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ALK.
Economy

트럼프 2.0 관세 유예: '해결책'이라는 이름의 최후통첩

AI News Team
트럼프 2.0 관세 유예: '해결책'이라는 이름의 최후통첩
Aa

폭풍의 눈: 시장의 안도 속에 숨겨진 칼날

서울 여의도 증권가 객장, 붉은색 상승 화살표가 전광판을 뒤덮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7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한 25% 관세 부과 행정명령 서명을 앞두고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working on a solution)"고 언급한 직후의 풍경입니다. 코스피는 즉각 반등했고, 1,400원 후반대를 위협하던 원·달러 환율은 일시적으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안도는 트럼프 2.0 행정부의 협상 전술을 간과한 착시 현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워싱턴의 기류에 정통한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발언을 '관용'이 아닌,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조준 정렬' 단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해결책"이라는 단어는 외교적 수사가 아닌 철저한 거래적 언어입니다.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나온 그의 발언을 텍스트 그대로 분석해보면, 관세 철회가 아닌 '조건부 유예'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1기 행정부 시절, 철강 관세 면제를 레버리지로 한미 FTA 개정을 압박했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의 2026년형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당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 타깃은 한국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 즉 국회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 국회에 계류 중인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관련 법안들과 방위비 분담금 비준 동의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멈춰 세웠습니다. 이는 한국 정치권에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 것입니다. 소위 '서울 쇼크(Seoul Shock)'로 명명된 지난주의 금융 시장 발작은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백악관은 한국이 스스로 지갑을 열고 법안을 통과시킬 시간을 벌어준 것이지, 청구서를 찢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실물 경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유예된 공포'가 수치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에서 해외 영업을 총괄하는 정진우 본부장(가명)은 "관세 유예 소식에도 불구하고 미국 바이어들로부터의 신규 발주가 멈췄다"고 토로합니다. 그는 "미국 측 파트너들은 관세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장기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지금의 환율 안정세는 폭풍 전의 고요처럼 느껴져 오히려 더 불안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은 악재보다 더 나쁜 독재입니다. 관세가 부과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과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이미 투자는 위축되고 고용은 얼어붙고 있습니다.

트럼프 발언 직후 KOSPI 및 환율 변동성 (2026.01.27-30)

데이터는 시장의 안도감이 얼마나 얇은 얼음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8일 급반등했던 지수는 불과 이틀 만에 다시 하락세로 전환하며 경계 매물이 출회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트럼프의 발언을 '상황 종료'가 아닌 '추가 협상을 위한 시간 벌기'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공은 다시 여의도로 넘어왔습니다. 이번 유예 기간 내에 한국 국회가 트럼프 행정부가 만족할 만한 입법적 성과나 파격적인 타협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다음에 찾아올 '서울 쇼크'는 예고편이 아닌 본편이 될 것입니다. 그때 청구될 비용은 25%라는 숫자에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5% 관세라는 인질: 왜 하필 '투자 특별법'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언급한 "한국을 위한 해결책(solution)"이라는 단어는 서울의 금융가와 여의도 정가에 안도감을 주었을지 모르나, 워싱턴의 기류를 아는 통상 전문가들에게는 섬뜩한 최후통첩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트럼프 2.0 행정부의 화법에서 '해결책'은 상호 합의가 아니라, 상대방이 수행해야 할 '숙제'의 완수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숙제의 정답지는 명확합니다. 바로 한국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이른바 '대미 투자 촉진 및 규제 완화 특별법(가칭)', 즉 미국 기업들이 한국 내에서 활동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라는 노골적인 요구입니다.

