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역, GOSH 사태: '세계 최고'가 숨긴 5년의 침묵과 경고

동화 속 병원의 악몽: 94명의 아이들
런던 블룸즈버리에 위치한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병원(Great Ormond Street Hospital, 이하 GOSH)은 전 세계 소아과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단순한 병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J.M. 배리의 '피터 팬' 저작권료가 영구 기부되는 이곳은, 아이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약속하는 동화 속 '네버랜드'와도 같은 성지였다. 그러나 최근 왕립외과협회(RCS)의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그 신성한 명성은 94명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묻혀버렸다. '세계 최고의 소아 병원'이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서 벌어진 일은 동화가 아닌 잔혹한 현실 스릴러에 가까웠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정형외과 전문의 야세르 자바르(Yaser Jabbar)가 집도한 수술들을 재검토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총 721건의 사례 중 94명의 아동이 피할 수 있었던 부상을 입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안게 되었다. 이 중 36명은 하지 부동(다리 길이 차이), 근육 괴사, 신경 손상 등 되돌릴 수 없는 '심각한 위해(Severe Harm)'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들의 키를 늘려주고 휜 다리를 펴주겠다던 약속은, 불필요한 재수술과 절단 위기라는 악몽으로 돌아왔다. 이는 단순한 의료 과실(Malpractice)을 넘어, 환자의 안전보다 집도의의 권위가 우선시되었던 폐쇄적 의료 시스템의 참사다.
당시 상황의 참담함은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3년 자바르에게 자녀의 다리 교정 수술을 맡겼던 (가명) 이수진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GOSH라는 이름만 믿고 모든 의심을 거두었다"고 토로했다. 이 씨의 아들은 수술 후 극심한 통증과 감각 마비를 호소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회복 과정의 일부'라며 일축했다. 결국 아이는 다른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아야 했고, 지금도 보행 보조기 없이는 걷기 힘든 상태다.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이 씨의 절규는, 권위에 대한 맹신이 어떻게 환자의 방어권을 무력화시키는지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비극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일부 동료 의료진과 하위직 직원들이 자바르의 수술 방식과 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지만, 거대 병원의 위계질서와 명성 유지라는 명목 아래 묵살당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조직 내 침묵의 카르텔이 런던 한복판에서도 작동했던 것이다. GOSH 사태는 '명의'나 '최고 병원'이라는 수식어가 내부 자정 작용을 마비시키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인 상시 감시 체계 없이는 그 어떤 권위도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음을 94명 아이들의 희생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5년의 공백: 시스템은 왜 멈췄는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GOSH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의 안전을 지키는 '감시의 시계'만이 작동을 멈춘 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기간은 의료진에게는 단순한 경력의 일부였을지 모르나,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뼈가 굳고 다리가 휘어지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였다. 우리는 이 5년의 공백을 단순한 행정적 지연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세계 최고'라는 간판이 역설적으로 어떻게 내부의 비판 기능을 마비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당시 병원 내부는 '성공 신화'에 취해 있었다. 야세르 자바르라는 스타 의사의 영입은 병원의 명성을 높이는 호재로 여겨졌고, 그의 수술실에서 흘러나오는 불안한 신호들은 '혁신적인 시도'나 '불가피한 합병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의료계, 특히 외과 분야의 폐쇄적인 도제식 문화는 이러한 문제를 덮는 두꺼운 이불 역할을 했다.
(가명) 박지수 씨의 사례는 이러한 시스템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9년, 딸의 다리 교정 수술을 위해 GOSH를 찾았던 박 씨는 수술 후 아이의 통증이 심해지고 보행이 더 어려워지자 담당 의료진에게 문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세계 최고의 병원에서 진행한 수술이니 기다려보라"는 권위적인 확언뿐이었다. 박 씨는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라는 이름값에 눌려, 내 아이가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을 애써 무시해야 했다"고 회고한다. 이는 한국의 '빅5' 병원 쏠림 현상과 그 속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무력감과도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권위가 환자의 합리적 의심을 찍어 누르는 '갑질'의 형태가 의료 현장에서 발현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부 경고 시스템의 부재였다. 통상적으로 수술 후 합병증 비율이나 재수술률이 특정 임계치를 넘으면 자동 경보가 울리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2022년 왕립외과대학(Royal College of Surgeons)의 외부 검토가 시작되기 전까지, 병원 경영진은 이 데이터의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거나, 혹은 무시했다. 이는 2026년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데이터 기반 의료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눈이 권위에 가려져 있다면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다.
