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의 유령: 알고리즘은 어떻게 '죽은 뉴스'를 2026년의 위기로 만들었나

혼란의 24시간: 과거가 현재를 덮치다
2026년 1월 24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 여의도 금융권 종사자인 박지훈 씨(34, 가명)는 출근길 인파 속에서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새로고침 했습니다. 글로벌 뉴스 큐레이션 앱과 소셜 미디어 피드 상단에 붉은색 '속보(Breaking)' 태그가 달린 뉴스가 동시다발적으로 떴습니다. "오클라호마 주지사, 보안관실 스캔들에 사임 요구 직면." 첨부된 오디오 파일에서는 기자를 살해하겠다는 섬뜩한 대화 내용이 흘러나왔고, 게시물 아래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 지방 권력의 견제 장치가 붕괴하고 있다"는 유력 인플루언서의 코멘트가 달려 있었습니다.
박 씨는 즉시 사내 리스크 관리 팀 단체 대화방에 해당 링크를 공유했습니다. "미국 내륙 정치 불안정 리스크, 금일 환율 변동성 체크 필요할 듯합니다." 코스피 개장을 앞둔 시점, 미국발 정치 리스크는 언제나 민감한 재료입니다. 해당 뉴스는 삽시간에 국내 주요 투자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채널로 퍼져나갔고, 댓글창은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치안 부재를 성토하는 목소리로 도배되었습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가 공권력의 남용을 부추겼다는 해석까지 덧붙여지며 공포는 확신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이 '속보'의 생명력은 불과 3시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점심시간 무렵, 미국의 팩트체크 계정과 국내의 일부 발 빠른 네티즌들이 해당 사건의 '시차'를 지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공유된 녹취록은 2026년의 사건이 아니라, 정확히 3년 전인 2023년 4월 오클라호마주 맥커튼 카운티(McCurtain County)에서 발생한 보안관들의 기자 살해 협박 사건이었습니다. 케빈 스티트(Kevin Stitt) 주지사가 사임을 요구했던 것 역시 당시의 대응이었습니다. 이미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과거의 사실'이, 2026년 1월이라는 시점에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마치 '오늘의 위기'인 양 둔갑해 귀환한 것입니다.
대학원생 이수진 씨(29, 가명)는 "타임라인에 뜬 뉴스를 볼 때마다 일일이 기사 작성일을 검색해서 검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플랫폼이 '지금 뜨는 트렌드'라며 메인에 띄워줬고, 수천 명이 실시간으로 분노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오늘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가짜 뉴스의 확성기 노릇을 한 셈이라 불쾌합니다." 이 씨의 경험은 2026년 현재 대다수 뉴스 소비자가 겪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맥락(Context)'과 '날짜(Timestamp)'는 소거되고, 오직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Sensation)'만이 정제되어 소비됩니다.
좀비 뉴스: 죽지 않는 자극의 재상품화
전문가들은 이번 해프닝을 단순한 '오보 소동'이 아닌 '좀비 뉴스(Zombie News)' 현상의 전형으로 진단합니다. 좀비 뉴스란 이미 시의성을 상실해 뉴스 가치가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분노나 공포를 자극하는 특정 요소 때문에 알고리즘에 의해 되살아나 현재의 타임라인을 배회하는 정보를 뜻합니다. 특히 트럼프 2기라는 정치적 격변기는 과거의 자극적인 소재들이 '현재성'을 획득하기에 최적의 숙주가 되었습니다. 대중은 현재의 불안을 확증해 줄 근거를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그 욕망에 정확히 부합하는 3년 전의 유령을 소환해 낸 것입니다.
