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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 원의 저녁 식사, 그 후 2년: 영국 노동당 로비 스캔들과 민주주의의 비용

AI News Team
5천만 원의 저녁 식사, 그 후 2년: 영국 노동당 로비 스캔들과 민주주의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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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정치 심장부, 웨스트민스터 주변의 로비스트들은 종종 "접근권은 곧 화폐"라고 말합니다. 2026년 1월 현재, 트럼프 2.0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2년 전 영국 정가를 강타했던 하나의 사건은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접근권'이 어떻게 거래되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바로 노동당 출신 로비 회사 '아덴 전략(Arden Strategies)'이 2024년 가을, 투자 서밋을 앞두고 내놓았던 스폰서십 제안서 사건입니다.

당시 아덴 전략이 기업 고객들에게 보낸 이메일은 그 은밀한 거래의 가격표를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2024년 10월 런던에서 열린 대규모 투자 서밋을 앞두고, 리즈 켄달(Liz Kendall) 당시 노동연금부 장관과의 비공개 만찬 행사가 포함된 '골드 패키지'의 가격은 3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5,3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이 5천만 원짜리 청구서가 약속했던 대가는 명확했습니다. 제안서에는 "장관과의 개인적인 사진 촬영 기회"와 "칵테일 리셉션 및 3코스 만찬 동석"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노동연금부는 연간 수백조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핵심 부처이기에, 장관과의 독대 기회는 기업들에게 '천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이 3만 파운드라는 정찰제로 매겨졌던 그 사건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로비 산업의 구조적 위험성을 경고하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서투른 표현'이라는 변명과 로비의 언어학

사건 당시 아덴 전략 측은 파문이 일자 즉각 "서투른 표현(clumsy phrasing)이었다"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장관과의 만남 자체가 상품이 아니라, 행사의 전체적인 후원 비용일 뿐이라는 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비 업계에서 이러한 '표현의 실수'는 단순한 작문 오류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수천만 원이 오가는 제안서는 통상 변호사와 컴플라이언스 팀의 검토를 거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던 '접근권 판매'의 실체가 실수로 활자화된 '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에 가까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대기업 대관(GR)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2026년 현재의 시점에서 이 사건을 회고하며 "여전히 상상하기 힘든 대담함"이라고 평가합니다. 한국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체제 하에서 공직자와의 식사는 3만 원으로 엄격히 제한됩니다. 그는 "한국에서는 3만 원짜리 식사 한 끼도 직무 연관성을 따지며 살얼음판을 걷는데, 5천만 원을 내고 장관과 독대한다는 2년 전 영국의 사례는 '로비'를 넘어선 '매관매직'의 경계선에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정치적 접근 비용 인식 비교 (서울 vs 런던 기준)

웨스트민스터의 회전문: 과거의 인맥, 현재의 자산

이번 스캔들의 중심에 섰던 '아덴 전략'의 짐 머피(Jim Murphy)는 전직 노동당 스코틀랜드 대표이자 장관직을 역임한 거물급 인사였습니다. 노동당이 14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던 2024년 당시, 그의 '과거 인맥'은 곧장 '현재의 자산'으로 치환되었습니다. 아덴 전략이 기업 고객들에게 제안했던 것은 단순한 정책 자문이 아니라, 레이첼 리브스(Rachel Reeves) 재무장관이나 조나단 레이놀즈(Jonathan Reynolds) 기업부 장관 같은 핵심 인사들과의 '접근권(Access)'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공정(Fairness)'이라는 가치에 민감한 2026년의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김영란법 시행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 한국은 물리적인 금품 수수는 상당 부분 근절했으나, 학연과 지연을 통한 '보이지 않는 접근권'의 불평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영국의 사례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합법화된 로비가 자칫 '유전접근, 무전소외'의 정치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스타머 정부의 딜레마와 2026년의 교훈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집권 초기 '신뢰의 회복'을 내걸었으나, 2024년의 이 사건은 노동당 정부가 추구해 온 '비즈니스 친화적 노선'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습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 투자가 절실했던 정부가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금융가들과 IT 거물들을 끌어안는 과정에서, 투명한 정책 협의가 아닌 '고액의 입장료'가 필요한 비공개 만찬장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2026년 현재, 트럼프 2.0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글로벌 스탠다드가 급격히 규제 완화와 비즈니스 친화적 기조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년 전 영국의 스캔들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효율성을 앞세운 자본의 논리가 민주적 절차의 투명성을 압도할 때, 시민의 목소리는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덴 전략의 '서투른 표현' 뒤에 숨겨져 있던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돈의 정치학'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