엘리트 의식과 내부 견제의 붕괴
조직 심리학에서는 이를 '성공의 덫(Success Trap)'이라 부른다. 과거의 압도적인 성공 경험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과도한 자신감을 심어주어, 실패의 징후를 무시하거나 은폐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GOSH 내부에서도 이러한 기류는 뚜렷했다. 자바르의 수술 방식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될 때마다, 조직은 이를 심각한 임상적 오류로 받아들이기보다 "스타 의사에 대한 시기"나 "성격 차이"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한국의 대형 병원들, 소위 '빅5'라 불리는 의료 권력 내부에서 종종 목격되는 '명의(名醫) 신화'의 그림자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가명) 박지훈 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마친 후 영국으로 건너가 현지 의료 시스템을 경험한 흉부외과 전문의다. 그는 GOSH 사태를 지켜보며 "권위가 실력을 압도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톱 티어' 병원일수록 내부 고발은 곧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됩니다. 특히 해당 의사가 병원의 수익이나 명성에 기여하는 바가 클수록, 동료 의사나 간호사가 문제를 제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설마 저분이 틀렸겠어?'라는 막연한 믿음, 그리고 '감히 내가 지적해도 될까?'라는 위계적 공포가 결합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이죠."
실제로 자바르가 GOSH에서 근무한 5년 동안, 부모들은 아이의 다리가 기형적으로 변하거나 통증이 심해져도 "세계 최고의 병원 의사가 한 수술이니 과정일 뿐일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의료진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는 공식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복도에서의 수군거림으로 흩어졌다. 왕립외과대학(RCS)의 외부 조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700여 명의 아이들이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수술을 받았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다. '세계 최고'라는 간판이 환자들의 합리적인 의심을 차단하는 마취제 역할을 한 셈이다.
데이터는 알고 있었다: 놓친 신호들
우리는 흔히 의료 사고를 '예기치 못한 불운'이나 '신의 영역'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복기해보면, 비극은 돌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데이터상으로 명확히 드러나는 '이상 징후'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립외과대학(RCS)의 보고서가 지적했듯, 수술 후 재수술률, 합병증 발생 빈도, 그리고 환자들의 회복 속도라는 지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었다.
런던의 한 데이터 분석 기업에서 일하는 (가명) 박민수 씨는 "금융권이나 제조업 현장이었다면, 이 정도의 편차(deviation)는 즉각적인 감사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통상적인 정형외과 수술의 재수술 비율이 특정 집도의에게서만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면, 시스템은 이를 '빨간불'로 인식하고 알람을 울렸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GOSH의 시스템은 침묵했다. 그 침묵의 원인은 데이터의 부재가 아니라, 데이터를 해석하고 행동해야 할 결정권자들이 '권위'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성공 신화'에 취한 조직이 내부의 경고 신호를 어떻게 묵살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다리 길이 불일치나 기형 교정 수술과 같은 고난도 시술은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특성이 있다. 자바르는 이러한 시간차를 방패 삼아, 공격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수술법을 강행했다. 만약 수술실의 폐쇄적인 공기가 아니라, 객관적인 수치로 환자 예후를 추적하는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이 가동되었다면, 7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훨씬 일찍 멈출 수 있었을 것이다.

사라진 의사, 남겨진 고통
런던의 회색빛 하늘 아래, GOSH의 명성은 여전히 견고해 보이지만 그 화려한 명패 뒤편에는 해결되지 않은 고통이 남아 있다. '신의 손'이라 불리던 야세르 자바르가 병원을 떠난 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아이들의 몸에 영구적인 흉터로 새겨져 있다.
