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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의 명암: 월가의 호황이 가린 팜 벨트의 붕괴

AI News Team
트럼프 2.0의 명암: 월가의 호황이 가린 팜 벨트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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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유세장과 텅 빈 곡물 창고

아이오와주 디모인(Des Moines)의 컨벤션 센터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로고가 새겨진 붉은 물결로 넘실거렸습니다. 집권 2년 차를 맞이한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 설명회에서 뉴욕 증시의 고공행진과 보호무역주의 성과를 '미국 우선주의의 승리'라고 천명했습니다. 지표는 분명 화려합니다. 다우존스 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거시 경제 데이터는 유례없는 호황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승전보가 울려 퍼지는 행사장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 아이오와 북부 농경지의 풍경은 전혀 다릅니다. 2026년 1월 29일, 미국 중서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겨울 폭풍은 노후화된 전력 인프라를 마비시켰고, 대규모 정전 사태를 야기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인 농촌 사회가 처한 시스템적 붕괴를 상징합니다.

북부 아이오와에서 4대째 옥수수와 콩 농사를 짓고 있는 로버트 카터(64·가명) 씨의 농가는 현재 암흑천지입니다. 카터 씨는 "대통령은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지만, 창고에 쌓인 곡물은 팔 곳이 없고 갚아야 할 이자는 매달 치솟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에 맞선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보복 관세로 수출길은 봉쇄되었고,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상승은 비료와 농기계 부품 가격을 2024년 대비 30% 이상 끌어올렸습니다.

지표의 착시: 누구를 위한 호황인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미 농무부(USDA)의 최신 데이터를 종합하면, 2026년 미국 농가의 순소득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인 반면, 부채 상환 부담은 고금리 기조와 맞물려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K자형 양극화'의 전형입니다. 규제 완화로 이익을 얻는 에너지·금융 기업들의 실적은 한국 수출 기업들에 기회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면에서 붕괴하는 미국의 내수 농촌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농가 경제 지표 추이 (2024-2026 예상, 자료: USDA & WSJ)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제 지표가 보여주는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한 애널리스트는 "주식 시장의 활황은 유동성이 만들어낸 거품일 가능성이 크다"며, "실물 경제의 기반인 농업과 제조업이 무너진다면, 그 거품이 꺼질 때의 충격은 2008년 금융위기를 상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관세 장벽이 부른 부메랑 효과

트럼프 2.0 시대의 경제 정책은 월스트리트와 팜 벨트(Farm Belt) 사이의 잔인한 괴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핵심은 비용의 비대칭성입니다. 비료, 농약, 기계 부품 등 농업 생산에 필수적인 투입재 가격은 관세 장벽으로 인해 급등한 반면, 정작 수확한 농산물의 수출길은 막혀버린 것입니다. 이는 2018년 무역 전쟁의 악몽보다 더 정교하고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정밀 타격 보복 관세는 미국산 대두와 옥수수에 집중되어 미국 농가 수익성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렸습니다. 거대 농기업(Agri-business)들은 자동화 설비 도입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을 방어하고 있지만, 중소 규모의 가족 농장들은 파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2024-2026 미 중서부 농가 파산 신청 건수 vs 농업 기업 주가 지수

아이오와의 겨울이 서울에 던지는 경고

이러한 미국 내수 시장의 양극화는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미국, 특히 중서부와 남부의 '러스트 벨트' 및 '팜 벨트' 지역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역 경제가 무너지면 이들 공장이 위치한 지역 사회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이는 정치적 불만으로 이어져 외국 기업에 대한 또 다른 규제나 압박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철민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가명)은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공급망 비용 상승분을 농가와 서민 경제로 전가하고 있다"며, "이는 소비 여력 감소로 이어져 결국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서울 여의도의 증권가와 대기업 전략실이 지금 주시해야 할 것은 월가의 화려한 숫자가 아니라, 디모인의 어두운 밤입니다.

2026년, 아메리칸 드림의 재정의

결국 2026년의 '아메리칸 드림'은 과거 '누구나 노력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보편적 희망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하여 살아남는 자만이 과실을 독점한다'는 냉혹한 선별적 생존 논리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공공 인프라에 대한 투자보다 당장의 시장 부양을 우선시한 결과가 이번 한파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로 나타난 것입니다. 국가는 부유해졌으나 대다수 국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이 역설은, 양극화와 지방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