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해방구가 된 집, 감옥이 된 학교: 영국의 '교내 격리' 실험이 던지는 경고

디지털 휴가가 된 정학: 징계의 권위가 무너졌다
영국 런던 남부의 한 공립 중등학교에 다니는 14세 올리버(가명) 군에게 지난주 내려진 '3일 정학' 처분은 징벌이 아닌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주는 규율과 스마트폰 압수 조치에서 해방된 그는, 정학 기간 내내 자신의 방에서 48시간 가까이 온라인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부모가 맞벌이로 집을 비운 사이, 올리버 군에게 '집'은 반성이 이루어지는 자숙의 공간이 아니라, 무제한의 접속이 허용된 '디지털 해방구'였던 셈입니다.
이는 비단 올리버 군만의 일탈이 아닙니다. 영국 교육부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징계로 학교 밖으로 쫓겨난 학생들의 재비행률이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스마트폰'과 '게이밍 콘솔'이 있습니다. 브리짓 필립슨(Bridget Phillipson) 영국 교육부 장관이 최근 "집으로 보내는 정학은 더 이상 징계로서의 실효성을 잃었다"고 강력히 경고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정학이 또래 집단으로부터의 격리와 지루함을 동반한 심리적 타격이었다면, 2026년의 정학은 학교의 엄격한 디지털 통제로부터 벗어나 도파민이 넘치는 가상 세계로 복귀하는 '디지털 휴가'로 변질되었습니다.

실제로 영국 내 학교 정학 건수는 팬데믹 이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런던의 한 교사 노조 관계자는 "학생들이 정학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며칠간 늦잠을 자고 친구들과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훈육의 수단이 되어야 할 '배제(Exclusion)'가 오히려 학교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탈출(Escape)'을 돕는 꼴이 된 것입니다.
내부 정학의 실체: 격리된 교실의 풍경
이러한 '징계의 역설'에 대응해 영국 정부가 꺼내 든 카드는 '교내 격리(Internal Truancy/Isolation)'입니다. 런던 남부의 한 공립 중등학교, 교실 복도 끝에 위치한 '성찰의 방(Reflection Room)'은 이름이 주는 철학적 무게와 달리 그 풍경은 사뭇 삭막합니다. 1.5평 남짓한 공간, 창문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고 책상 위에는 교과서와 필기구 외에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곳은 영국 정부가 최근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는 '내부 정학(Internal Suspension)'의 현장입니다.
과거 '정학'이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는 '격리'였다면, 2026년 영국의 정학은 학교 안에 가두는 '고립'으로 진화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틱톡과 유튜브 쇼츠가 무한히 재생되는 침대 위에서 학생들은 반성의 시간 대신 도파민의 파도를 타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이제 학생의 '자유 시간'을 박탈하는 것이 유일한 통제 수단임을 인정한 셈입니다.
영국 교육부 지침에 따라 내부 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은 등교 즉시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고 정규 수업 시간 내내 이 격리된 공간에서 과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점심시간에도 친구들과의 접촉은 차단됩니다. 표면적인 명분은 '학습권 보장'입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정책이 '교육'보다는 '수용'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문제는 디테일, 즉 예산과 인력에 있습니다. 런던의 교육 정책 연구소(EPI)가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내부 정학 제도를 운영하는 공립학교의 약 40%가 전담 감독관 없이 기존 교사들이 공강 시간에 번갈아 가며 학생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육적 멘토링이나 심리 상담이 이루어져야 할 시간에, 교사는 학생이 졸거나 딴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간수'의 역할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도파민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학교 밖 훈육
"집에 가서 반성하라"는 학교의 명령은 스마트폰과 고성능 게이밍 PC 앞에서 그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인 박준영(가명) 군의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지난해 교권 침해 사안으로 5일간의 출석 정지 처분을 받았던 박 군은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합법적인 휴가 같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학교에 있으면 폰도 걷어가고 선생님 눈치도 봐야 하는데, 집에서는 부모님이 맞벌이라 나가시면 완전 자유거든요."
박 군의 사례는 예외가 아닙니다. 징계의 핵심 기제인 '지루함'과 '사회적 박탈감'이 기술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된 것입니다. 디지털 기기는 훈육이 파고들어야 할 반성의 틈새를 즉각적인 보상 기제인 도파민으로 메워버립니다. 이를 두고 교육 심리학자들은 '디지털 마취(Digital Anesthesia)' 현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처벌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니, 행동 교정이라는 징계의 본래 목적이 달성될 리 만무합니다.
학교 징계 기간 중 청소년의 주요 활동 비중 (2025, 서울/경기)
통계의 덫: 퇴학 제로를 위한 눈속임인가
영국의 교육 현장에서 '내부 격리'가 급부상한 배경에는 숫자가 지배하는 교육 행정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학교 평가 기관인 오프스테드(Ofsted)의 평가 항목에서 '퇴학 및 정학률'이 학교의 등급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로 자리 잡으면서, 일선 학교들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문제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자니 학교 평판이 깎이고, 교실에 두자니 수업 분위기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교내 격리실'은 통계적 오점을 남기지 않으면서 학생을 분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우회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런던 교육 정책 연구소(EPI)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공식적인 정학 처분은 소폭 감소하거나 정체된 반면, 별도로 집계되지 않는 '교내 격리' 조치는 전년 대비 15% 이상 급증했습니다. 이는 서류상으로는 '포용 교육(Inclusive Education)'이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는 '창고형 징계'가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영국 중등학교 징계 유형별 추이 (2023-2026)
위 데이터가 보여주듯, 공식적인 정학(Suspension) 비율이 줄어드는 동안 비공식적 격리(Isolation) 비율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교육 현장의 갈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단지 통계 바깥의 영역으로 밀려났음을 증명합니다.
재정 절벽 앞의 학교: 감시자는 누구인가
영국 정부가 스마트폰을 든 '집콕 정학'의 대안으로 꺼내 든 '교내 격리' 카드는 징계의 실효성을 되살리겠다는 야심 찬 선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영국 학교들이 마주한 가장 큰 적은 비행 청소년이 아니라, 바로 '파산 직전의 장부'입니다.
'교내 격리'가 교육적 처방이 되려면 '별도의 공간'과 '전문 인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긴축 재정의 여파가 여전한 영국 공교육 현장에서 이 두 가지는 사치에 가깝습니다. 많은 학교가 창고를 개조하거나 복도 끝에 가벽을 세워 급조한 '격리 부스(Isolation Booths)'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전문 상담 교사 대신 보조 교사나 공강 시간인 교사들이 돌아가며 '보초'를 서는 실정입니다.
결국 재정 지원 없는 교내 격리는 '교육적 조치'가 아닌 '통계적 관리'로 변질될 위험이 큽니다. 이는 '교권 보호'와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분리 조치를 법제화한 한국 교육 현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훈육은 징계가 아니라 '방임'의 또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학교가 재정 절벽 앞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대신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자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시점입니다.

처벌을 넘어선 교육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이 낳은 괴물'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낡은 훈육 시스템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이 시도하고 있는 '교내 격리'가 단순한 '감금'으로 끝날지, 아니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훈육의 표준'이 될지는 결국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두는 것'은 기술(technique)이지만, '가르치는 것'은 철학(philosophy)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