임화하고 있습니다.

2024년 고튼·덴튼 총선 주요 정당 득표율 (출처: UK Electoral Commission)

위 차트에서 볼 수 있듯, 2024년 당시 노동계급당은 이미 상당한 고정 지지층을 확보했습니다. 만약 이번 보궐선거에서 이들이 2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이는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레드 월(Red Wall)'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선언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트럼프 2.0 시대, 지역 경제의 그늘과 민심

2026년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대서양 건너편 맨체스터의 골목 상권까지 타격을 입히고 있습니다. 고립주의적 무역 정책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영국의 수입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고, 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생활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로 이어졌습니다.

맨체스터 외곽에서 20년 넘게 식료품점을 운영해 온 (가명) 데이비드 스미스 씨는 현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2년 전 노동당을 찍었을 때와 지금 내 지갑 사정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트럼프의 관세 장벽 때문에 수입 식자재 가격이 15%나 뛰었는데, 런던의 정치인들은 거시 경제 지표만 이야기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제 '변화'라는 구호 대신 당장 내일의 가게 월세를 걱정해 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여의도 정치의 괴리'와 유사합니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상생'의 파트너가 아닌 표를 주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기성 정치권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사르와 같은 선명한 대안 세력에게 기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벽: 승자독식 구조와 스포일러 효과

물론 현실적인 장벽은 존재합니다. 영국 정치의 '단순 다수 대표제(First-Past-The-Post)'는 2등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지 않는 승자독식 구조입니다. 노동당의 조직력은 여전히 막강하며, 사르와 후보가 당선권인 35~40% 득표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러나 정치 분석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락 그 자체가 아닌 '스포일러 효과(Spoiler Effect)'입니다. 최근 급부상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개혁당(Reform UK)이 2024년 14.1%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세를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 진영의 표가 노동당과 노동계급당으로 갈라질 경우 선거 판도는 예측 불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사르와 후보가 노동당의 과반 득표를 저지하고 20%대 득표율로 '캐스팅 보터'로서의 존재감을 증명한다면, 이는 향후 영국 정치 지형의 파편화(Fragmentation)를 가속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결론: 시스템 밖의 목소리

결국 이번 고튼·덴튼 보궐선거는 단순한 지역구 선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효율'과 '성장'을 앞세운 거대 양당의 정치적 합의가, 벼랑 끝에 몰린 보통 사람들의 삶을 어디까지 지탱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시스템이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지 못할 때, 유권자들은 시스템 밖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과연 기성 정치는 이 거칠고 투박한 노동계급의 외침을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며 귀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절박한 구조 신호를 읽어낼 것인가? 2026년 영국 정치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