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ALK.
Politics

조시 샤피로의 '빛이 머무는 곳': 트럼프 2.0 시대, 민주당의 실용주의적 대안인가

AI News Team
조시 샤피로의 '빛이 머무는 곳': 트럼프 2.0 시대, 민주당의 실용주의적 대안인가
Aa

2026년 1월, 워싱턴 D.C.의 의사당은 '트럼프 2.0' 행정부의 파격적인 규제 철폐와 '미국 우선주의' 관세 폭탄으로 연일 격랑에 휩싸여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이 이른바 '서울 쇼크(Seoul Shock)'라 불리는 무역 장벽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이 시점,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조시 샤피로(Josh Shapiro)가 던진 회고록 《빛이 머무는 곳(Where the Light Stays)》은 단순한 자서전을 넘어선 하나의 명확한 정치적 선언문으로 읽힌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이번 출간을 두고 "2028년 대선을 향한 민주당의 가장 정교한 신호탄"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현재의 '이념 과잉' 시대에 대한 강력한 안티테제이기 때문이다.

샤피로의 회고록 발간 시점은 치밀하게 계산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1년을 넘기며 피로감이 누적되기 시작한 2026년 겨울, 샤피로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무자비한 실용주의(Ruthless Pragmatism)'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특히 최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기반 시설 붕괴 사태가 연방 정부의 대응 미숙으로 인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과거 2023년 필라델피아 I-95 고속도로 붕괴 사고를 단 12일 만에 수습했던 샤피로의 행정력은 다시금 유권자들의 뇌리에 소환되고 있다.

'일하는 주지사': 이념을 넘어선 성과주의

이념의 깃발이 나부끼는 워싱턴의 소음과 달리, 펜실베이니아의 행정은 침묵 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다. 샤피로 주지사의 회고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정의(Justice)'나 '평등(Equality)' 같은 추상적 가치가 아니다. 대신 그는 '교량(Bridge)', '예산(Budget)', '타협(Compromise)'이라는 지극히 건조한 언어들로 자신의 정치적 성과를 증명하려 든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슬로건 "Get Stuff Done(일단 일을 해내라)"은 단순한 구호를 넘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국정 운영에 지친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예측 가능한 유능함'이라는 강력한 대안을 제시한다.

샤피로는 책에서 민주당이 2024년 대선 패배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엘리트주의적 도덕적 우월감을 버리고, 식탁 경제(Table-kitchen economy)의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현재 한국 정치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민생 우선'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가 미국 중산층의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이념적 언어가 아닌, 데이터와 현장의 목소리로 반박한다. 실제로 최근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 관세 정책 이후 펜실베이니아 제조업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정체되거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의 비망록과 엇갈린 운명

회고록의 핵심 챕터인 <해군 관저의 긴 오후>는 2024년 여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러닝메이트 선정 당시를 냉철하게 복기한다. 샤피로는 당시 해리스 캠프와의 면접 과정을 '선택받지 못한 자의 변명'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재정의한다. 당시 그는 부통령의 역할을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국정 운영의 대등한 파트너"로 규정하며 정책적 자율성을 요구했다.

결국 해리스가 팀 월즈를 선택하고 트럼프에게 패배한 지금, 샤피로의 당시 '고집'은 민주당 지지층에게 '잃어버린 승리의 열쇠'로 재평가받고 있다. 해리스와 월즈가 패배의 멍에를 짊어지는 동안, 샤피로는 펜실베이니아라는 핵심 경합주(Swing State)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관리하며 자신의 행정 능력을 입증하는 데 집중했다. 최근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발표한 2026년 1월 여론조사는 이러한 그의 전략이 유효했음을 보여준다.

2028 민주당 대선 잠재 후보 경쟁력 조사 (2026년 1월)

화염 속에서 다져진 신념

2025년 4월 발생한 주지사 관저 방화 사건에 대한 기술은 샤피로가 구축하려는 '치유자(Healer)' 이미지의 정점을 보여준다. 유월절 첫날 밤, 범인 코디 발머가 던진 화염병으로 관저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그는 피해자로서의 분노 대신 냉철함을 유지했다. 그는 이 사건을 개인적 원한이 아닌, 정신 건강 시스템의 붕괴와 사회적 안전망의 실패로 규정했다.

"화염은 내 집을 태웠지만, 내 신념은 태우지 못했다"는 그의 문장은 2028년 대선을 앞두고 그가 내세우는 '혼돈 속의 안정'이라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트럼프 2.0 시대의 치안 부재와 사회적 갈등에 불안해하는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시그널이 되고 있다.

양극화의 벽과 중도 정치의 딜레마

하지만 샤피로의 '실용적 성과주의'가 2028년 대선 가도에서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회고록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의 타협은 때로는 원칙 없는 기회주의로 비치기도 한다. 특히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산업 보호 사이에서 그가 취한 모호한 태도는 펜실베이니아의 셰일 가스 산업을 의식한 결과라는 비판을 받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화당 지지층의 견고한 벽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78%는 "상대 당과의 협력은 원칙의 훼손"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샤피로가 내세우는 '초당적 협치'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민주당 내부의 진보 그룹 또한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더 선명한 투쟁을 요구하고 있어, 샤피로의 온건 노선은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을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피로는 이번 회고록을 통해 자신이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 분열된 미국을 통합할 수 있는 '어른(The Adult in the Room)'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2028년, 미국은 다시 한번 '선명한 이념'과 '유능한 실용'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