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뉴욕, 제설 책임은 왜 시민의 몫인가: 2026년 인프라 위기와 각자도생

얼어붙은 교차로, 2026년 뉴욕의 겨울 풍경
2026년 1월 29일, 맨해튼의 아침은 회색빛 빙판 위에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기록적인 한파가 휩쓸고 간 뉴욕의 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화려한 세계 금융의 수도가 아닙니다. 5번가(Fifth Avenue)의 명품 매장 앞조차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눈이 얼어붙어 마치 거대한 스케이트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화려한 쇼윈도 불빛이 딱딱하게 굳은 '블랙 아이스' 위에 반사되는 풍경은, 공공 시스템이 멈춰버린 2026년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퀸즈 플러싱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박철민(가명) 씨의 하루는 가게 앞의 얼음을 깨는 곡괭이질로 시작됩니다. 예전 같으면 시청 소속 제설차들이 새벽같이 지나가며 도로를 정리했겠지만, 트럼프 2.0 행정부의 '작은 정부' 기조와 맞물린 뉴욕시의 예산 감축으로 인해 제설 차량의 운행 횟수는 2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박 씨는 "시청에서는 '내 집 앞 눈 치우기'를 시민 의무라고 강조하며 단속반만 풀고 있다"며, "도로의 눈이 인도로 밀려와 산처럼 쌓이는데, 이걸 치우지 않으면 하루에 수백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그에게 제설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강제된 노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한 기상이변의 결과가 아닙니다. 2026년 현재,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각자도생(各自圖生)'입니다. 연방 정부가 인프라 유지보수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민간 위탁을 확대한 결과, 수익성이 낮은 주거 지역의 제설 작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반면, 민간 경비 업체와 계약을 맺은 부유층 거주지나 대형 상업 지구는 열선이 깔린 도로 덕분에 눈 한 점 없는 쾌적함을 유지합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이 극명한 대비는, 공공 서비스마저 구매력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인프라의 양극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제설 능선의 역설: 치워도 다시 쌓이는 눈
뉴욕 퀸즈 플러싱에서 20년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김영훈(가명) 씨는 지난 28일 새벽, 가게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눈덩이를 보며 망연자실했습니다. 영하 15도의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두 시간 동안 인도를 쓸어내고 염화칼슘을 뿌려 간신히 길을 텄지만, 불과 30분 뒤 시청 소속 제설차(DSNY)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자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차도에 쌓여있던 눈과 흙탕물, 쓰레기가 뒤섞인 검은 슬러지가 그대로 인도로 밀려들어와 성인 허리 높이의 단단한 얼음 장벽, 이른바 '제설 능선(Plow Ridge)'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시에서 도로는 치워주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인도 위 시민들에게 쓰레기처럼 던져진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러한 '제설 능선' 현상은 단순한 물리적 불편을 넘어, 2026년 미국 사회가 직면한 '공공성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뉴욕시 행정법규에 따르면 건물 소유주나 임차인은 눈이 그친 후 4시간 이내에 인도의 눈을 치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350달러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그러나 시 당국의 제설 작업이 시민의 준법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이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그 어떤 행정적 구제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가속화된 '작은 정부' 기조와 연방 교부금 삭감은 뉴욕시의 공공 서비스 예산을 직격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와 맞물려 도시 기반 시설 유지 보수 예산이 줄어들면서, 뉴욕 위생국(DSNY)은 '정밀한 제설'보다는 '빠른 차량 통행 확보'라는 효율성 지표에만 매몰되고 있습니다. 도로는 자본과 물류가 흐르는 동맥이기에 국가가 관리하지만, 시민이 걷는 인도는 사유재산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각자도생의 정글로 방치되는 셈입니다.
뉴욕시 위생국(DSNY) 예산 삭감 추이와 제설 벌금 수입 비교 (2023-2026)
위 자료에서 볼 수 있듯, 위생국의 공공 서비스 예산은 2023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시민들에게 부과되는 제설 미이행 벌금 수익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인프라 관리의 책임을 방기한 채, 그로 인한 비용과 책임을 과태료라는 명목으로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제설 능선'은 눈으로 만들어진 장벽이 아니라, 무너진 사회 계약이 만들어낸 행정의 흉터인 것입니다.
벌금이라는 이름의 징벌적 과세
퀸즈 플러싱에서 15년째 세탁소를 운영해 온 이재훈(가명) 씨의 사례는 이러한 행정적 모순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지난 화요일 아침, 가게 앞 유리창에 붙은 주황색 딱지를 본 그는 말을 잃었습니다.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 내린 눈은 이미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빙하' 상태였고, 새벽 4시부터 시도한 제설 작업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시 위생국(DSNY)의 단속관들은 자연재해 수준의 기상 이변을 참작하지 않았습니다. 눈이 그친 지 4시간 이내에 보도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기계적인 이유로 그에게 300달러(약 4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닙니다. 2026년 현재, 뉴욕시가 직면한 재정 위기의 그림자가 시민들의 현관 앞까지 드리워진 결과입니다. 팬데믹 이후 회복되지 않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연방 보조금 축소 정책이 맞물리면서, 뉴욕시는 만성적인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족한 곳간을 채우기 위해 시 당국이 선택한 손쉬운 방법은 '행정 규제의 엄격한 적용'이라는 명분을 쓴 사실상의 '징벌적 과세'입니다.

