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122억 달러 적자의 정치학: 맘다니의 부유세 도박과 월스트리트의 반격

2026년 1월, 뉴욕 시청 브리핑룸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시장이 들어올린 '진실의 회계(Accounting of Truth)' 보고서는 단순한 결산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임 에릭 애덤스 행정부를 향한 정치적 수류탄이자, 월가(Wall Street)를 겨냥한 선전포고였다. 맘다니 시장이 공개한 122억 달러(약 17조 원)의 재정 적자는 1970년 뉴욕 재정 위기 이후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치였다.
맘다니 행정부는 이 적자를 "애덤스 행정부가 남긴 독이 든 유산(Poisoned Legacy)"이라고 규정했다. 뉴욕시 감사원(Comptroller)의 독립적인 검토를 거쳤다고 강조된 이 보고서는, 전임 시장 재임 시절의 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이민자 수용 비용의 장부 외 처리(Off-budget)가 누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행정 전문가들은 이 숫자 뒤에 숨겨진 더욱 정교한 정치적 셈법에 주목한다. 이는 마치 한국 정치에서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적폐 청산'을 연상케 하는 대목으로, 전임자의 실정을 극대화하여 현재의 위기를 '불가항력적인 재난'으로 프레이밍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급진적 처방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회계장부의 마법: 숫자 뒤에 숨겨진 정치적 덫
재정 전문가들은 이 122억 달러의 상당 부분이 '새롭게 발생한' 빚이라기보다 '이제야 인정된' 비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월스트리트의 재정 건전성을 감시해 온 시민예산위원회(CBC)의 분석에 따르면, 애덤스 전 시장 시절의 예산안은 연방 정부의 코로나19 지원금(ARP)으로 경상 지출을 메우는 이른바 '예산 절벽(Fiscal Cliff)'을 방치해 왔다. 플러싱의 김철민(가명) 회계사는 "마치 마이너스 통장으로 월세를 내면서 가계부가 흑자라고 주장해 온 꼴"이라며, "맘다니 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이 숨겨진 폭탄을 터뜨림으로써 부유세 도입 없이는 파산을 피할 수 없다는 논리를 완성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전략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키친 싱킹(Kitchen Sinking)'—모든 악재를 한꺼번에 털어내어 바닥을 드러내는 방식—과 일치한다. 맘다니는 적자 규모를 최대치로 부풀려 "곳간이 비었다"는 명분을 확보했다. 상업용 부동산(CRE) 세수 감소를 가장 보수적으로 재평가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2026년 현재, 트럼프 2.0 시대의 고금리 기조와 원격 근무의 정착으로 맨해튼 오피스 공실률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뉴욕의 경제 엔진이 고장 났음을 시인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역설적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지 않으면 도시가 멈춘다'는 명분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위기는 기회다: '부유세' 도입을 위한 명분 쌓기
"이 적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지난 수십 년간 뉴욕의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진 '청구서'입니다."
맘다니의 전략은 명확하다. '위기의 일상화'를 통해 급진적 처방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연방 차원의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뉴욕시는 연방 지원금 삭감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맘다니는 이 절박한 상황을 역이용하여, 평시라면 의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을 '부유세(Wealth Tax)'와 '고가 부동산 특별세' 도입을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
맘다니 행정부가 구상 중인 재산세 개편안은 상위 1%가 소유한 500만 달러 이상의 고가 주택에 대한 세율을 대폭 인상하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대중교통(MTA) 정상화와 공공주택 보수에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한국의 종합부동산세 논쟁과 유사하지만, 그 강도는 훨씬 높다. 뉴욕시 예산국(OMB) 출신 분석가들은 맘다니의 계획이 실현될 경우, 맨해튼 억만장자들의 거리인 '빌리어네어스 로(Billionaires' Row)'에서만 연간 수억 달러의 추가 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월스트리트의 반격: 자본 이탈과 '뉴욕 엑소더스'의 공포
그러나 로어 맨해튼의 금융가들은 이 수치를 자신들을 겨냥한 '세금 고지서'의 전초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미국'을 외치는 상황에서, 뉴욕시가 정반대의 '징벌적 과세'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자본의 논리로 볼 때 명백한 이탈 신호다.
맨해튼 금융 지구의 헤지펀드 전략가 이성진(가명) 씨는 "연방 정부는 세금을 깎아주는데 시 정부가 그 혜택을 다 걷어 가겠다고 한다면, 뉴욕에 남아있을 경제적 유인은 없다"며 팜비치(Palm Beach) 행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2020년대 초반의 엑소더스가 공포에 의한 일시적 도피였다면, 지금은 냉철한 비용 편익 분석에 따른 구조적 이탈"이라고 경고했다.
뉴욕시 세수 내 상위 1% 소득세 의존도 추이 (2020-2025)
실제로 뉴욕시의 세입 구조는 상위 1%의 고소득자와 금융 기업에 기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시 예산 정책국(Independent Budget Office) 데이터에 따르면 상위 1%가 전체 소득세의 40% 이상을 부담한다. 이들 중 일부만 주소지를 '무세(No Income Tax)' 주(州)로 옮겨도 뉴욕시 재정은 치명타를 입는다. 골드만삭스의 최근 내부 보고서가 "뉴욕의 징벌적 과세가 지속될 경우 본사 기능의 30%를 남부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한 것은 단순한 엄포가 아닐 수 있다.
맘다니의 딜레마와 서울에 던지는 질문
맘다니는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선택했다. 천문학적인 적자를 있는 그대로 공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지하철과 학교를 멈추겠습니까, 아니면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물리겠습니까?"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만약 이 도박이 성공한다면, 뉴욕은 '부유세'를 통해 공공 인프라를 재건하는 현대적 사회민주주의의 모델이 될 것이다. 이는 부동산 교부세 감소와 지하철 만성 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서울시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실패의 시나리오는 끔찍하다. 자본이 마이애미나 텍사스로 대거 이동하고 세수는 급감하며, 뉴욕은 1970년대의 재정 파탄 시기로 회귀할 수 있다. 더구나 워싱턴의 주인은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뉴욕의 위기를 '진보 행정의 무능'을 증명하는 정치적 호재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뉴욕시 재정 적자 vs 예상 부유세 세수 (2026-2027 전망)
맘다니가 쏘아 올린 공은 단순한 세금 논쟁을 넘어, 도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뉴욕은 '공정한 분배의 도시'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른 도시'로 기억될 것인가. 그 답은 월스트리트의 엑셀 시트가 아닌,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싣는 시민들의 인내심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