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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별세와 미완의 단죄: 12·3 내란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

AI News Team
이해찬 별세와 미완의 단죄: 12·3 내란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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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거목이 잠든 자리, 다시 깨어나는 기억

2026년 1월의 마지막 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는 때 아닌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쳤습니다. 하지만 그 추위보다 더 시린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자 전략가였던 이해찬 전 대표를 떠나보낸 상실감일 것입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단순한 추모의 공간을 넘어, 지난겨울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12·3 내란'의 충격과 여전히 아물지 않은 헌정 파괴의 상처를 되새기는 거대한 토론장이 되었습니다.

조문 행렬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동지들부터, 촛불 세대, 그리고 2026년의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청년들까지,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국화 한 송이를 놓기 위해 긴 줄을 섰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박준영(가명) 씨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군화발 소리가 다시 들릴 뻔했던 그 아찔한 순간을 겪으며 민주주의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그릇인지 깨달았다"며, "이 전 대표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고 싶어 휴가를 내고 찾아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전 대표의 별세는 김근태 의장이 떠났을 때와는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김근태가 민주주의의 '양심'이자 '따뜻한 불꽃'이었다면, 이해찬은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권력의 비정함에 맞서 현실 정치를 지휘했던 '냉철한 설계자'였습니다. 그의 영정 앞에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힌 이유는, 12·3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헌정 유린 사태를 겪으며 시스템의 붕괴를 목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치권의 반응은 복잡 미묘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조문이 이어졌지만, 그들이 내놓는 메시지의 결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여당 일각에서는 '시대의 마감'을 강조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이야기했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 전 대표가 생전 마지막으로 강조했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에 맞서라"는 유언은, 사실상 12·3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묵직한 호통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집권으로 인한 국제 정세의 격랑 속에서, 한국 내부의 민주적 리더십 부재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워싱턴발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위협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헌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빈소를 지키던 한 원로 정치인은 "지금 우리는 이해찬이라는 거목이 막아주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시기에 들어섰다"며, "남은 자들이 12·3의 진실을 규명하고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고인은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제 공은 산 자들에게 넘어왔습니다. 추모의 열기는 뜨겁지만, 이것이 단순한 회고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광주 5·18 묘역에서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궤적은, 12·3 내란이라는 비극적 변곡점을 지나 새로운 시험대에 섰습니다. 과연 2026년의 대한민국은 '이해찬의 시대'를 넘어,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시스템에 의한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차가운 1월의 바람 속에 흩날리는 조기(弔旗)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김근태와 이해찬, 그리고 '5·18 소년들'의 약속

서울 창동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시작된 인연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뜨거운 심장이 되었습니다. 고(故) 김근태 전 의장이 ‘민주주의의 성자’로서 도덕적 불꽃을 태웠다면, 이해찬 전 대표는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시스템이라는 방벽을 쌓아 올린 ‘설계자’였습니다. 이 두 거목은 1980년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을 공유한 동지였습니다. 이 전 대표의 별세는 단순히 한 원로 정치인의 퇴장이 아니라, 김근태가 꿈꿨던 ‘인간의 존엄’과 이해찬이 구축하려 했던 ‘시스템 정당’이라는 두 축이 2026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 거대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이 전 대표는 생전 사석에서 김 전 의장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맑고 강한 사람"이라며 깊은 경외심을 표하곤 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부터 전두환 신군부의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야만의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과정이었습니다. 1980년대, 고문과 투옥으로 점철된 그들의 청춘은 개인의 영달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공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들은 5·18의 비극을 목격하며 ‘산 자들의 의무’를 뼈에 새겼고, 이는 훗날 민주당 계열 정당이 위기 때마다 돌아가야 할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26년 오늘, 그들이 평생을 바쳐 싸워온 ‘군부 독재의 망령’은 ‘12·3 내란’이라는 기괴한 형태로 되살아나 헌정 질서를 위협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박지훈(가명) 씨는 "12·3 사태를 겪으며 80년대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듯한 공포를 느꼈다"며, "이 전 대표의 부고를 듣고 나니, 과연 우리 사회가 그들이 피 흘려 지켜낸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부끄러움이 앞선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회귀에 대한 공포가 아닙니다. 선출된 권력이 법치와 시스템을 무력화하려 했던 12·3 사태는 이해찬 전 대표가 그토록 강조했던 ‘시스템에 의한 통치’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김근태가 남긴 ‘희망은 힘이 세다’는 유산은 이해찬의 ‘20년 집권론’이라는 현실적 전략과 결합하여 민주 정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의도는 그들이 남긴 유산을 정쟁의 도구로만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되물어야 합니다. 이해찬의 전략은 ‘권력의 영속’이 아니라 ‘개혁의 불가역성’을 위한 것이었으나, 현재의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갇혀 민생(民生)이라는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12·3 사태 이후 사회적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고, ‘상생’보다는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현실은 ‘5·18 소년들’이 꿈꾸던 세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2024년 12월 3일, 멈춰버린 시계와 역사의 법정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췄습니다. 군홧발 소리가 국회 본청의 적막을 깨고 장갑차가 도심을 가로지르던 그날 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김서연(가명) 씨는 TV 뉴스 속보를 보며 1980년 광주의 기억을 강제로 소환해야 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그때가 다시 온 것 같아 손이 떨렸다"며, 2026년 현재까지도 서울 여의도 인근을 지날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고 증언합니다. 이처럼 12·3 비상계엄 사태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국민 개개인의 내면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헌정사의 대재앙'이었습니다.

