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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청부 암살의 말로: 리베라 15년형, '대리전'을 향한 미국의 사법 경고

AI News Team
이란 청부 암살의 말로: 리베라 15년형, '대리전'을 향한 미국의 사법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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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8일, 브루클린 연방법원 4호 법정의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선 칼라일 리베라(Carlisle Rivera)는 더 이상 브루클린 거리를 활보하던 '해결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그에게 재판부는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는 검찰이 구형한 형량에 근접한 것으로, 단순한 청부 범죄 가담자가 아닌 외국 정부의 '사법 테러'를 실행한 하수인에게 내려진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번 사건을 "미국 본토의 주권을 침해하고,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돈으로 매수하려 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했습니다. 특히 이란 정부가 미국의 범죄 조직원을 고용해 반체제 인사를 납치하거나 살해하려 한 '아웃소싱' 방식의 범죄는, 전통적인 스파이 활동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비대칭 전쟁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리베라가 받은 15년형은 그가 챙긴 수수료 몇 천 달러의 대가치고는 가혹해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잠재적인 '제2, 제3의 리베라'들에게 보내는 워싱턴의 명확한 경고 메시지입니다. "외국 정부의 더러운 돈을 받는 순간, 당신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청부'의 저울: 설계자와 실행자의 운명

이번 판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계를 조금 되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인 2025년 말, 같은 사건의 또 다른 축인 라파엘 아미로프와 폴라드 오마로프에게는 25년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 '10년의 격차'는 미국 사법부가 외국 정부의 청부 범죄를 구성하는 '설계자'와 '실행자', 그리고 '현지 조력자'를 얼마나 정교하게 구분하여 단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아미로프와 오마로프는 이란의 사주를 받은 동유럽 범죄 조직 '도둑들(Thieves-in-Law)'의 핵심 간부로, 암살 음모의 설계와 지시를 맡은 '몸통'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내려진 25년형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응징이자, 테헤란을 향한 외교적 경고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반면, 리베라는 이들의 지시를 받고 뉴욕 브루클린의 거리에서 표적을 감시하고 실행을 준비한 '손발'이었습니다. 현지에서 포섭된, 어쩌면 금전적 이익에 의해 움직인 단순 하수인에 불과할 수 있는 그에게 15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것은 "미국 시민이거나 거주자라는 신분이 외국 정보기관의 범죄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트럼프 2.0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국경의 물리적 통제뿐만 아니라 사법적 주권의 방어벽 또한 높이고 있습니다. 리베라의 판결문 곳곳에는 '국가 안보'와 '주권 침해'라는 키워드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이는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전 국토안보부 장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초국가적 탄압(Transnational Repression) 대응 기조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시스템적으로 정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범죄 긱 이코노미'의 함정과 한국의 현실

디지털 플랫폼이 노동의 형태를 파편화시킨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그늘은 이제 합법적인 영역을 넘어 범죄의 세계까지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같은 국가 행위자는 더 이상 007 영화에나 나올법한 고도로 훈련된 요원을 적국에 직접 침투시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암호화된 메신저와 다크웹을 통해 현지의 '일용직 범죄자'를 고용합니다. 리베라와 그의 공범인 조나단 로드홀트(Jonathan Loadholt)는 바로 이 거대한 '범죄 하청 피라미드'의 최하단에 위치한 일회용 소모품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리베라가 인식한 것은 '이란 정부의 정치적 적대자 제거'라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그저 현금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가 걸린 '고수익 알바'였을 뿐입니다. 이는 범죄의 동기가 이념이 아닌 생계와 탐욕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며, 국가 안보 위협이 생활 범죄의 외피를 쓰고 우리 이웃 깊숙이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섬뜩한 증거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에도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탈북민이나 특정 망명객을 향한 위협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상의 물리적 위협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헐값에 청부 폭력을 의뢰하고, 암호화폐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 국경을 넘나드는 '청부의 세계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인권 단체 활동가들은 과거 공작원이 직접 움직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지인을 포섭해 '일회용 도구'로 쓰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라고 지적합니다.

끝나지 않은 공포: 사법적 단죄와 남겨진 과제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다음번엔 운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의 표적이 되었던 이란계 미국인 언론인 마시 알리네자드(Masih Alinejad)가 재판 직후 남긴 말은 칼라일 리베라의 15년형 선고가 '끝'이 아닌 '경고'에 불과함을 시사합니다. 리베라는 체포되었고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에게 살인을 사주하고 자금을 댄 '본체', 즉 이란 정보기관의 네트워크는 여전히 국경 너머 안전한 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이란 반체제 커뮤니티는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강력한 대이란 제재 기조가 역설적으로 이란 정부를 더 자극해, 해외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보복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합니다. 이민법 전문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이 현관 앞에 낯선 택배 상자만 놓여 있어도 경찰을 부를 정도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합니다.

결국 리베라의 15년형은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지만, 동시에 '범죄자의 수감'을 넘어선 '일상의 평온'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남겼습니다. 공포는 전염됩니다. 오늘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벌어진 일이 내일 서울의 강남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국가가 자국 내 거주하는 개인의 안전을 외국 권력의 위협으로부터 얼마나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가. 이것이 리베라의 판결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하고도 서늘한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