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의 역설: 캐나다의 '한국 헤징' 전략과 60조 잠수함 수주전의 진실

오타와의 악수, 워싱턴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
오타와 의사당에 감도는 서늘한 겨울 공기와 달리, 서명식장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과 기대로 가득 찼다. 이번에 체결된 '한-캐나다 핵심 광물 및 전기차 가치사슬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MOU)'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산업 협력이지만, 그 이면에는 '트럼프 2.0'이라는 거대한 파고에 직면한 두 국가의 절박한 생존 전략이 요동치고 있다.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보편적 기본 관세 부과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폐지 논의는 오타와로 하여금 더 이상 '남쪽 이웃'에게만 모든 패를 걸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음으로 작용했다.
캐나다 혁신과학경제개발부(ISED)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해 캐나다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역대 최악의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배터리 거물들과의 결속은 캐나다에 단순한 외자 유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원 부국인 캐나다가 한국의 정교한 제조 공정 기술을 수혈받아 북미 시장 내 독자적인 '청정 에너지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계산이다. 이는 사실상 백악관의 '아메리카 퍼스트' 독주에 맞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끼리 구축하는 일종의 '경제 방어망'이다.
세종시 통상 당국자와 여의도 금융가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이 협력이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기 잠수함 도입 사업(CPSP)과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캐나다는 현재 노후화된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한국의 KSS-III급 모델을 유력한 후보군으로 검토 중이다. 방산 기술의 이전은 극도의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번 EV 동맹은 그 신뢰의 깊이를 증명하는 시험대인 셈이다.

국제 통상 분석가들은 현재 상황을 "가치 동맹에서 실리 동맹으로의 전환"이라고 분석한다. 과거의 동맹이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공유했다면, 2026년의 동맹은 철저히 공급망의 안전과 기술적 우위를 공유하는 구조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캐나다가 미국 대신 한국과 손을 잡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을 상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보험이다.
북미 공급망의 새로운 혈관: 배터리와 핵심 광물
2026년 1월, 북미 대륙의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하지만, 온타리오주 윈저(Windsor)와 퀘벡주 베캉쿠르(Bécancour)의 산업 현장은 다른 의미의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제2기 행정부가 공식 출범하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와 보편적 관세 부과를 위협하는 가운데, 캐나다 정부가 선택한 생존 전략은 역설적으로 '탈(脫)미국'이 아닌 '친(親)한국'을 통한 공급망의 요새화다.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북미 공급망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거대한 '팩토리 아메리카'였다. 그러나 트럼프 2.0 시대의 불확실성은 이 견고했던 사슬에 균열을 냈다. 미국 우선주의가 언제든 국경을 닫을 수 있다는 공포는 캐나다로 하여금 단순한 미국의 하청 기지가 아닌, 독자적인 제조 생태계를 갖춘 파트너를 찾게 만들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배터리 셀 제조사들과 소재 기업들이 캐나다의 전략적 공백을 메우는 핵심 퍼즐로 등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스텔란티스의 합작법인 '넥스트스타 에너지(NextStar Energy)'가 위치한 윈저 현장은 이러한 기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미국 내 투자가 주춤하는 사이, 캐나다 연방정부와 온타리오 주정부는 한국 기업을 붙잡기 위해 미국 IRA에 상응하는 막대한 보조금을 확약하며 '투자 안전지대'를 자처했다.
캐나다 내 한국 배터리 3사 투자 및 예상 생산 능력 (2024-2028)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2026년을 기점으로 한국 기업들의 캐나다 내 생산 능력(GWh)과 투자 규모(조 원)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트럼프 2.0의 출범과 맞물려 투자 그래프가 꺾일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오히려 캐나다 정부의 적극적인 방어적 투자가 한국 기업들의 설비 확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수면 아래의 거대한 거래: 60조 잠수함 프로젝트
겉으로 드러난 것은 전기차 배터리 동맹이지만, 물밑에서 오가는 셈법은 훨씬 더 묵직하고 차가운 강철의 논리다. 여의도 증권가와 세종 관가에서는 배터리 공장 설립을 단순한 'IRA 우회로' 확보 차원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오타와(Ottawa)의 시선은 한국의 조선소, 정확히는 거제와 울산의 도크에 정박된 3,000톤급 잠수함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CPSP(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로 불리는 캐나다의 차기 잠수함 도입 사업은 총 규모만 60조 원(약 600억 캐나다 달러)에 달하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방산 수주전이다. 노후화된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고, 북극해의 해빙으로 인해 열리고 있는 새로운 안보 전선을 방어하기 위해 캐나다 해군은 최대 12척의 신형 잠수함을 원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산 파트너였던 유럽이나 기술적 우위를 주장하던 일본 대신 한국이 유력한 파트너로 급부상한 배경에는 역시 '트럼프 2.0'이라는 지정학적 변수가 자리 잡고 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했던 캐나다 해군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그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미국과 상호 운용이 가능하되, 미국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생산 능력과 납기 준수(On-time Delivery)"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나토(NATO) 회원국들에게 가해지는 방위비 분담 압박과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기술 통제는 캐나다에게 심각한 안보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CPSP) 주요 경쟁국 비교 (2025년 방산 리포트 종합)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이 제시한 '패키지 딜'의 성격이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내각은 경제 성장의 동력을 전기차 산업 생태계 구축에서 찾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캐나다 현지에 건설 중인 배터리 셀 공장과 소재 생산 시설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잠수함 수주를 위한 거대한 '신용장(Letter of Credit)'과도 같다. 익명을 요구한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캐나다 측에서 잠수함 유지보수(MRO) 기술 이전뿐만 아니라, 현지 조선 인력 양성과 연계된 포괄적 산업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냉철한 현실 인식: 동맹인가, 지렛대인가?
그러나 낙관론만 펼치기에는 변수가 여전히 날카롭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이 내세우는 '타이게이급' 잠수함의 기술력과 미·일 동맹을 등에 업은 로비력은 여전히 강력한 위협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규모 대미(對美) 흑자를 문제 삼듯, 캐나다와의 밀착을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체제 내에서의 '우회 수출'로 규정하고 견제구를 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6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에 취해있는 사이,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것은 '기술 유출'과 '수익성'의 균형이다. 거제 조선소 현장의 목소리는 물량 확보를 반기면서도 핵심 기술만 넘겨주고 껍데기만 남는 장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캐나다의 '한국행 티켓'이 트럼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환승'인지, 아니면 100년을 함께할 '종착지'를 향한 선택인지, 정부와 기업은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시점이다.
방위산업 수출이 내수 경제의 활력소가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지정학적 청구서'의 금액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태평양을 건너 북극으로 향하는 한국의 잠수함은, 과연 우리의 안보 지평을 넓히는 개척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강대국들의 충돌 지점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인계철선이 될 것인가. 트럼프 2.0 시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은 캐나다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