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ALK.
Economy

'트럼프 2.0' 독주에 제동 건 사법부: 바인야드 윈드 판결이 던진 '매몰 비용'의 경고

AI News Team
'트럼프 2.0' 독주에 제동 건 사법부: 바인야드 윈드 판결이 던진 '매몰 비용'의 경고
Aa

매사추세츠 연방지방법원의 브라이언 머피(Brian Murphy) 판사가 내린 이번 효력 정지 가처분(Preliminary Injunction) 결정은 트럼프 2.0 행정부의 거침없는 '규제 철폐' 드라이브에 사법부가 명확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입니다. 머피 판사는 결정문에서 "행정부의 정책 변경 권한은 존중받아야 하나, 이미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프로젝트를 명확한 근거 없이 중단시키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행위"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지난 12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바인야드 윈드(Vineyard Wind) 프로젝트에 전격적인 공사 중지 명령(Stop-Work Order)을 내린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나온 사법부의 반격입니다.

법정 공방의 핵심은 '불확실한 안보 위협' 대 '확실한 경제적 피해'의 대결이었습니다. 법무부 측 변호인단은 바인야드 윈드의 터빈이 인근 군사 기지의 레이더 작동을 방해하여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이 구체적인 데이터로 입증되지 않았음을 지적했습니다. 반면, 바인야드 윈드 측이 제시한 피해 규모는 명확했습니다. 공사가 중단된 지난 한 달 동안 발생한 하루 수십만 달러의 대기 비용, 계약 파기 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파산 가능성이라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Irreparable Harm)'가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번 판결이 단순한 환경 소송이 아닌, '자본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머피 판사는 판결문 곳곳에서 '매몰 비용(Sunk Cost)'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기업이 정부의 인허가를 신뢰하고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면,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변수만으로 그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트럼프 1기 당시와는 달라진 사법부의 기류를 보여줍니다. 보수 성향의 판사들조차 행정부의 권한 남용이 사유 재산권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점에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4조 원의 무게: 안보 논리를 압도한 경제적 실체

매사추세츠주 연방지방법원의 이번 결정문은 단순한 법리적 해석을 넘어, 자본주의의 가장 오래된 불문율을 환기시킵니다. "이미 투입된 자본은 그 자체로 권력이 된다." 트럼프 2.0 행정부가 내세운 '국가 안보'라는 거대 명분조차, 대서양 앞바다에 이미 박혀버린 62기의 터빈과 그 아래 묻힌 4조 원(약 30억 달러)이라는 구체적 실체 앞에서는 힘을 잃었습니다.

지난 2025년 12월, 해가 저물어가던 시점에 기습적으로 발동된 백악관의 공사 중지 명령은 미 에너지 업계에 '12월의 공포'로 각인되었습니다. 취임 첫해인 2025년 내내 화석연료 부흥을 외치면서도 기존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던 행정부가, 집권 2년 차를 앞두고 전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터빈의 회전 날개가 인근 군사 레이더를 교란해 국가 안보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웠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이 안보 프레임은 그러나 단 한 달 만에 사법부라는 암초를 만났습니다.

법원이 주목한 것은 '타이밍'과 '매몰 비용(Sunk Cost)'의 불가역성이었습니다. 바인야드 윈드(Vineyard Wind) 프로젝트는 계획 단계의 페이퍼컴퍼니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62기의 거대한 풍력 터빈이 설치를 마쳤고, 수중 케이블이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판결문은 행정부의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수년간의 허가 과정을 거쳐 막대한 자본이 이미 투입된 시점(Post-investment)에서의 급작스러운 정책 변경은 기업에게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강요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미국 사법 시스템이 정치적 바람(Wind)보다 자본의 무게(Weight)를 더 신뢰한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행정명령 만능주의의 한계와 절차적 적법성

트럼프 2.0 행정부 출범 1주년을 목전에 둔 지난 2025년 12월, 백악관이 전격적으로 발동한 '바인야드 윈드(Vineyard Wind) 공사 중지 행정명령'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행정권이 사법적 절차와 시장의 신뢰를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거대한 헌법적 실험이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1월, 매사추세츠 연방지법은 이 실험에 대해 명확한 '불합격' 판정을 내렸습니다. 법원의 논리는 간명했습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미 집행된 자본의 권리를 소급하여 침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미국 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 Act, APA)에 근거한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Arbitrary and Capricious)' 법 적용의 금지에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2월, 해양 포유류 보호법(MMPA)을 근거로 공사 중단을 명령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고래 보호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바이든 전 행정부의 유산인 '그린 뉴딜' 지우기의 일환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문제는 이 명령이 프로젝트가 이미 60% 이상 진행된 시점에서, 명확한 과학적 데이터나 새로운 위험 요소의 발견 없이 단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청정 에너지 업계의 안도와 남은 불씨

매사추세츠주 연방지방법원의 판결문이 공개된 직후, 미국 북동부 연안의 청정 에너지 벨트는 안도감보다는 깊은 탄식에 가까운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번 판결은 행정부의 자의적인 정책 변경이 기업의 '합법적 신뢰 이익(Reliance Interest)'을 침해할 수 없다는 사법부의 명확한 선언으로 해석됩니다. 즉, 이미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프로젝트를 정치적 이유로 하루아침에 중단시키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근간인 '재산권'과 '투자의 예측 가능성'을 해친다는 논리가 작동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살얼음판입니다. 보스턴의 풍력 터빈 부품 공급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데이비드 첸(가명) 씨는 "법원이 공사 재개를 허용했지만, 지난 12월 행정명령 이후 이미 공급망의 30%가 이탈하거나 계약을 보류한 상태"라며 "법원의 결정이 잃어버린 한 달간의 손실과 훼손된 신뢰까지 복구해주지는 못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첸 씨의 사례는 사법적 구제가 확정되기 전까지 발생하는 '행정적 지연(Administrative Delay)' 자체가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비용으로 작용함을 시사합니다.

2026년 1분기 미국 해상풍력 프로젝트 리스크 현황 (단위: GW)

위 차트에서 볼 수 있듯, 바인야드 윈드처럼 '기투자 보호' 영역에 들어가 생존을 보장받은 프로젝트는 전체 파이프라인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다수 프로젝트는 여전히 인허가 단계에서 행정부의 재량권 안에 갇혀 있으며, 이는 곧 트럼프 행정부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국 배터리·에너지 기업을 위한 시사점

이번 사태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미국 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K-배터리' 3사에게도 중요한 나침반이 됩니다. 미국 법원이 바인야드 윈드 측의 손을 들어준 핵심 논리는 '매몰 비용(Sunk Cost)'의 보호였습니다. 이미 수십 기의 터빈이 설치되고 수조 원이 투입된 상태에서 행정 명령으로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는 것은 사업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재산권 침해를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대미 투자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국내 주요 대기업의 정민우(가명) 상무는 "지난 12월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을 때만 해도 내부적으로 조인트 벤처(JV) 설립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을 보며 우리가 확보해야 할 것은 정치적 약속이 아니라, 법원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실체와 구속력 있는 계약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일수록 설비 투자의 속도를 높여 '물리적 불가역성'을 확보하는 역설적인 전략이 유효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미국 내 한국 배터리 3사 투자 현황 및 진행률 (2026.01 기준, 추정)

결국 이번 사태는 트럼프 2.0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기득권 보호'라는 미국 사법 시스템의 닻은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공포에 질려 투자를 주저하기보다, 이 사법적 안전장치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미국 시장 내에서의 지분을 '철옹성'으로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