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영정 앞에 서다: 나경원이 이해찬에게 보낸 마지막 경의

빈소에 울린 파격의 메시지
1월 29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빈소는 영하의 추위보다 더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2026년 대한민국 정치는 트럼프 2.0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와 맞물린 경제 위기,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야의 '강 대 강' 대치로 인해 상대 진영을 대화 상대가 아닌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내전'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등장은 그 자체로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나 의원은 조문 후 취재진과 만나 "이 전 대표는 평생을 바쳐 민주당의 기틀을 닦았고, 비록 저와 정치적 지향점은 극명히 달랐으나 그 누구보다 민주당의 가치에 가장 충실했던 분"이라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 발언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 사이에서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단순히 고인의 넋을 기리는 의례적인 수사를 넘어, 극단적 양극화로 인해 사라져버린 '존중을 기반으로 한 경쟁'이라는 의회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5년도 정치 의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유권자의 74.2%가 "상대 정당 지지자와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꺼려진다"고 답할 만큼 한국 사회의 심리적 분단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나 의원이 던진 메시지는 진영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정치의 품격'을 환기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빈소 한편에서 뉴스 속보를 지켜보던 시민 김서연 씨는 "매일같이 서로를 향해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권의 모습만 보다가, 상대를 진심으로 예우하는 장면을 보니 낯설면서도 뭉클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피로감이 극에 달한 중도층의 심경을 대변합니다.
나 의원의 이번 행보는 여의도 정치권 내부에서도 단순한 조문 이상의 함의로 읽힙니다. 트럼프 시대의 거친 문법이 한국 정치에 이식되면서 '협치'라는 단어가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지만,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결국 상대를 인정하는 파트너십이 절실하다는 신호를 보낸 셈입니다. 이 전 대표가 생전 강조했던 '민주당의 가치'를 보수 정당의 중진 의원이 인정하는 순간, 빈소를 가득 채웠던 적대감은 잠시나마 갈등의 해법을 고민하는 성찰의 공기로 바뀌었습니다.
보수가 인정한 '진보의 설계자'
나경원 의원이 빈소에서 남긴 "민주당의 가치에 가장 충실했던 분"이라는 회고는 단순한 조문 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이해찬이라는 인물이 점하고 있는 독보적인 좌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보수 정당의 중진이자, 한때 치열한 대여 투쟁의 선봉에 섰던 나 의원의 입에서 나온 이 평가는 역설적으로 고인이 진보 진영 내에서 가졌던 '대체 불가능한 무게감'을 증명합니다.
이해찬 전 대표는 단순한 다선 의원이나 행정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부터 2000년대 참여정부의 실세 총리,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절의 집권 여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한국 진보 정치의 이념을 정책과 시스템으로 구현해낸 실질적인 '설계자'였습니다. 보수 진영 입장에서 그는 가장 까다로운 상대이자, 때로는 타협하기 힘든 원칙주의자였으나, 동시에 정치가 단순히 말의 성찬이 아니라 권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실력'임을 증명해 보인 거물(巨物)이기도 했습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그를 두고 '버럭 해찬'이라는 별명 뒤에 숨겨진 치밀한 전략가적 면모를 두려워했습니다.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추진부터 각종 복지 정책의 입안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추진력은 진영을 떠나 '국가 운영의 그립(grip)'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례로 회자됩니다. 나경원 의원의 언급은 바로 이 지점, 즉 자신이 믿는 정치적 신념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해내기 위해 평생을 바친 '적(敵)의 장수'에 대한 예우인 셈입니다. 2026년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팬덤에 휘둘리거나 단기적인 여론전에만 몰두하는 '경량급 정치'가 만연한 상황에서, 호불호를 떠나 굵직한 어젠다를 던지고 돌파해 나갔던 그의 리더십은 보수 정치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서울 쇼크, 그리고 실종된 정치
2026년 1월의 마지막 금요일, 안산 시화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정민수(가명) 대표의 공장은 기계 돌아가는 소리 대신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전면에 내세우며 전격 단행한 관세 폭탄과 그에 따른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변동, 이른바 '서울 쇼크(Seoul Shock)'가 실물 경제를 강타한 지 3주째입니다. 정 대표는 "납품 단가는 그대로인데 원자재 가격이 30% 이상 폭등했다. 버티면 버틸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 라인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의 책상 위에는 밀린 대금 독촉장과 함께, 정치권의 정쟁 소식만이 가득한 조간신문이 놓여 있었습니다.

민생(民生) 현장이 '각자도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지금, 여의도 정치권의 대응은 미온적입니다. 2026년의 대한민국 국회는 '서울 쇼크'라는 미증유의 경제 위기 앞에서도 가시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협력 기구 구성보다는, 서로를 향한 고소·고발과 '프레임 전쟁'에 몰두하며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치 효능감이 역대 최저치로 추락한 배경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황무지 속에서, 나경원 의원이 故 이해찬 전 대표의 빈소를 찾아 건넨 조문은 단순한 예우를 넘어선 묵직한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보수 정당의 중진인 나 의원이 "민주당의 가치에 가장 충실했던 분이자, 진영은 달랐지만 대한민국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거목"이라고 고인을 평가한 것은, 지금의 정치판에서 실종된 '상대방에 대한 인정'을 되살려낸 장면이었습니다. 이는 죽은 자에 대한 의례이자, 살아있는 정치권이 상실한 '정치의 품격'에 대한 뼈아픈 자성으로 읽힙니다.
2026년 1월: 경제위기 인식 지수 vs 정치권 신뢰도 추이
시민사회는 이번 조문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진영 논리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2026년, 정치가 다시 '가능성의 예술'로 복원되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해찬 전 대표에게 보낸 나경원 의원의 경의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여의도는 지금 당장 빈소 밖의 현실, 즉 공장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정민수 대표와 같은 서민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김민석 총리와의 조우, 그리고 남겨진 과제
빈소의 공기는 무거웠지만, 그 무게감이 단순히 고인에 대한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후 4시경, 나경원 의원이 빈소에 들어서자 일순간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조문객을 맞이하던 상주석 근처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서 있었습니다.
김 총리는 지난 2024년 총선 이후 극단으로 치닫던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거국내각'의 일환으로 야당 인사를 전격 발탁했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총리 임명 이후에도 협치는 요원했고, 정쟁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보수 진영의 대표적 '전사'인 나 의원이 야당의 원로인 고인을 찾아 고개를 숙인 것은, 김 총리에게도, 그리고 지켜보던 정계 관계자들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총리가 나 의원의 손을 잡으며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자, 나 의원이 '여야를 떠나 정치 선배에 대한 도리'라고 화답했다"고 전했습니다. 30초 남짓한 짧은 조우였지만,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 사이로 흐른 정적은 지난 2년여간 실종되었던 '정치의 품격'을 환기시켰습니다.
나 의원이 빈소를 나서며 남긴 "정치가 싸움이 아닌, 가치의 경쟁이 되길 바란다"는 말은 공허한 수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얼어붙은 정국을 녹이는 마중물이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김민석 총리와 나경원 의원의 짧은 만남이 보여준 가능성입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달리던 두 기차도, 종착역인 '죽음'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찰나의 멈춤이 생존을 위협받는 2026년 대한민국 정치에 '멈춤의 미학'을, 그리고 '대화의 복원'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국민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