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밸류업 시즌2': 트럼프 2.0 '서울 쇼크'의 방파제 될까

'서울 쇼크' 한복판, 다시 꺼내 든 자사주 카드
2026년 1월의 마지막 거래일을 앞둔 여의도 증권가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그린란드 자원 병합 공식화와 강력한 관세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 지수가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이른바 '서울 쇼크(Seoul Shock)'가 시장을 덮친 상황에서, LG전자가 던진 승부수는 묵직했다. 단순한 배당 확대를 넘어선,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을 포함한 주주환원 정책의 확대 발표였다.
이는 공포에 질린 시장에 던지는 명확한 신호였다.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 현금성 자산을 주주환원에 투입하겠다는 결정은, 경영진이 회사의 펀더멘털과 현금 창출 능력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의도의 한 펀드매니저 (가명) 최진우 씨는 "트럼프 2.0 시대의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점"이라며, "이런 때에 나온 대규모 주주환원책은 주가 하방 경직성을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공시 직후, 패닉 셀링(공황 매도)에 동참하던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매도 주문을 거두어들였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도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번 발표는 2024년 정부 주도로 시작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그 성격은 확연히 진화했다. 초기 밸류업이 저평가 해소(PBR 1배 달성 등)라는 당위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2026년의 LG전자는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로서 주주환원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발 관세 폭탄과 공급망 재편 압박이라는 외부 충격(Exogenous Shock)을 내부의 자본 효율화로 상쇄하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는 단순히 주주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차원을 넘어,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한국 제조업의 투자 매력도를 방어하기 위한 치열한 수 싸움이다.
LG전자 PBR 추이 및 KOSPI 대비 변동률 (2024-2026)
하지만 시장의 반응이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30대 개인 투자자 (가명) 박민지 씨는 "배당을 더 주는 건 좋지만, 결국 회사가 미래 성장 동력인 AI나 로봇 분야에 투자해야 할 돈을 주가 방어에 쓰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다. 이는 '성장'과 '환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의 딜레마를 정확히 짚어낸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될수록 미국 현지 투자 압박은 거세질 것이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곳간을 열어 주주를 달래는 전략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2024년의 약속 vs 2026년의 현실: 밸류업의 진화
2024년 10월, LG전자 조주완 CEO가 발표했던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당시 "2030년까지 매출 100조 원, '7·7·7(연평균 성장률·영업이익률 7%, 기업가치 7배)' 달성"이라는 청사진과 함께 제시된 주주환원책은 성장의 자신감을 시장에 투영하는 공격적인 신호였다. 배당 성향을 25%로 확대하고, 분기 배당을 정례화하며, 보유 자사주를 소각하겠다는 약속은 '만년 저평가'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한 승부수였다.
그러나 2026년 1월, 트럼프 2.0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찾아온 '서울 쇼크'는 이 방정식의 변수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지금 LG전자가 꺼내 든 '밸류업 시즌2'는 2년 전의 공격적 확장이 아닌, 거센 보호무역주의의 파고 속에서 주주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방파제 구축'에 가깝다. 2024년의 정책이 기업 내부의 잉여 현금을 주주와 나누는 '낙수 효과'에 초점을 맞췄다면, 2026년의 정책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주가를 방어하고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한 '댐 건설'로 그 성격이 진화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만난 한 펀드매니저는 "2024년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LG전자의 '전장(VS) 사업' 성장성에 베팅하며 들어왔지만, 지금은 트럼프 관세 리스크로 인해 '코리아 엑소더스(탈출)'를 고민하는 시점"이라며 "이번 주주환원 확대는 외국인 이탈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국내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버티기' 신호"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달부터 이어진 외국인 매도세 속에서도 LG전자가 자사주 매입 규모를 늘리며 주가를 방어한 것은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재원 활용의 변화다. 2024년에는 연결 당기순이익의 25% 이상을 주주환원에 쓰겠다는 '비율' 중심의 접근이었지만, 2026년 안에는 보유 현금성 자산을 활용한 보다 유연하고 즉각적인 개입이 포함되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예상되는 이익 변동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LG전자 주주환원 정책 재원 추이 (단위: 억 원)
트럼프 2.0와 관세 장벽: 현금 대신 주식을 선택한 셈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출범한 2026년 1월, 여의도 증권가는 다시금 '관세의 공포'에 휩싸였다. 워싱턴발 보호무역주의 광풍은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 그중에서도 가전과 전장 사업으로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LG전자에게는 실존하는 위협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대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기, 기업의 재무 담당자(CFO)들은 곳간 문을 걸어 잠그고 '현금 확보(Cash is King)'를 최우선 전략으로 삼기 마련이다. 그러나 LG전자는 이 교과서적인 위기 대응 공식을 비틀었다.
이는 단순한 '주주 달래기'를 넘어선 고도의 셈법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2.0 시대의 보편적 관세 위협은 국내 증시 전반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선 '트럼프 디스카운트'를 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코스피 지수가 박스권 하단을 위협받자, 개인 투자자들의 '국장 탈출(국내 주식시장 이탈)' 러시는 가속화되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투자자 (가명) 김민수 씨는 "수출 규제가 터질 때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걸 보며 피로감을 느꼈다"며, "LG전자가 돈을 잘 버는 건 알지만, 주가가 그걸 반영하지 못한다면 미국 빅테크로 갈아타는 게 낫지 않냐는 고민을 매일 한다"고 토로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자사주 매입은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재정의한 사례다. 고금리와 고환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업이 보유한 현금의 기회비용은 증가한다. 만약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내부에 유보했을 때의 수익률보다, 저평가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함으로써 얻는 주당순이익(EPS) 상승 효과가 더 크다면, 이는 주주에게 더 유리한 선택이 된다. 특히 현재 LG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역사적 저점 구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이러한 판단에 힘을 실어준다.
