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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택시 1천 마을의 딜레마: 교통 복지의 완성인가, 선거용 치적인가

AI News Team
브라보택시 1천 마을의 딜레마: 교통 복지의 완성인가, 선거용 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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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 마을의 발, ‘1,250원 택시’의 기적

새벽 5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한 마을. 인적 드문 이곳의 정적을 깨는 것은 낡은 버스 엔진 소리가 아닌, 호출을 받고 달려온 주황색 택시의 부드러운 주행음이다. 2026년 1월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병원 정기 검진을 위해 집을 나선 이정순(78·가명) 씨에게 이 택시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씨는 읍내 병원 한 번을 가기 위해 지팡이에 의지해 1.5km가 넘는 비포장도로를 걸어 버스 정류장까지 나가야 했다.

"옛날에는 아픈 다리 끌고 버스 기다리다 하루가 다 갔지. 이제는 전화 한 통이면 집 앞까지 오니, 이게 바로 사는 맛 아니겠나." 이 씨가 지불한 요금은 1,250원. 시내버스 기본요금 수준의 금액으로, 미터기에 찍힌 2만 원이 넘는 요금과의 차액은 지자체가 보전한다.

이른바 '100원 택시'로 시작해 이제는 경남 전역의 '브라보택시'로 정착한 이 수요응답형 교통(DRT) 서비스가 2026년 새해를 맞아 운행 마을 1,000곳을 돌파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확장이 아니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노선버스가 폐지되거나 하루 1~2회만 운행되던 '교통 오지'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었음을 의미한다. 경상남도가 선언한 '대중교통 소외 지역 제로(0)' 목표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브라보택시의 확장은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인한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이동권(Right to Mobility)이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인식의 전환을 보여준다. 물리적 거리를 좁힘으로써 의료, 문화, 상업 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복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실제로 경남연구원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보택시 도입 이후 이용 주민들의 의료기관 방문 횟수는 도입 전 대비 약 30% 증가했으며, 외출 빈도 증가가 노인 우울감 감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화려한 '1,000개 마을 시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지자체가 감당해야 할 손실 보전금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부르면 오는' 편리함 뒤에는 매년 수십억 원씩 불어나는 예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연도별 브라보택시 운행 마을 수 및 이용객 추이 (출처: 경상남도 내부 자료 재구성)

양산시 합류, 마침내 완성된 경남의 지도

경상남도 지도 위, 마지막으로 비어있던 퍼즐 조각이 마침내 채워졌다. 2026년 1월, 양산시가 ‘브라보택시’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경남 18개 시·군 전역을 아우르는 촘촘한 교통 복지망이 완성됐다. 이는 2017년 사업 도입 이후 9년 만에 달성한 쾌거이자, 대중교통 소외 지역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경남도의 광역 교통 비전이 물리적으로 실현된 순간이다.

도농 복합 도시의 특성상 수익성 문제로 도입을 주저했던 양산시가 합류함으로써, 브라보택시는 명실상부한 경남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양산시 원동면의 외딴 마을에 거주하는 정순자(76·가명) 씨의 사례는 이번 노선 확장이 갖는 생활 밀착형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절염으로 정기적인 통원 치료가 필수적인 정 씨에게 읍내 병원은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먼 곳이었다.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데, 그마저도 놓치면 하루를 공쳐야 했다"는 정 씨는 이제 호출 한 번으로 집 앞까지 오는 택시를 이용한다.

이번 양산시의 합류로 브라보택시 운행 마을은 경남 전역 1,000여 곳을 돌파했다. 이는 단순한 수적 증가를 넘어, '수요 응답형 교통(DRT)' 모델이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표준 인프라로 정착했음을 시사한다. 기존의 노선 버스가 감당하지 못했던 '라스트 마일(Last Mile)'을 택시가 대체하면서, 공공은 막대한 버스 보조금을 절감하고 택시 업계는 고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상생 구조가 경남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경남 브라보택시 운행 마을 수 추이 (2020-2026)

그러나 이 '완성된 지도' 이면에는 치밀한 셈법이 작동하고 있다. 양산시가 막판까지 고심했던 이유는 결국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손실 보전금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다. 경남도는 이번 전 시군 확대를 위해 복권기금 배분액을 늘리고 도비 지원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등 공격적인 재정 투입을 단행했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통 복지 완성'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던 정치적 시간표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맞물린 결과다.

