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와 행정권의 정면충돌: 미네소타의 '윤리 판사'가 던진 헌법적 질문

96번의 무시, 그리고 판사의 최후통첩
미네소타 연방 지방법원의 공기는 무거웠습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미니애폴리스의 바깥 날씨보다 법정 안의 냉기가 더 매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2026년 1월 말, 패트릭 슐츠(Patrick Schiltz) 판사의 법정에서는 미국 건국 이래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에서 가장 위태로운 줄타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피고석에 앉은 것은 개인이 아닌, 트럼프 2.0 행정부의 '창'으로 불리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이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숫자 '96'에 있었습니다. 슐츠 판사가 법무부 소속 변호인단을 향해 제시한 기록에 따르면, ICE는 지난 수개월간 미네소타 지부에서만 무려 96차례나 법원의 구체적인 명령을 위반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나 관료주의적 지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도를 넘은 수치였습니다. 구금된 이민자에 대한 의료 기록 제출 명령부터, 적법 절차를 위한 심리 일정 준수까지, 법원이 "하라"고 명한 것을 ICE는 "하지 않았"거나 "무시"했습니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박진우(가명) 변호사는 "과거 행정부에서도 행정 지연은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법부의 명령을 '패싱(passing)'하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혀를 찼습니다. 그는 "마치 행정부의 지침이 법원의 명령보다 상위에 있다는 듯한 태도"라고 덧붙였습니다. 슐츠 판사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법정 기록에 남을 공식 발언을 통해 "연방 기관이 법원을 이토록 경시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ICE를 '법정 모독(contempt of court)' 혐의로 제재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민자 몇 명을 풀어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6년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행정권 우위'의 기조가 사법부라는 헌법적 방파제와 정면으로 충돌한 첫 번째 대형 파열음이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이 내놓는 분석 보고서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행정부가 사법 시스템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ICE가 법원의 명령을 96번이나 어긴 것은, 어쩌면 실무자의 실수가 아니라 '사법부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그널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스칼리아의 제자, 부시의 선택: 슐츠는 누구인가
워싱턴의 호사가들은 패트릭 슐츠 연방 지방법원 판사를 향해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하수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공약인 '국경 통제 강화'와 ICE의 권한 확대에 제동을 건 그를 두고, 백악관 대변인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민의 의지를 꺾으려 한다"며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슐츠의 법복 뒤에 감춰진 이력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정치적 프레임은 순식간에 힘을 잃습니다. 그는 진보 진영의 투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미국 보수 법학의 아이콘인 앤터니 스칼리아(Antonin Scalia) 대법관의 서기(Clerk) 출신이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성골' 보수주의자입니다.
2000년대 초반, 슐츠가 미네소타 연방 지방법원에 부임했을 때 법조계는 그를 '법의 기술자'이자 철저한 '텍스트주의자(Textualist)'로 분류했습니다. 스칼리아 대법관이 그러했듯, 슐츠 역시 법조문의 문언적 의미를 넘어선 유추 해석을 극도로 경계해 왔습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기업의 규제 완화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고, 행정부의 자의적인 환경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즉, 그의 사법적 나침반은 언제나 '헌법이 정한 권력의 분립'과 '적법 절차(Due Process)'를 가리키고 있었지, 특정 정당의 강령을 향한 적이 없었습니다.
패트릭 슐츠 판사의 행정부별 행정명령 기각/인용 비율 (2004-2026)
위 데이터는 슐츠 판사가 정파적 이해관계가 아닌, 행정권의 남용 빈도에 비례하여 사법적 통제를 가해왔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트럼프 2.0 행정부 출범 이후 그의 기각률이 급증한 것은, 슐츠가 변한 것이 아니라 행정부의 권력 행사 방식이 헌법적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행정 편의주의의 폭주: '법 위에 있는 기관'
"국토안보부(DHS)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연방 법원의 명령이 선택 사항이라고 믿는가?" 슐츠 판사의 이 질문은 2026년 미국 헌정 질서를 관통하는 핵심 의제입니다. 법조계와 행정학자들은 ICE의 반복적인 불복종이 단순한 실무자의 실수가 아닌, 트럼프 2.0 행정부가 추진해 온 '행정권의 극대화'와 '사법 통제 무력화'라는 구조적 기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2026년 현재, 백악관은 '효율성'과 '국경 보안'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이를 저해하는 모든 절차적 규제를 '방해 공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조 하에 ICE는 사실상 '전시 작전권'에 준하는 재량권을 부여받았으며, 이는 현장의 요원들에게 법원의 명령보다 상부의 지침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심어주었습니다. 미니애폴리스 현지에서 이민자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박진우 변호사는 "과거에는 법원 명령서 한 장이면 ICE 요원들이 즉각 반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워싱턴의 지침을 확인해야 한다'며 법원 명령을 뭉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관치'나 '행정 편의주의'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 헌법적 함의는 훨씬 심각합니다. 미국 헌법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시스템이 물리적 강제력을 가진 집행 기관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지타운 로센터의 최근 보고서는 이를 "행정 독주(Executive Unilateralism)의 단계적 완성"이라고 분석하며, 행정부가 법원의 감독 기능을 무시할 때 민주주의는 법치(Rule of Law)에서 인치(Rule by Law)로 퇴보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미네소타의 겨울, 얼어붙은 헌법적 가치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법원의 창밖은 체감온도 영하 34도의 살인적인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법정 내부의 공기는 그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2026년 1월 말, 미네소타를 강타한 기록적인 블리자드는 도시의 전력망을 마비시켰고,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난방이 되는 대피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난의 한복판에서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보여준 행보는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국가 권력의 윤리적 마지노선이 어디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미니애폴리스 남부에서 15년째 세탁소를 운영해 온 최진우(가명) 씨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미국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정전으로 가게의 파이프가 모두 동파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보다 더 두려운 것은 거리의 풍경이었습니다. 구급차나 제설차보다 ICE의 검은 밴이 더 자주 보였으니까요. 사람들이 얼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신분증 검사가 우선시되는 것을 보며, 이곳이 내가 알던 미국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2024-2026 美 연방 예산 증감률 비교 (단위: %)
위의 데이터가 보여주듯, 트럼프 2.0 시대의 예산은 명확하게 '통제'와 '단속'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국토안보부(DHS)의 예산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동안, 실질적인 재난 대응을 담당하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예산 증가폭은 둔화되거나 오히려 실질 가치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네소타의 위기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인재(人災)'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슐츠 판사의 판결문은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 절차(Due Process)가 얼어붙은 미네소타의 거리에서 어떻게 녹아내리고 있는지를 기록한 역사적 문서와도 같습니다. 그는 "재난 앞에서는 모든 거주자가 평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지만, 백악관은 이를 '사법부의 월권'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대립각은 향후 연방 대법원까지 이어질 헌법 소송의 서막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