LG전자 주가순자산비율(PBR) 추이 및 주요 경제 이벤트 (2023-2026)
미래 성장 동력은 어디에? AI·6G 투자의 딜레마
여의도의 환호성 뒤에는 침묵하는 연구소의 불꺼진 창문이 있다. LG전자가 발표한 '밸류업 시즌2'는 주주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지만, 2026년 현재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엔지니어들에게는 서늘한 경고로 다가온다. 트럼프 2.0 시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단순한 관세 장벽을 넘어 기술 표준과 공급망 자체를 흔드는 상황에서, 현금성 자산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대거 투입하는 결정이 과연 '지속 가능한 성장'과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의 비전인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은 결국 AI(인공지능)와 6G 통신 기술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두 분야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오픈AI와 구글, 삼성전자가 매년 수십조 원을 AI 인프라와 차세대 통신 표준 선점에 쏟아붓고 있는 지금, LG전자의 R&D(연구개발) 투자 증가율은 주주 환원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정부 주도로 시작된 밸류업 프로그램이 2년 차를 맞아 기업들에게 더 강력한 주주 환원을 요구하면서, 정작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실탄'이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근무하는 책임연구원 (가명) 박지훈 씨는 "최근 팀 내부 예산 회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며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선행 기술 과제, 특히 6G 관련 실증 실험 예산이 보수적으로 책정되고 있다. 주가는 오를지 몰라도, 3년 뒤 중국 기업들이 저가 AI 가전으로 밀고 들어올 때 우리가 기술적 해자(Moat)를 지킬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화웨이와 샤오미는 이미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업고 6G 특허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분야에서도 LG전자의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LG전자 R&D 투자 vs 주주 환원 규모 추이 (2023-2026 예측)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벽: 소각 없는 매입의 한계
"결국 소각이 없으면 그것은 '환원'이 아니라 '보관'에 불과합니다."
여의도 증권가 메신저에 뜬 LG전자의 밸류업 공시를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은 차가움과 뜨거움 그 사이, 미묘한 온도 차를 보였다. 자사주 매입은 분명 호재이지만, 투자자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전량 소각'이라는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자본금 조정 메커니즘에서 자사주 매입이 주가 부양의 신호탄이라면, 소각은 발행 주식 총수를 줄여 주당 가치(EPS)를 영구적으로 높이는 실질적인 이익 이전 행위다.
하지만 한국 자본시장, 특히 재벌 대기업 중심의 거버넌스 구조에서 자사주는 종종 주주 환원이 아닌 경영권 방어의 '마법 지팡이'로 활용되어 왔다는 불신이 여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거대한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10년 차 개인 투자자인 (가명) 정수민 씨(42)는 "미국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했을 때는 자사주 매입 공시가 뜨면 곧바로 내 주식 가치가 올라간다는 확신이 든다. 회사가 주식을 사서 없애버리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한국 기업이 자사주를 산다고 하면 '언제 다시 시장에 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부터 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6년 현재, 트럼프 2.0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가 현실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자사주 활용법은 더욱 복잡한 셈법에 얽혀 있다. LG전자 입장에서 현금은 곧 생존을 위한 실탄이다. 미국 내 공장 증설 압박과 관세 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적 지출(CAPEX)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해버리는 것은 현금을 영구적으로 유출시키는 행위다. 반면, 자사주를 매입해 보유하고 있으면 주가 하락을 방어하면서도, 유사시 이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전략적 제휴를 위한 교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게 된다.
KOSPI 200 기업 자사주 처분 목적(2023-2025)
주주가치 제고,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기업 문화'로
금융투자업계에서 '밸류업(Value-up)'이라는 단어는 한때 유행어처럼 소비되다 사라질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선과 마주해왔다. 그러나 2026년 1월, 트럼프 2.0 행정부의 거센 보호무역 파고가 덮친 지금, LG전자가 내놓은 주주환원 확대안은 단순한 '주가 부양책'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읽힌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2024년 정부 주도로 시작된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의 자율적인 생존 본능과 결합하여 진화한 형태, 즉 '밸류업 시즌 2'의 서막으로 평가하고 있다.
LG전자의 이번 발표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신뢰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잉여 현금 흐름의 일부를 배당하는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포함한 총주주환원율(TSR)을 글로벌 경쟁사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은 '주주 가치'를 '오너 일가의 이익'과 분리해 생각하던 과거의 관행과 결별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LG전자 및 글로벌 가전 경쟁사 평균 주주환원율(TSR) 추이 및 목표 (2023-2026)
이제 한국 제조업에게 주주는 단순한 자금줄이 아니다. 트럼프 2.0 시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 장벽 뒤에서 한국 기업이 고립되지 않으려면, 글로벌 자본 시장을 우군으로 만드는 '주주 동맹'이 필수적이다. LG전자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거버넌스 리스크'를 해소하고, 기업과 주주가 이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의 표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 약속이 또다시 공수표로 돌아간다면, 투자자들은 두 번 다시 한국 시장을 돌아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2026년의 LG전자는 지금, 자본 시장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재무제표에 새겨넣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