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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스캔들 2년의 기록: 지연된 정의가 남긴 사법적 과제와 2026년의 경고

AI News Team
에든버러 스캔들 2년의 기록: 지연된 정의가 남긴 사법적 과제와 2026년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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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악몽, 끝나지 않은 2년

2024년,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명문 에든버러 아카데미(Edinburgh Academy)에서 터져 나온 진실은 단순한 학대 사건을 넘어선, 침묵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카르텔의 붕괴'였습니다. 당시 영국 공영방송 BBC의 탐사 보도로 세상에 드러난 이언 와일리(Iain Wylie) 등 교사들의 실체는, 소위 '젠틀맨'을 양성한다는 엘리트 교육의 산실이 실제로는 얼마나 끔찍한 위계에 의한 폭력의 온상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1월 30일 오늘, 우리는 그 사건이 법적 매듭을 지은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고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종결된 지 2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의 시계는 여전히 그 시절 체육관과 교실에 멈춰 있습니다. 런던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는 박지훈(가명) 씨는 2024년의 판결을 "끝이 아니라, 봉인해 두었던 악몽의 빗장을 억지로 연 사건"이라고 회고합니다. 그는 당시 뉴스를 접하며 느꼈던 무력감이 지금도 간헐적인 공황과 불면으로 이어진다고 토로했습니다. 박 씨의 사례는 사법 시스템이 '가해자 처벌'이라는 1차적 목표는 달성했을지언정,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이라는 궁극적 정의에는 도달하지 못했음을 시사합니다. 법적 승리가 곧 트라우마의 치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차가운 현실입니다.

17명의 전직 학생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대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수십 년이었습니다. 명문 사학이라는 거대한 권력 구조가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내부의 치부를 덮으려는 조직적 은폐를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인 '제 식구 감싸기'와도 궤를 같이합니다. 조직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약자의 비명을 소거해버리는 구조적 폭력은, 2026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규제 완화와 각자도생 기조가 강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더욱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치명적 실수: 정의를 멈춰 세운 법리적 오류

법의 존재 이유는 정의의 실현에 있지만, 때로는 법전(法典)의 잉크 한 방울이 정의를 수십 년간 질식시키기도 합니다. 2024년, 영국 에든버러 고등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은 20세기 후반 자행된 끔찍한 학대 사건의 종지부를 찍었으나, 그 이면에는 사법 시스템의 치명적인 허점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도피한 직후인 2000년대 초반, 스코틀랜드 검찰청(Crown Office)이 작성한 범죄인 인도 청구서의 '절차적 결함'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가해자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 목록을 제출하면서, 영미법계의 까다로운 증거 개시(Discovery) 절차 중 일부 항목을 누락하는 행정적 실수를 범했습니다. 단순한 서류 누락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실수는, 피고인 측 변호인단에게 "방어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강력한 법리적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이로 인해 첫 번째 인도 재판은 기각되었고, 가해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유유히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었습니다. 피해자들의 피 맺힌 절규보다 '절차적 완결성'이라는 관료주의적 형식을 우선시한 사법 시스템의 오만이 빚어낸 참사였습니다.

국제 형사법 전문가인 이재훈(가명) 교수는 이 사건을 두고 "법이 스스로의 꼬리를 무느라 몸통을 놓친 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사법 당국은 피해 아동들의 진술이 갖는 신빙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국제 조약상의 문구 해석을 두고 상대국 사법부와 지루한 공방을 벌이는 데 골든타임을 허비했습니다. 그 사이 공소시효와 관련된 법리적 쟁점은 더욱 복잡해졌고, 피해자들은 '정의가 지연되는 것은 정의가 부정되는 것'이라는 법언(法彦)을 뼛속 깊이 체험해야 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과 피해자들의 절규

2024년의 떠들썩했던 단죄 이후, 우리 사회는 제2, 제3의 에든버러를 막을 시스템적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피해 아동의 어머니인 박서연(가명) 씨는 아이의 진술이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 수십 차례의 심리 상담과 증언 녹화 과정을 거쳐야 했던 지난날을 고통스럽게 회상합니다. "아이가 악몽을 꿀 때마다 깨워 달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그 악몽의 내용을 법정 용어로 번역해 수사관들에게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2026년 현재,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낯선 어른을 보면 숨을 헐떡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법 절차가 지연되는 동안, 가해자 측의 방어 논리는 더욱 정교해졌고,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들의 상처를 계속해서 헤집어야 하는 '2차 가해'의 굴레에 갇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법적 지체'가 아동 학대 사건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 아동 심리 전문가인 최진우(가명) 박사는 "성인에게 2년과 성장기 아동에게 2년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시간"이라며, 사건 해결의 지연이 아이들에게 무력감을 학습시킨다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2025년 발간된 영국 왕립 검찰청(CPS)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관련 범죄의 기소부터 판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이 2020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단순히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필수 조건임을 망각한 결과입니다.

국경을 넘은 도피, 그리고 2026년의 새로운 장벽

2024년 6월, 사건 발생 2년 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 강제 송환은 '완전 범죄는 없다'는 명제를 증명했으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코틀랜드 현지 법원과 한국 법무부 사이의 지루한 공방은 범죄자에게는 시간을, 피해자에게는 절망을 벌어주었습니다. 피의자는 영국 사법 체계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극도로 중시한다는 점을 악용해, 끊임없이 재판 연기 신청과 보석 청구를 반복했습니다. 당시 런던에서 이 과정을 지켜봤던 박지훈(가명) 변호사는 이를 "명백한 '법 기술'에 의한 정의의 지연"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뒤늦은 심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2026년 현재 더욱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사법 공조의 장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습니다. 2024년의 에든버러 송환은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시스템의 승리가 아닌 '운이 좋았던 예외'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국경을 넘는 범죄가 날로 고도화되는 지금, 지연된 정의는 결국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2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진화했는가

2024년 에든버러 법정에서 내려진 판결은 단순한 사건의 종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미명 아래, 피해 아동의 고통이 어떻게 사법 시스템의 타임라인에서 증발할 수 있는지 보여준 뼈아픈 선례였습니다. 최근 영국 사법부와 국제 아동 인권 단체들이 발표한 2026년 연례 보고서는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신속 심리 트랙(Fast-Track Hearing)'이 도입되었지만, 피고 측의 무분별한 증거 채택 이의 신청과 절차 지연 전략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결국, 2년 전 에든버러가 남긴 숙제는 여전히 미완의 상태입니다. 법적 절차의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시스템이 과연 '정의'라는 이름을 달 자격이 있을까요? 2026년의 사법 시스템이 답해야 할 것은 복잡한 법리가 아닙니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가장 근원적이고도 무거운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