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에너지 안보’의 균열: 사법부가 쏘아 올린 빈야드 윈드의 부활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Martha's Vineyard) 해안의 거센 겨울 바람 속에서, 멈춰 섰던 거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2월 말, 트럼프 2.0 행정부의 전격적인 '공사 및 가동 중지 명령'으로 침묵에 잠겼던 빈야드 윈드(Vineyard Wind)의 터빈들이 해를 넘기자마자 다시 대서양의 바람을 가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공사 재개가 아닙니다. 연방 법원이 행정부의 일방적인 독주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중심에 선 브라이언 머피(Brian Murphy) 연방 판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단 명령에 대해 "행정권의 자의적 남용일 소지가 다분하며, 이미 투입된 막대한 민간 자본과 매몰 비용(Sunk Cost)을 고려하지 않은 비합리적 조치"라고 질타하며 빈야드 윈드 측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에너지 안보'와 '화석 연료 회귀'라는 정치적 명분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인 '계약의 자유'와 '재산권 보호'라는 법적 현실 앞에서 가로막힌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61대 1의 싸움: 매몰 비용의 경제학
현장의 물리적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법부의 결정은 더욱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전체 계획된 62기의 터빈 중 61기가 이미 설치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전체 공정의 약 95%가 완료된 시점에서 내려진 가동 중단 명령은, 실질적인 안전 검토보다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유산 지우기'에 가깝다는 의구심을 증폭시켰습니다.
머피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미 95% 이상의 공정이 완료되어 가동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구체성이 결여된 안보 우려만으로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는 것은 기업에 회복 불가능한 경제적 손실을 입히는 행위"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2026년 현재 미국 사법 시스템이 백악관의 정치적 타임라인보다 '계약의 신뢰'와 '자본의 논리'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빈야드 윈드의 중단은 '매몰 비용(Sunk Cost)'의 함정을 넘어선 자해적 조치에 가까웠습니다. 약 40억 달러(한화 약 5조 5천억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계약 위반, 수천 명의 현장 노동자 실직,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인프라 시장에 대한 신뢰도 추락은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주시해야 할 '미국의 틈새'
태평양 건너 한국의 에너지 업계도 이번 판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트럼프 2.0 시대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작동하는 미국의 '제도적 방파제'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위협에 시달리던 한국의 풍력, 철강, 배터리 기업들에게 이번 사건은 중요한 전략적 시사점을 던집니다.
국내 풍력 발전 부품 제조사의 해외 영업 담당 임원인 김철수(가명) 씨는 "지난달 프로젝트 중단 소식을 접했을 때 미국 시장 전체가 셧다운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납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이번 판결은 트럼프 리스크 속에서도 미국의 법치 시스템이 비즈니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여의도 증권가의 시각도 비슷합니다. 에너지 인프라 섹터를 담당하는 이준호(가명) 수석 연구원은 "연방 정부의 보조금은 축소될지언정, 주(State) 정부의 의지와 기존 계약법이 살아있는 한 시장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 기업들은 이제 신규 허가가 필요한 불확실한 프로젝트보다는, 이미 인허가를 득하고 착공 단계에 들어간 '기득권 프로젝트'의 공급망에 집중하는 '핀셋 수주'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4년간의 줄타기: 법치와 정치 사이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이번 결정은 어디까지나 가처분 인용에 불과하며, 본안 소송이라는 더 지루하고 복잡한 법적 공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사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 통치'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끝까지 시장의 방파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빈야드 윈드의 터빈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이는 11월 중간선거, 나아가 향후 4년 동안 계속될 백악관과 연방 법원 간의 거대한 힘겨루기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항소를 통해 더 강력한 행정 권한을 주장할 것이고, 기업들은 사법부의 보호 아래 생존을 모색할 것입니다. 하루 약 14억 원(100만 달러)의 손실이라는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교훈 앞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지금 워싱턴의 펜 끝이 아닌 법원의 망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