단순히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라는 과거의 압박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2026년의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미국에 물건을 파는 것을 막는 것보다, 미국 자본이 한국 시장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인프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지난 수년간 끈질기게 제기해 온 '한국의 갈라파고스 규제' 철폐 요구가 트럼프라는 강력한 스피커를 만나 '관세 25%'라는 무기로 형상화된 것입니다. 특히 플랫폼 독과점 규제 완화와 데이터 해외 이전에 관한 조항들이 이 '특별법'의 핵심 쟁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한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관세 폭탄이라는 공포 앞에서 '친기업적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국회의 문턱을 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주요국 대미 로비 자금 지출 현황 (2024-2025)

실제로 김철민 씨(가명)와 같은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사 대표들은 이러한 흐름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 우리 같은 토종 스타트업은 생태계에서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관세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국내 산업의 보호막을 걷어내는 것이 과연 국익인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습니다. 그의 우려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투자 특별법'은 단순한 시장 개방을 넘어 한국 경제의 법적, 제도적 시스템을 미국 표준(US Standard)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인질극'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을 통해 상대방이 가장 약한 고리를 정확히 타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와 국회가 관세 면제를 위해 급하게 입법 처리를 서두른다면, 이는 트럼프에게 "한국은 위협하면 법도 바꾼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유예 조치는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한국의 입법 속도를 강제하기 위한 전술적 휴지기(Tactical Pause)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지금 냉정하게 자문해야 합니다. 25% 관세라는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미래의 산업 주권이라는 둑을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서울 쇼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잠시 멈춤 버튼이 눌려졌을 뿐이며, 그 대가로 날아올 다음 청구서는 화폐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 시스템의 훼손일지도 모릅니다.

워싱턴의 시계는 여의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워싱턴의 펜 끝은 거침이 없습니다. 2026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새로운 무역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그 펜을 내려놓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초였습니다. 반면, 그 3초가 만들어낸 경제적 파장을 수습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여의도 국회의 시계는 멈춰 서 있습니다. 행정부의 속도전(Executive Orders)으로 밀어붙이는 미국과, 입법 절차의 늪에 빠져 있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간입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북미 수출용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의 수출입 담당자 박민성 부장(가명)의 책상에는 아직도 1월 초 '서울 쇼크' 당시 작성했던 비상 감산 계획안이 놓여 있습니다. "관세 유예 소식에 일단 공장 라인은 다시 돌리고 있지만, 마치 시한폭탄 위에서 작업하는 기분입니다. 미국 측 파트너사는 2월 말까지 한국 쪽에서 확실한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공급망을 멕시코나 베트남으로 돌리겠다고 통보해왔습니다." 박 부장의 증언은 현재의 평온함이 얼마나 얇은 살얼음판 위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026년 1월 '서울 쇼크' 당시 원-달러 환율 변동 추이 (자료: 한국은행)

경제 전문가들은 다가오는 2월 임시국회가 한국 경제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3월로 예정된 미국의 '무역 확장법 232조' 재검토 시한 전까지 입법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유예되었던 관세 폭탄은 이자까지 쳐서 돌아올 것이 자명합니다. 워싱턴의 시계는 냉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다림'이란 협상의 기술이 아니라 응징을 위한 명분 쌓기일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존 전략: '전략적 모호성'의 종언과 제도적 일치

여의도와 재계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유예 발언을 두고 '급한 불은 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이는 2026년의 지정학적 냉혹함을 오판한 위험한 낙관론입니다. 지난 30년간 한국 외교와 경제를 지탱해 온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편리한 이분법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트럼프 2.0 행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무역 수지 개선이나 가스 구매 확대 수준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 경제 시스템이 미국 주도의 공급망 블록에 완전히,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편입될 것을 요구하는 '제도적 충성 서약'을 내밀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기류는 냉정하다 못해 적대적입니다. 미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과 워싱턴 싱크탱크들이 사석에서 흘리는 불만은 한국의 입법 속도가 미국의 행정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가상자산 자금세탁 방지 강화, 반도체 공급망 투명화, 대중국 기술 유출 처벌 강화 등 미국이 경제 안보와 직결시킨 핵심 사안들이 한국 국회 문턱에서 정쟁으로 표류하는 동안, 백악관은 이를 '동맹의 이탈' 징후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은 '전략적 모호성'의 공식적인 폐기 선언뿐입니다. 미·중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끝났습니다. 줄은 이미 끊어졌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치 보기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경제 생태계 내에서 한국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제도적 일치'입니다. 유예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며, 멈춰 있는 국회 시계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면 '서울 쇼크'는 예고편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