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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 이양법의 역설: '식물국회' 탈피가 불러온 민주주의의 위기

AI News Team
사회권 이양법의 역설: '식물국회' 탈피가 불러온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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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9일 오후 4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고성과 야유가 오가는 풍경은 여전했지만, 그 중심에는 물리적 충돌 대신 정교한 법적 수 싸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거대 야당이 주도한 국회법 개정안, 이른바 '사회권(Presiding Authority) 이양법'이 재석 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가결되는 순간, 소수 여당석에서는 "의회 독재의 완성", "날치기 폭거"라는 격렬한 규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 사태는 제22대 국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온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권 민주주의)'가 임계점을 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쟁점 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여당 소속 국회부의장이 본회의 사회를 거부하는 '의사 진행 보이콧'으로 맞서자, 수적 우위를 점한 야당이 이를 '직무 유기'로 규정하고 우회로를 뚫어버린 것입니다.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이제 부의장이 사회를 거부할 경우, 의장이 지명하는 다른 의원이 즉시 의사봉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여당이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지연 전술이었던 '사회권 거부'가 무력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식물국회' 트라우마와 효율성의 명분

이번 개정의 표면적 명분은 명확합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동물 국회'의 폭력을 막겠다며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 국회'를 낳았다는 자조는 지난 10여 년간 여의도를 지배해 온 트라우마였습니다.

현재 국회법은 국회의장 유고 시 부의장이 직무를 대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례적으로 여야가 교대로 의사봉을 잡아왔지만, 의석수 열세에 처한 여당(집권당)은 쟁점 법안의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자당 몫 국회부의장이 사회를 거부하는 방식을 일종의 '합법적 태업'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법적으로 보장된 소수파의 저항 수단이라면, 사회 거부는 아예 의사 진행 자체를 멈춰 세우는 강력한 브레이크였습니다.

그러나 170석 이상의 의석을 점유한 거대 야당 입장에서 이러한 '사회 보이콧'은 용납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습니다. 야당 원내 지도부는 "엄혹한 경제 위기와 민생 현안 앞에서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회 문을 닫아걸 수는 없다"며 이번 개정을 '국회 정상화'의 일환으로 설명합니다. 즉, 의사봉을 쥔 자가 회의를 열지 않으면, 회의를 열 의지가 있는 자에게 의사봉을 쥐어주겠다는 '효율성'의 논리가 작동한 것입니다.

무너진 '시간의 장벽'과 소수당의 위기

문제는 '효율'이라는 명분이 다수결 원칙을 절대화하는 도구로 변질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입니다. 입법 보좌 경력 20년 차인 김철수(가명) 전문위원은 현재의 상황을 "브레이크 없는 스포츠카"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는 사회권 거부가 소수 세력이 다수의 독주를 막아세우는 최후의 '물리적 방어막'이었다"며, "이제 그 방어막이 사라짐으로써 '패스트트랙의 일상화'가 완성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필리버스터가 소수당 의원들의 체력과 시간을 담보로 하는 '고통스러운 저항'이라면, 사회권 무력화는 아예 저항의 무대 자체를 삭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토론과 합의'가 '쪽수와 속도'로 대체됨을 의미합니다. 트럼프 2.0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의회에서조차 다수당의 일방 독주가 낳은 사회적 갈등 비용이 치솟고 있는 2026년의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한국 국회의 이러한 움직임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안전판을 스스로 해체하는 자충수가 될 위험이 큽니다.

상임위원장의 '슈퍼 파워' 부상

이번 개정안의 또 다른 파장은 '사회권'이 상임위원장에게까지 분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장단이 사회를 볼 수 없거나 거부할 경우, 해당 안건을 담당하는 상임위원장이 의사봉을 넘겨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는 상임위원장이라는 직책이 단순한 '법안의 문지기'를 넘어 '본회의의 구원투수'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헌정사 연구자인 박준호(가명) 박사는 "기존의 상임위원장이 상임위 단계에서 법안의 생사를 쥐고 있었다면, 이제는 본회의장이라는 최종 무대에서 여야 대치 국면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슈퍼 파워'를 갖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권한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을 더욱 격화시킬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쟁점 법안이 많은 환경노동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위원장직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단순히 상임위 운영을 넘어 본회의 필리버스터 무력화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되었습니다.

22대 국회 주요 쟁점 법안 필리버스터 및 사회권 갈등 현황 (2024-2026)

우원식 의장의 '유감'과 2026년의 질문

"의장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국회가 멈춰설 수는 없습니다."

2026년 1월 30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법안 통과 직전 남긴 이 발언은 딜레마에 빠진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상징합니다. 헌법학자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합니다. 국회법은 본래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장치인데, 다수가 소수의 지연 전술을 봉쇄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 자체를 변경하는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번 논란의 본질은 '누가 의사봉을 쥐느냐'가 아닙니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사회가 '숙의(Deliberation)'라는 민주주의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시간의 장벽이 사라진 국회는 과연 민의의 전당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다수결이라는 버튼만 존재하는 '입법 자판기'로 전락할 것인가. 무너진 장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소통의 광장이 아닌, 벼랑 끝에 선 소수당의 위태로운 그림자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