복권기금 39억 원이 떠받치는 바퀴

경남도내 '브라보택시'가 운행 마을 1,000곳을 돌파하며 농어촌 교통 복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화려한 성적표 이면에는 불안정한 재원 구조라는 아킬레스건이 숨어 있다. 올해 브라보택시 운영에 투입되는 사업비 중 핵심은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로부터 지원받는 39억 원 규모의 복권기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예산이 아닌, 소위 '부수적 수입'인 복권기금이 사업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교통 약자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지자체의 책임 있는 일반 회계가 아닌 외풍에 취약한 외부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의 중장기 재정 운용 보고서에 따르면, 복권기금은 본래 법정 배분 사업과 공익 사업에 활용되지만 경기 변동이나 정부의 기조 변화에 따라 배분 우선순위가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2026년 현재, 트럼프 2.0 행정부의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와 관세 장벽으로 인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가 재정 전반에 긴축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거시 경제 환경 변화는 복권기금과 같은 목적형 기금의 집행 규모를 위축시킬 수 있으며, 결국 중앙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 경우 재정 자립도가 낮은 경남권 군 단위 지자체들은 당장 브라보택시의 운행 횟수를 줄이거나 사업 자체를 존폐 위기로 몰아넣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경남 의령군에서 농사를 지으며 브라보택시를 애용해 온 정민우(가명) 씨는 매주 병원을 갈 때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다. 정 씨는 "마을까지 들어오던 버스가 끊기고 나서 이 택시가 유일한 발이 됐는데, 군청에서 예산이 없어서 내년부터 안 한다고 할까 봐 동네 사람들끼리 모이면 늘 걱정 섞인 농담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선거철마다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운행 지역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며 양적 팽창에만 열을 올릴 뿐, 이를 지탱할 안정적인 지방세 기반의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행정 전문가들은 브라보택시가 단순한 '선거용 치적'을 넘어 지속 가능한 복지 모델로 안착하려면, 국비 지원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되 지방 교부세의 안정적 확보나 교통유발부담금의 효율적 재배분 같은 구조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복권 당첨금이라는 불확실한 행운이 농어촌 노인들의 유일한 이동권을 담보하고 있는 현재의 '복권 의존형 복지'는 사상누각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브라보택시 재원 구성 및 외부 기금 의존도 (출처: 경상남도 재정공시 2026)

6월 선거판 흔드는 ‘효자 정책’의 이면

지방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2026년 1월, 경상남도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도내 벽지 교통 취약 지역을 대상으로 한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인 '브라보택시'가 운행 마을 1,000곳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표면적으로는 교통 복지의 승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정의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선거철과 맞물린 이 급격한 확장이 과연 순수한 복지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가장 확실한 '표밭'인 농어촌 고령층을 겨냥한 정교한 정치 공학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일선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경남의 한 군청 교통행정과에서 근무하는 박준형(가명) 씨는 최근 내려온 지침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윗선에서 선거 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라는 압박이 상당하다"며, "기존 노선버스 업체들의 반발과 보조금 정산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행 마을 수만 늘리는 것은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이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박 씨의 증언은 브라보택시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현직 단체장들의 치적 홍보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외상으로 산 표"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당장의 이용 횟수와 마을 수를 늘려 환심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 불어나는 운영비와 기사 인건비, 시스템 유지보수 비용은 고스란히 다음 임기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선거 전에는 '무제한 복지'를 외치다 선거가 끝나면 '긴축 재정'을 핑계로 혜택을 거두어들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 행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일회성 호혜를 넘어 보편적 이동권으로

브라보택시가 경상남도 내 벽지 마을의 '발'이 되어준 지 수년, 이제 '전 시군 운행'과 '1천 개 마을 혜택'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 뒤에는 여전히 불안한 그림자가 어린다.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의 급격한 대상 확대가 과연 지속 가능한 복지 모델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표심을 겨냥한 한철 '선심'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때다.

단순한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사업'이 아닌 '제도'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지자체장의 재량이나 중앙 정부 공모 사업 여부에 따라 존폐가 갈리는 현재의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상남도의회와 각 시군 의회는 '농어촌 주민의 보편적 이동권 보장 조례'를 제정하거나 강화하여, 예산 편성의 법적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선거철 반짝이는 치적이 아니라, 다음 도지사나 군수가 누가 되든 상관없이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운영 효율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2026년 현재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AI 기반 배차 시스템을 도입해 합승률을 높이고 최적 경로를 산출하는 등 기술적 해법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이는 예산 절감뿐만 아니라, 택시 기사들의 실질 소득 보전과 운행 피로도 감소라는 '상생(相生)'의 가치와도 직결된다.

결국 브라보택시는 1,250원이라는 저렴한 요금 그 이상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것은 교통 소외 지역 주민들에게 "당신도 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동할 수 없다면 교육도, 의료도, 경제 활동도 불가능하다.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는 2026년, 브라보택시가 단순한 선거용 확성기가 아니라 지방을 지탱하는 단단한 핏줄로 자리 잡으려면, 지금 당장 정치적 셈법을 걷어내고 법과 제도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 이동권은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는 선물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