이해찬 전 대표는 병상에서도 이 사태를 '명백한 내란'으로 규정하며 단죄를 촉구했습니다. 고인은 생전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야 하는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그가 평생을 함께했던 고(故) 김근태 의원의 '민주주의자' 정신과 5·18 민주화운동의 대동세상 철학은 12·3 사태라는 반역적 시도 앞에서 다시금 호출되었습니다. 2025년 국정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계엄사령부가 작성한 이른바 '국회 봉쇄 및 언론 통제 계획'은 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의 매뉴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2026년의 한국 사회는 이 미완의 단죄가 가져온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와 '힘에 의한 질서'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부상하면서, 국내 일각에서도 '효율성'과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헌정 질서의 훼손을 정당화하려는 위험한 시도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정민우(가명) 씨와 같은 청년 세대들은 이를 '공정의 붕괴'로 인식합니다. 정 씨는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권력을 쥔 자들이 헌법을 농단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누가 이 나라의 미래를 믿겠느냐"며 반문합니다. 이는 이해찬이 평생을 바쳐 구축하려 했던 '시스템에 의한 민주주의'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더 절실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2·3 사태 관련 핵심 인물 단죄에 대한 국민 여론 추이 (출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24-2026)

사법부의 시계는 여전히 느리게 가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최종심이 2026년 하반기로 미뤄진 가운데, 이해찬의 별세는 이 역사적 과제를 온전히 '산 자들의 몫'으로 남겼습니다. 5·18 정신의 핵심이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의 자각이라면, 12·3 사태의 단죄는 그 정신이 21세기에도 유효함을 증명하는 실천적 지표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고인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권력의 괴물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길들일 것인지에 대해 실질적인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단죄'의 진정한 의미: 보복이 아닌 기록

이해찬 전 대표가 생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화두, '단죄(斷罪)'라는 두 글자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파문을 던집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적 보복의 서막이라며 날을 세우지만, 고인이 김근태 의장의 영정 앞에서, 그리고 5·18 묘역에서 되뇌었던 단죄의 본질은 칼춤이 아닌 '붓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그가 말한 단죄는 특정인을 향한 사적 복수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파괴한 행위를 역사에 명확히 기록하여 다시는 헌법 유린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정의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의 공방이 뜨거운 가운데,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다릅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박민우(가명) 교사는 최근 수업 시간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낀다고 토로합니다. "아이들이 12·3 사태를 보며 묻습니다. '선생님, 결국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란인가요? 처벌받지 않은 잘못은 잘못이 아닌 것 아닌가요?'라고요. 법적인 처벌이 미진하고 진상 규명이 흐지부지될 때, 교실에서 정의를 가르치는 일은 공허한 메아리가 됩니다." 박 교사의 말처럼, 제대로 된 단죄가 부재한 역사는 다음 세대에게 '힘이 곧 정의'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위험이 큽니다.

