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ALK.
Policy & Regulation

특금법 개정안의 칼날: 가상자산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시장 재편

AI News Team
특금법 개정안의 칼날: 가상자산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시장 재편
Aa

제도권 진입의 마지막 관문, 대주주 적격성 심사

2026년 1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을 통과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 던져진 가장 무거운 질문이자, 제도권 안착을 위한 마지막 진통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명확하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수리 과정에서 대주주의 범죄 경력을 조회하고 심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자금세탁을 방지하겠다는 기존의 소극적 관리 감독을 넘어, 가상자산 거래소를 실질적인 '금융 회사'로 대우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그동안 가상자산 업계는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지배구조의 투명성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설립 초기부터 대주주의 재무 건전성과 도덕성을 엄격하게 검증받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가 지난 공청회에서 "고객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주체가 조직폭력배나 금융 범죄자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금융의 기본 상식"이라고 지적했듯, 이번 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도 전통 금융권과 동일한 수준의 '주인 자격'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대주주가 금융 관련 법령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사업자 신고가 불수리되거나 말소될 수 있는 강력한 퇴출 기전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중소형 거래소에서 준법감시 업무를 맡고 있는 이준호(가명) 씨는 "트럼프 2.0 행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와 달리 한국은 오히려 규제의 문턱을 높이고 있어 사업 확장이 위축될까 우려된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오너 리스크'로 인한 코인 상장폐지나 출금 중단 사태를 막을 수 있어 시장 신뢰 회복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과거 일부 거래소 실소유주의 배임·횡령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해당 거래소 이용자들이 겪어야 했던 불안과 금전적 피해는, 투명한 지배구조가 왜 소비자 보호의 첫걸음인지를 증명하는 뼈아픈 사례로 남아 있다.

'임원'을 넘어 '오너'까지, 높아진 검증의 벽

지금까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는 거래소라는 '무대' 위에 올라선 경영진, 즉 등기 임원들에게 집중되어 왔다. 대표이사가 금융 관련 법령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었는지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번 특금법 개정안은 이제 무대 뒤편의 '연출가', 즉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대주주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는 가상자산 사업자를 더 이상 단순한 '통신판매업자' 출신의 IT 기업이 아닌, 은행이나 증권사와 같은 '제도권 금융 회사'로 대우하겠다는 정부의 선전포고로 해석된다.

금융위원회가 이번 개정안을 통해 도입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기존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은행이 받던 규제와 맥을 같이한다. 핵심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최대 주주가 최근 5년 이내에 금융 관련 법령, 조세범 처벌법, 혹은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하여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금융당국은 해당 대주주에게 의결권 제한 명령을 내리거나, 최악의 경우 사업자 신고 수리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는 그동안 가상자산 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온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대한 수술 칼이다. 겉으로는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고 뒤에서는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나 차명 주식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법적 책임은 회피해 온 이른바 '그림자 오너'들의 설 자리를 없애겠다는 의도다.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 전문 로펌 자문역 박성진(가명) 변호사는 "단순히 전과자를 걸러내는 수준을 넘어선 조치"라고 평가했다. 박 변호사는 "과거 일부 중소형 거래소에서 대주주가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에도 경영권 방어에 몰두하느라 이용자 보호 시스템이 마비되었던 사례들이 있었다"며, "이번 법안은 자본의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업자는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금융 당국의 '최후 통첩'과 같다"고 분석했다.

8월의 데드라인, 생존을 위한 카운트다운

오는 8월 시행을 앞둔 특금법 개정안은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다. 이것은 가상자산 사업자(VASP)들에게 "IT 기업으로 남을 것인가, 제도권 금융 회사로 거듭날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이자, 그 자격을 증명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경고다.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 업계 내부에서는 이미 생존을 위한 조용한, 그러나 치열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공포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칼날이 어디까지 파고들 것인가에 있다. 중견 가상자산 거래소 준법감시 총괄 정민수(가명) 실장은 "단순히 대표이사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지분 구조 뒤에 숨어 있던 실질적 지배주주, 즉 '오너'의 과거 이력까지 샅샅이 소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부 주주들은 심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지분 매각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토로했다.

연도별 가상자산 사업자 규제 준수 요구 지수 (출처: 금융위원회 백서 및 시장 분석 자료)

금융 당국이 제시한 8월이라는 시한은 가상자산 시장의 인수합병(M&A) 시계를 앞당기고 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할 자신이 없는 기존 오너들이 경영권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제도권 진입을 노리는 기존 금융사들이나 대형 IT 기업들이 잠재적 매수자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이는 2026년 현재 미국 트럼프 2.0 행정부가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완화와 산업 육성을 천명하며 글로벌 자금의 유동성을 키우는 것과는 대조적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한국 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투명성을 갖추기 위한 필수적인 진통 과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투명성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 머물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장 비싼 임대료가 되었다. 자유와 익명을 기반으로 태동한 가상자산이 국가의 가장 강력한 도덕적 검열 안으로 들어온 지금, 시장은 통제된 안전과 불안한 자유 중 무엇을 더 갈망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