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 대주교의 '무혐의' 판정과 성공회의 위기: 절차적 정의는 도덕을 구원하는가

절차적 승리, 도덕적 패배: 2026년 성공회의 현주소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2인자이자 상징적 인물인 스티븐 코트렐(Stephen Cottrell) 요크 대주교에 대한 징계 절차가 결국 '혐의 없음(No case to answer)'으로 종결되었다. 2026년 1월 말 전해진 이 소식은 교계 내부의 안도감보다는 피해자 그룹과 개혁 요구 세력의 깊은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법적,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낡은 교회법이 어떻게 고위 성직자를 위한 '절차적 방패'로 작동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코트렐 대주교가 과거 성직자 학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은폐 및 직무 유기 의혹이 '성직자 징계 조치(CDM, Clergy Discipline Measure)'가 규정하는 처벌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공회의 징계 시스템은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책임보다 훨씬 좁은 범위의 '교회법적 위법성'만을 따진다. 즉,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거나 행정적 태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명시적인 교회법 조항을 위반한 '중대한 비위(Misconduct)'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징계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는 마치 한국의 재벌 총수가 명백한 경영 실패나 윤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적 배임죄의 구성 요건을 피해 면죄부를 받는 상황과 흡사하다.

런던에서 활동 중인 교회 개혁 운동가 (가명) 정혜원 씨는 이번 결정에 대해 "성공회 시스템이 피해자의 눈물이 아닌, 조직의 보신을 위해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주교가 '몰랐다'거나 '절차대로 했다'고 주장하면, 그 절차 자체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는 따지지 않고 면죄부를 주는 것이 현재의 구조"라며, "이것은 무죄 판결이 아니라, 처벌할 도구가 없음을 자인한 '시스템의 파산 선언'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국의 피해자 단체들은 이번 결정이 2024년 저스틴 웰비 전 캔터베리 대주교의 사임 이후 약속되었던 '투명한 변화'가 허울뿐이었음을 증명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러한 '혐의 없음' 판정이 대중에게 주는 잘못된 신호다. 법적 면죄부가 도덕적 정당성으로 둔갑하는 순간, 조직 내의 자정 작용은 멈추게 된다. 징계 위원회의 결정문은 코트렐 대주교의 행위가 징계 감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 그의 대처가 '올바랐다'고 확인해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단 지도부는 이 '절차적 승리'를 근거로 리더십의 위기를 봉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법의 테두리 뒤에 숨어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의 행태로 비칠 수 있다.
'권한 부재'라는 방패와 책임의 실종
교회법의 미로 속에서 스티븐 코트렐 대주교가 쥐어든 것은 '무혐의'라는 면죄부가 아니라, '권한 부재'라는 낡은 방패였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코트렐이 2003년 당시 레딩(Reading)의 보좌 주교(Suffragan Bishop)로서 데이비드 튜더 신부의 학대 의혹을 인지하고도 왜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에 있다. 이에 대해 영국 성공회 징계 심사 당국이 내린 결론은 허무하리만치 법기술적이다. 당시 코트렐에게는 튜더 신부를 직무 정지시키거나 독자적으로 징계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공회의 위계 질서에서 보좌 주교는 교구장(Diocesan Bishop)의 위임 없이는 인사권과 징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2003년 당시 규정에 따르면, 튜더 신부에 대한 인사 조치 권한은 옥스퍼드 교구장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코트렐 측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들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만 따지자면, 이 주장은 유효하다. '권한이 없으므로 책임도 없다'는 논리는 관료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 기제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판단은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꼬리 자르기' 혹은 '책임 떠넘기기'의 전형적인 문법과 맞닿아 있다. 대기업 임원이 하청 업체의 산재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지휘 감독 권한이 없었다"며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가명) 정진호 변호사는 이를 두고 "조직의 위계가 피해자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관리자가 숨을 수 있는 벙커로 악용된 사례"라고 지적한다. 정 변호사는 "법적 권한의 부재가 도덕적 방관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특히 '영혼을 돌보는' 종교 기관에서 규정의 미비함을 들어 학대 혐의자를 방치했다면, 이는 직무 유기를 넘어선 시스템의 도덕적 파산"이라고 분석했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이러한 '권한 부재'의 논리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는 구조적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코트렐이 "나는 보고했으니 내 할 일은 끝났다"고 판단하고 손을 떼는 순간, 피해자의 고통은 관료주의의 서류 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보고를 받은 상급자가 묵살하거나, 후속 조치가 미흡할 때, 이를 다시 문제 제기하고 끝까지 추적하는 '내부 감시'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권한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닌, 성공회라는 거대 조직이 '절차적 정당성'을 핑계로 '실체적 진실'을 외면해온 오랜 관행의 민낯이다.
2차 가해와 무너진 신뢰: 숫자로 본 위기
스티븐 코트렐 대주교에 대한 '징계 절차 종료' 선언은 법적 면죄부일지는 모르나, 영국 국교회가 자부해 온 '세이프가딩(Safeguarding)' 시스템이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음을 자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영국 교회의 성학대 은폐 의혹을 파헤친 마킨 보고서(Makin Review)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2026년 현재, 최고위 성직자가 절차의 미비함을 틈타 책임의 고리를 끊어내는 모습은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관료주의적 냉소로 변질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국 국교회 내부의 신뢰도 변화를 살펴보면, 이번 결정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다. 마킨 보고서 발표 직후 급락했던 신뢰도는 이번 '징계 종료' 결정을 기점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사실상 '도덕적 파산' 상태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영국 국교회 세이프가딩 신뢰도 추이 (출처: 2026 종교윤리연구소)
결국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의지다. 아무리 정교한 세이프가딩 매뉴얼을 도입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이들이 '권력의 보존'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면 그 매뉴얼은 가해자를 위한 방어막이 될 뿐이다. 스티븐 코트렐 대주교 사건은 영국 국교회가 과연 자정 능력을 갖춘 생명체인지, 아니면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채 부패해가는 거대한 관료 조직인지를 묻고 있다. 2026년의 신자들은 더 이상 거룩한 예복 아래 숨겨진 비겁한 침묵을 용납하지 않는다. 교회가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고통받는 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지키려 했던 교회의 문은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신뢰 회복을 위한 험난한 여정
이번 판결은 차기 캔터베리 대주교 선출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를 앞둔 시점에서 국교회 내부의 역학 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코트렐 대주교는 그동안 유력한 차기 수장 후보로 거론되어 왔으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개혁의 아이콘'에서 '구태의 상징'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성공회 내부의 보수 복음주의 진영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회 지도부의 도덕적 해이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세력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물 검증을 넘어, 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전통적 권위의 수호'인지, 아니면 '약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노선 투쟁으로 번지고 있다.
2026년의 영국 사회, 그리고 트럼프 2.0 시대를 맞이한 글로벌 정세 속에서 대중은 더 이상 종교 기관의 특권적 지위를 묵인하지 않는다. 수십 년간 이어진 세속화 흐름 속에서, 교회의 존립 근거는 '신성불가침의 권위'가 아닌 '사회적 신뢰'에 기반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교회의 폐쇄적인 의사 결정 구조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실종은, 교회가 여전히 과거의 관행인 '조직 보위'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만약 종교가 스스로 설정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절차'라는 이름으로 낮춰버린다면, 그 조직이 세속의 법정이나 기업 윤리 위원회와 다를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죄를 덮어주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모순으로 변질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