역사적으로도 '미완의 단죄'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지연되고 왜곡되면서 우리 사회는 수십 년간 불필요한 이념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고인이 우려했던 지점도 바로 이것입니다. 12·3 내란 시도가 단순히 하나의 해프닝으로 덮인다면, 제2, 제3의 헌정 파괴 시도는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독일이 나치 부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법정에 세우고, 그 기록을 교과서에 낱낱이 남기는 이유는 과거에 갇혀 있기 위함이 아니라 미래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예방주사' 차원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단죄'의 과제는 감정적인 응징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내란에 가담하거나 동조한 세력이 다시는 공직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 마련, 그리고 그 날의 진실을 백서(白書)로 남겨 후대에 전하는 기록의 의무입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사법부의 판단은 그 시작일 뿐입니다. 진정한 단죄는 국민의 기억 속에서 망각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를 불의라고 명명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단단해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2026년의 겨울,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전한가

이해찬 전 대표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026년 1월의 끝자락, 대한민국을 휘감은 공기는 단순히 계절적 추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난 2024년 말 발생했던 '12·3 내란 사태' 이후 1년여가 흘렀지만, 헌정 질서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덧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귀환한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행보와 그에 따른 글로벌 우경화 물결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내부의 균열을 더욱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12·3 사태의 완전한 진상 규명과 단죄가 지연되는 사이, 우리 사회는 법치주의의 권위가 실추되고 진영 간 증오가 일상화되는 '민주주의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국면은 대외적인 환경 변화와 궤를 같이합니다. 트럼프 2.0 행정부의 공격적인 탈규제와 고립주의 정책은 단순히 경제적 여파를 넘어, 보편적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국제 앰네스티가 발표한 '2025 세계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2·3 사태 이후 민주적 권리 지수가 3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으며, 이는 공권력의 집행 과정에서 나타난 초법적 행위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미흡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이해찬이라는 거산(巨山)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그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민주주의의 보루'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한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도 변화 (출처: 2026 민주주의 인식조사)

사회의 양극화는 시민들의 일상마저 잠식하고 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정민우(가명) 씨는 최근 정치적 견해 차이로 오랜 친구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는 "12·3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지만, 정치권은 이를 해결하기보다 정쟁의 도구로만 소비하고 있다"며, "트럼프 시대의 혼란 속에서 우리끼리만이라도 정의의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든다"고 토로했습니다. 정민우 씨의 고백은 거대 담론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민생과 직결된 '공정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2026년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산 자들의 몫, '행동하는 양심'의 부활을 위하여

이해찬 전 대표의 타계는 단순한 자연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정치사에서 '전략적 구심점'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는 김대중의 '행동하는 양심'과 노무현의 '깨어있는 시민'을 현실 정치의 언어로 번역해낸 기획자였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부터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변곡점마다 현장을 지킨 산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눈을 감은 2026년 오늘, 광화문의 촛불은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12·3 내란 사태가 남긴 헌정 질서의 균열은 아직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으며, 책임자 처벌은 지지부진한 법리 논쟁 속에 표류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채널을 돌립니다. 12·3 사태 당시 국회 담장을 넘던 군인들을 보며 느꼈던 그 공포가 아직도 생생한데, 책임자들은 여전히 '법적 절차' 뒤에 숨어 호의호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박민우(가명) 씨의 토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정의의 지체'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박 씨는 2024년 12월의 그 밤, 맹추위 속에서도 국회 앞으로 달려나갔던 수많은 시민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깊은 무력감이 배어 있습니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고물가라는 현실의 파고 속에서, '정의'는 어쩌면 평범한 시민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사치재로 전락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무력감이야말로 고인이 가장 경계했던 적입니다. 이해찬 전 대표는 생전 "역사는 저절로 진보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강조했습니다. 그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되었을 때도, 1988년 5공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을 때도, 늘 '조직된 힘'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가 남긴 '12·3 단죄'의 숙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헌법을 유린하고 총칼로 주권자를 위협했던 세력에게 역사적·사법적 사망 선고를 내리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추모'를 넘어선 '계승'입니다. 김근태 의장이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민주주의의 제단에 자신을 바쳤듯, 이해찬 전 대표 역시 병마와 싸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의 회복'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짐은 온전히 산 자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12·3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하는 것은, 떠난 이들에 대한 예우이자 살아남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트럼프 2.0 시대의 도래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민생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는 2026년입니다. 혹자는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나간 일을 왜 자꾸 들추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밥은 굶어도 살 수 있지만, 법과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안전하게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해찬을 보내며 다시금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하는 이유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은 박제된 구호가 아니라, 지금 당장 광장에서, 투표장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되어야 할 구체적인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