디지털 타임라인의 시계바늘을 잠시 2023년 4월로 되돌려보겠습니다. 모든 '좀비 뉴스'는 과거의 명확한 실체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오클라호마주 동남부의 작은 지역, 맥커튼 카운티를 뒤흔들었던 스캔들의 발단은 지역 신문사 《가제트 뉴스(Gazette-News)》의 기자 브루스 윌링햄이 회의실에 남겨둔 녹음기였습니다. 이 녹음기에는 보안관 케빈 클라디, 위원 마크 제닝스 등 지역 유지들이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제닝스는 기자를 살해해 "머드 크릭에 묻어버리자"고 제안했고, 흑인을 "채찍질하고 목 매달 수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당시의 인권 보호 법안들을 비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팩트입니다.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언론인에 대한 살해 협박이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내 '오클라호마 스캔들' 언급량 추이 (2023-2026)
중요한 것은 그 직후의 전개입니다. 2026년 현재 소셜 미디어 피드를 장악한 '분노의 클립'들에서 거세된 맥락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2023년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공화당 소속인 케빈 스티트 오클라호마 주지사는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스티트 주지사는 "오클라호마에 혐오가 설 자리는 없다"며 연루된 모든 관료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주 수사국(OSBI)에 전면적인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크 제닝스 위원은 사임했고, 보안관실은 거센 여론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숏폼 비디오 플랫폼을 떠도는 이 사건은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2023년'이라는 타임스탬프를 교묘히 가리거나, 사용자가 이를 간과하도록 유도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이런 일이 또 발생했다"는 식의 댓글은 팩트와 시점이 뒤엉킨 채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촉매제가 됩니다. 사건은 해결되었고, 당사자는 처벌받았으며,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졌음에도 자극적인 오디오 파일은 디지털 공간을 떠돌며 끝없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맥락의 붕괴와 사회적 비용
서울 광화문의 한 무역 회사에서 근무하는 박준영 씨(34, 가명)의 사례는 이러한 '맥락 붕괴(Context Collapse)'가 개인의 실수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2026년 현재, 주요 소셜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게시물의 '작성 시점(Recency)'보다 '참여도(Engagement)'에 압도적인 가중치를 둡니다. 좋아요, 리트윗, 공유, 그리고 댓글이 달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해당 콘텐츠는 타임라인의 상단으로 끌어올려집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생성된 날짜라는 시간적 맥락은 거세됩니다. 알고리즘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언제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이것이 지금 당장 당신의 분노 버튼을 누를 수 있는가'입니다.
이러한 시간의 평탄화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강사인 최수진 씨(29, 가명)는 "학생들이 3년 전 뉴스를 가져와 현재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말합니다. 날짜를 확인하라고 하면 '그게 왜 중요하냐, 본질은 여전히 똑같지 않냐'고 반문한다는 것입니다. 대중은 팩트(Fact)의 시의성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내러티브(Narrative)의 정당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이 '좀비 뉴스'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행정력은 이미 해결된 사건에 대한 빗발치는 민원을 처리하느라 낭비되고, 사회적 신뢰 자본은 엉뚱한 곳에서 갉아먹힙니다. 우리가 2023년의 유령과 싸우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동안, 정작 2026년 현재 우리의 삶을 옥죄어오는 실질적인 위협들은 관심의 사각지대로 밀려납니다.
현재 트럼프 2.0 행정부의 그린란드 매입 추진이 초래한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내의 균열이나,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한파로 인한 인프라 동결 사태는 당장 우리의 수출 경제와 에너지 안보에 직결되는 시급한 현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하고 골치 아픈 '진짜 뉴스'들은 명확한 악인과 피해자가 설정된, 그래서 손쉽게 분노를 소비할 수 있는 '좀비 뉴스'의 자극성에 밀려 타임라인 저 아래로 침전합니다.
진실의 유효기간을 확인하라
우리는 지금 '영원한 현재(Eternal Now)'를 살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세계에서는 3년 전의 분노도, 10년 전의 실언도 모두 '오늘'의 이슈로 둔갑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진실이 놓여 있어야 할 올바른 시간과 맥락일지도 모릅니다. 클릭 한 번으로 과거를 현재로 소환할 수 있는 시대, 유령을 불러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플랫폼의 탐욕일까요, 아니면 자극에 중독된 우리의 엄지손가락일까요.
따라서 2026년의 디지털 문해력은 '가짜 뉴스(Fake News)'를 판별하는 단계를 넘어, '좀비 뉴스(Zombie News)'의 시점을 확인하는 '시계열적 리터러시'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정보가 사실인가를 묻는 질문("Is it true?")만큼이나, 이 정보가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 질문("Is it still relevant?")이 중요해진 시점입니다. 우리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지 않기 위해 팩의 날짜를 꼼꼼히 확인합니다. 그런데 왜 정신으로 섭취하는 정보의 유통기한에는 그토록 관대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