현재 자바르의 행방은 묘연하다. 영국 언론과 의료계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두바이 등 중동 지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의학 위원회(GMC)의 등록 명단에서는 그의 이름이 지워졌고, 런던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는 하나, 국경을 넘은 그에게 법의 팔은 아직 닿지 않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아동 병원'에서 벌어진 의료 참사의 장본인이, 어떠한 직접적인 해명이나 사과 없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환자들의 피눈물만이 고여 있다. 5년 전, 하지 부동 교정 수술을 위해 자바르에게 아이를 맡겼던 (가명) 최수연 씨의 시간은 2021년에 멈춰 있다. 당시 8살이었던 아들 (가명) 박준호 군은 간단한 교정 수술이라는 설명과 달리, 일리자로프(Ilizarov) 프레임을 착용한 채 수개월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최 씨는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했다. GOSH의 의사니까, 당연히 우리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수술 후 준호 군의 다리 정렬은 오히려 더 어긋났고, 신경 손상으로 인해 발목을 제대로 들어 올릴 수 없는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다. 2026년 현재, 열세 살이 된 준호 군은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노는 대신 재건 수술을 위해 또다시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처지다.
타산지석: 한국 의료계에 던지는 질문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비극은 9,000km 떨어진 대한민국 의료계에도 서늘한 경고장을 날린다. 우리는 흔히 '빅5'로 불리는 초대형 병원들에 대해 종교에 가까운 신뢰를 보낸다. "서울로 가면 살 수 있다"는 믿음, "명의에게 수술받으면 다르다"는 확신은 GOSH를 찾았던 영국 부모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야세르 자바르 사태가 증명한 것은, 그 견고해 보이는 '권위'가 역설적으로 내부의 자정 작용을 마비시키는 가장 강력한 마취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명의'라는 성역과 침묵의 카르텔
한국 의료 현장, 특히 대형 대학병원 수술실의 공기는 런던보다 더 무거울 수 있다. 철저한 도제식 교육과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의국 문화 속에서, '스타 교수'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펠로우로 근무 중인 (가명) 박준영 씨는 "수술장에서 교수님의 술기(technique)가 교과서와 다르거나 환자 예후가 예상보다 나빠도, 그것을 '오류'라고 지적하는 것은 의국 전체의 평화를 깨는 행위로 간주된다"고 토로했다.
화려한 EMR, 빈약한 감시망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정보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거의 모든 병원이 전자의무기록(EMR)을 사용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방대한 진료 데이터가 쌓인다. 그러나 이 데이터들이 환자의 안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데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현재의 데이터 활용은 주로 진료비 청구와 삭감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정 의사의 수술 후 재수술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거나, 특정 시술 후 감염률이 튈 때 이를 즉각적으로 감지해 '적색경보'를 울리는 '조기 경보 시스템'은 일부 선도적인 병원을 제외하면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신뢰 회복을 위한 고통스러운 여정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사과나 금전적 보상이 아닌, '감시받지 않는 성역'을 허물어뜨릴 구조적 개혁이다. 전문가들은 의료진의 '선의'와 '윤리'에만 기댄 자정 작용은 명백히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이고 강제적인 상시 감시 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 수술 결과, 합병증 발생률, 재수술 비율 등의 핵심 임상 데이터를 익명화하여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특정 의사의 지표가 평균 범위를 벗어날 경우 동료 평가(Peer Review)가 아닌 시스템이 즉각적인 경고등을 켜는 '디지털 조기 경보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2026년, 우리는 AI와 빅데이터가 복잡한 질병을 진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기술이 가장 시급하게 도입되어야 할 곳은 진료실 안이 아니라, 의료 행위 자체를 투명하게 감시하는 관리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신뢰는 "우리는 최고니 믿으라"는 오만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철저히 검증받고 있다"는 투명성에서 나온다. GOSH가, 그리고 전 세계 의료계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가장 먼저 들어야 할 메스는 바로 그들 자신의 환부, 즉 '불투명한 권위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