뉴욕시 세외 수입 내 벌금 및 과태료 비중 추이 (2023-2026)
결국 시민들은 묻게 됩니다. 도로의 눈을 치울 예산은 없고 단속관을 파견할 예산은 있는가? 우리가 내는 세금이 공공 서비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벌금을 피하기 위한 '보호비'로 전락했다면, 국가와 시민 사이의 신뢰라는 사회적 계약은 이미 얼어붙은 퀸즈의 거리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촌과 빈촌의 엇갈린 겨울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아침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습니다.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 뉴욕을 강타했다는 뉴스가 무색하게, 5번가의 고급 아파트 앞 보도는 물기 하나 없이 말끔했습니다. 비결은 시청의 제설차가 아니었습니다. 이들 건물의 관리 업체들은 새벽 3시부터 사설 용역 업체를 동원해 염화칼슘을 살포했고, 일부 최고급 맨션은 보도 밑에 깔린 열선 시스템(Snow Melting System)을 가동해 눈이 닿자마자 녹여버렸습니다. 이곳에서 '재난'은 단지 관리비 고지서에 찍힐 숫자가 조금 늘어나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반면, 강 하나를 건너 퀸즈(Queens)의 풍경은 19세기 런던의 빈민가를 연상케 했습니다. 잭슨 하이츠에서 3층짜리 낡은 상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데이비드 첸(가명) 씨의 손은 동상 직전이었습니다. 첸 씨는 "아침 6시부터 4시간째 얼음을 깨고 있지만, 영하 20도의 날씨에 뿌린 염화칼슘이 무용지물"이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가 이토록 필사적인 이유는 시민의 안전 때문만이 아닙니다. 뉴욕시 위생국(DSNY)이 부과하는 가혹한 벌금 때문입니다.
이러한 '각자도생'의 현장은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뉴욕시 감사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25년 겨울 발부된 제설 관련 과태료의 70% 이상이 브롱크스와 퀸즈 등 중산층 이하 거주 지역에 집중되었습니다. 부유층은 사설 업체를 고용해 '단속 리스크'를 돈으로 해결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서민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삽을 들거나, 아니면 벌금 고지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서울과 뉴욕, 도시 회복력의 갈림길
뉴욕 퀸즈 플러싱에서 작은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김민수(가명) 씨는 지난주 내내 가게 문을 여는 시간보다 제설삽을 들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 미 동북부를 강타했지만, 김 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추위가 아니라 뉴욕시 위생국(DSNY)이 발부한 '제설 미이행 과태료' 고지서였습니다. "시청 소속 제설차는 3일 동안 한 번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도로는 마비되었는데, 건물 앞 인도에 눈을 치우지 않았다고 300달러 벌금을 물리는 게 2026년의 '선진국' 행정입니까?" 그의 분노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도시 공공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2026년 트럼프 행정부 2기, '미국 우선주의'와 연방 정부의 재정 긴축 기조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심장부 도시들의 행정력을 급속도로 약화시켰습니다. 연방 교부금이 대폭 삭감되면서, 뉴욕과 같은 거대 도시들은 필수 공공 서비스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공공 유지보수'의 영역이 고스란히 개별 시민과 자영업자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반면, 서울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서울시는 폭설 예보가 발령되면 공무원과 장비가 즉각적으로 동원되는 '총력전' 태세를 갖춥니다. '내 집 앞 눈 치우기' 캠페인이 존재하지만,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도로의 기능 유지를 국가와 지자체의 무한 책임으로 인식합니다. 제설이 조금만 늦어져도 구청 전화통이 마비되는 한국의 높은 행정 서비스 기대치는,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가 유지해 온 촘촘한 사회 계약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금을 내는 대신, 국가는 나의 출근길을 보장해야 한다는 믿음이 굳건합니다.
그러나 뉴욕의 현재는 서울의 잠재적 미래일 수 있습니다. 한국 역시 부동산 세수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복지 비용 증가로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 회복력(Urban Resilience) 전문가들은 2026년의 뉴욕 사태를 두고 "도시가 시민에게 제공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인프라 기능이 멈췄을 때, 사회적 신뢰는 얼마나 빠르게 붕괴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뉴욕이 '각자도생'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면, 서울은 '공공 만능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이 보여주는 공공성의 후퇴가, 과연 태평양 건너 우리에게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수입되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할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