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수도요금 청구서: '밑 빠진 독' 인프라와 템즈 워터의 경고

4월의 고지서: 예고된 인상과 불투명한 셈법
2026년 4월, 서울의 봄은 만개한 벚꽃 대신 무거운 고지서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지난겨울 기록적인 한파로 인한 난방비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민들의 우편함에는 또 다른 '청구서'가 도착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로 상하수도 요금 인상입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수년간 동결해 온 요금의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고물가와 고금리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이번 인상은 단순한 공공요금 조정을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도미노'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10년째 백반집을 운영하는 김철수(가명) 씨의 한숨은 깊습니다. 김 씨는 "식재료 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솟았고, 인건비 부담에 키오스크를 들였는데 이제는 물값마저 오른다고 하니 장사를 접어야 하나 고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김 씨의 사례는 유별난 것이 아닙니다. 2026년 한국 경제는 '트럼프 2.0' 시대의 보호무역 장벽과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외부 충격, 그리고 내수 침체라는 내부 악재가 겹친 복합 위기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필수재인 물값의 인상은 외식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다시 가계의 실질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방아쇠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인상 그 자체가 아니라, 인상의 근거가 되는 '셈법'의 불투명성에 있습니다. 지자체들은 노후 상수도관 교체와 정수 시설 현대화를 위해 요금 인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1990년대 신도시 건설 붐 당시 매설된 배관들의 내구연한이 도래했다는 설명은 기술적으로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징수된 수도요금에 포함되어 있던 '수선유지비'는 과연 어디에 쓰였느냐는 시민사회의 질문에는 명쾌한 답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주요 도시 가구당 월평균 수도요금 추이 (단위: 원)
땅 밑의 시한폭탄: 노후 인프라라는 명분
"수도꼭지를 틀면 쏟아지는 것이 물이 아니라 돈이라면, 우리는 이토록 무감각할 수 있을까요?"
서울시를 포함한 주요 지자체들은 2026년 4월을 기점으로 가정용 및 일반용 상하수도 요금을 평균 9.8% 인상한다고 예고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세운 명분은 단호합니다. 바로 '땅 밑의 시한폭탄', 즉 노후 상수도관 교체입니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도시의 지반 아래는 지금 늙어가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2025년 상수도 통계'를 분석해 보면, 설치된 지 30년을 경과한 노후 상수도관의 비율은 전국적으로 35%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질의 문제를 넘어 안전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지난해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도로 함몰(싱크홀) 사고의 원인이 낡은 배수관에서의 누수였다는 국토교통부의 조사 결과는, 이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이 낡은 관을 통해 땅속으로 사라지는 '새는 돈'입니다. 정수장에서 깨끗하게 처리된 수돗물이 가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땅속으로 버려지는 비용은 2025년 기준 연간 8,500억 원에 달합니다. 이는 중형차 2만 대를 매년 땅에 묻는 것과 같은 규모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프라 노후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대 지자체장들은 표를 의식해 공공요금 억제 정책을 펴왔고, 그 결과 요금 현실화율(생산원가 대비 판매단가)은 수년째 80%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때 교체했어야 할 파이프라인은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방치되었고, 그 청구서가 2026년의 우리에게 이자와 함께 날아온 것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폭탄 돌리기' 행정의 결과이자, 미래 세대의 자산을 당겨 쓴 대가입니다.
템즈 워터의 교훈: 부채 위에 세워진 수도 제국
우리는 멀리 영국 템즈 워터(Thames Water)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영국 런던의 템즈강은 여전히 흐르지만, 그 물을 관리하던 '템즈 워터'의 신화는 2026년 현재 사실상 붕괴했습니다. 민영화된 수도 사업자인 템즈 워터는 수년간 막대한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지급하면서도, 정작 노후 배관 교체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런던 시내 곳곳에서 누수 사고가 빈발했고, 하수 처리 미비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결국 템즈 워터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위기에 몰리며 사실상 국유화 논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템즈 워터 사태의 본질은 '물'이라는 공공재가 금융 자본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에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경영진과 주주들은 노후화된 파이프를 교체하는 대신, 막대한 부채를 끌어와 수조 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챙기는 '자본 빼내기'에 골몰했습니다. 그 결과 런던 시민들은 누수율 25%라는 부끄러운 성적표와 함께, 경영 실패의 비용을 천문학적인 요금 인상으로 떠안고 있습니다.
한국의 수도 사업은 공공이 주도하고 있어 템즈 워터와 같은 극단적인 사익 추구는 없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요?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지자체의 예산 전용 의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수도 사업 특별회계가 다른 목적의 예산 부족분을 메우는 데 급급하게 쓰이거나, 인프라 투자보다는 조직 운영비로 과다하게 지출되고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수도 사업이 구조는 다르지만, '부채의 덫'이라는 메커니즘은 유사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깨진 독에 물 붓기: '가치 대 비용'의 딜레마
소비자는 합당한 서비스를 받는다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녹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요금만 올리는 것은 공공 서비스의 기본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2026년의 수도요금 논쟁은 단순히 '얼마를 더 내느냐'의 경제적 문제를 넘어, '우리가 내는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라는 사회적 정의(正義)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수도요금 인상률 대 노후 수도관 교체율 추이 (2020-2026)
위 지표는 뼈아픈 현실을 드러냅니다.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수도요금 인상률은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렸지만, 노후 수도관 교체율은 사실상 정체 상태입니다. 투입된 비용이 인프라의 질적 향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어딘가로 새어나가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마치 템즈 워터가 막대한 부채 이자를 갚느라 설비 투자를 등한시했던 것처럼, 우리의 수도 재정 역시 누적된 운영 적자와 비효율적인 인력 구조를 지탱하는 데 소모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물어야 합니다.
투명한 고지서를 위한 시민의 권리
이제 수도요금 고지서는 단순한 청구서가 아닌, '투자 설명서'로 진화해야 합니다. 내가 낸 요금 중 얼마가 정수 처리 약품비로 쓰였고, 얼마가 30년 된 주철관 교체에 투입되었으며, 얼마가 조직 운영비로 나갔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서울시가 시범 도입을 검토 중인 '스마트 워터 그리드' 대시보드는 긍정적인 신호이나, 기술적 보여주기를 넘어 실질적인 거버넌스 개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신뢰는 검증 가능성에서 나옵니다. "깨끗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선언적 구호만으로는 더 이상 2026년의 스마트한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4월부터 적용될 요금 인상분이 또다시 관행적인 조직 운영비 보전이나 불투명한 공사비로 새어 나간다면, 우리는 제2의 템즈 워터 사태를 한국형 공기업 버전으로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이 흐르는 관이 투명할 수는 없어도, 그 물값을 다루는 행정은 유리알처럼 투명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