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광기'를 해부하다: 2026년 워싱턴, 그리고 한국의 선택
프롤로그: '광기'의 도시가 된 워싱턴
워싱턴 D.C.의 1월은 춥고, 정치적 공기는 그보다 더 싸늘했다. 지난 화요일, 의사당(Capitol Hill)의 풍경은 입법의 산실이라기보다 촌극의 무대에 가까웠다. 하원 위원회 회의실에서는 예산안 처리를 위한 이성적인 토론 대신, 상대 당 의원의 과거 발언을 꼬투리 잡는 고성이 오갔고, 이 장면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며 '좋아요'와 후원금을 긁어모았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 평론가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탄식했고, 반대편 진영의 전략가인 릭 윌슨(Rick Wilson)이 저서에서 예견했던 그 '광기(Madness)'가 이제는 워싱턴의 일상이 되었다. 그들은 이 도시를 '넛츠빌(Nutsville)', 즉 '미치광이들의 마을'이라 명명했다. 이는 단순한 비하가 아니다. 타협과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문법이 실종되고, 그 자리를 팬덤 정치와 음모론, 그리고 극단적인 당파성이 메워버린 2026년 미국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이러한 '넛츠빌' 현상은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다. 워싱턴 K-스트리트(K-Street)에서 활동하는 한 한국 대기업 대관 담당 임원은 "과거에는 3개월 후의 법안 통과 여부를 예측하고 본사에 보고했지만, 지금은 당장 내일 아침 트럼프 2기 행정부나 의회 강경파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가늠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 기업들이 주력하고 있는 반도체 보조금 관련 조항이 하원 내 소수 강경파의 반란으로 예산안에서 막판에 제외될 뻔했던 사건은 이 불확실성이 실질적인 '비용'임을 증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최근 분석이 지적하듯, 현재 미국의 정치적 마비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 양극화된 미디어 환경, 그리고 제도의 헛점이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적 위기'다. 우리가 알던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조정자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제국의 몰락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이성의 몰락'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미 동맹이라는 배를 타고 이 거친 파도를 함께 넘어야 하는 한국에게, 이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미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통제 불능의 미국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다.
진단: 상식이 무너진 광장의 메커니즘
그렇다면 이 혼란의 기저에는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가? 워싱턴 D.C.의 K 스트리트에서 만난 베테랑 로비스트 제임스 밀러는 최근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한국 배터리 기업 임원들에게 "미국 의회에는 더 이상 '중재자(Broker)'가 없다"는 보고서를 보냈다. 과거에는 공화당의 온건파와 민주당의 중도파가 만나 타협점을 찾던 '스모크 필드 룸(Smoke-filled room)'이 존재했지만, 2026년 현재 그 공간은 양극단의 고성만이 오가는 전장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상대 정당이 국가의 안녕을 위협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양당 지지자 모두에게서 80%를 상회했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로, 미국 사회가 정책 경쟁이 아닌 '생존 투쟁'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광장의 붕괴'는 숫자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가 분석한 제119대 미 의회의 법안 통과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3%대에 머물렀다. 한국의 국회가 '식물 국회'라는 비판을 받을 때조차 상상하기 힘든 마비 상태가 미국의 심장부에서 일상화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착 상태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전략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 법(CHIPS Act)과 같은 거대 담론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힐 수 있는 '정책적 리스크'로 변질되었다. 우리가 알던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서의 미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위 그래프가 보여주듯,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적 거리는 201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히 멀어져 이제는 서로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는 마치 한국의 영호남 갈등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를 연상케 하지만, 그 파급력은 전 지구적이다. 조지타운 대학의 찰스 쿱찬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를 통해 "미국의 중도가 사라진 자리를 '부족주의(Tribalism)'가 채웠다"고 진단했다.
이제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를 넘어, '미국의 시스템이 합의를 도출할 능력이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약속받은 보조금이 차기 공화당 우위 의회에서 예산 삭감의 1순위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트럼프 2기에서 체결한 무역 협정이 민주당 주지사 연합의 소송으로 무력화될 수 있는 것이 2026년 'Nutsville'의 현실이다. 우리는 이제 '한미 동맹'이라는 견고한 상수 대신, '변동성(Volatility)'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전략의 중심에 두어야 할 때다.
케이스 스터디: 마비된 거버넌스의 비용
정치적 양극화가 이념 전쟁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D.C. 의사당 돔 아래에서 벌어지는 고성이 '정치 쇼'에 불과하다고 믿었던 시절은 끝났다. 그 소음이 비즈니스의 현장인 텍사스와 오하이오의 공장 부지에서 '침묵'으로 변할 때, 한국 기업들은 비로소 막대한 청구서를 받아들게 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Nutsville'의 진짜 공포는 혐오 발언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멈춰버린 행정 시스템, 즉 '빈 의자(Empty Chair)'가 야기하는 비용이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2025년 하반기,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이던 한-미 합작 배터리 공장 B사의 '인허가 블랙홀' 사태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환경영향평가(EIA)의 최종 승인은 9월에 완료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승인 도장을 찍어야 할 연방 환경보호청(EPA)의 주요 지역 관리자 임명이 상원의 '문화 전쟁(Culture War)' 인질극에 휘말리며 6개월 넘게 지연되었다. 특정 상원의원이 낙태 관련 연방 지원금 문제를 이유로 EPA를 포함한 수십 명의 행정부 고위직 인준을 일괄 봉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었다. B사 관계자는 "공장 가동이 늦어지는 하루하루가 수십억 원의 이자 비용과 시장 선점 기회 상실로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loomberg Economics)**의 2025년 4분기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의회의 '인준 태업(Confirmation obstruction)'으로 인해 미국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기회비용은 연간 42억 달러에 달했다. 한국 기업들이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라 믿었던 미국 관료제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며 멈춰선 순간이다.
문제는 이것이 예외가 아닌 상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미국 의회의 양극화 지수가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연방 규제의 일관성은 0.7포인트 하락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정치적 리스크 프리미엄'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익숙하게 여겼던 '시스템에 의한 통치'는 이제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한 인질극'으로 대체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예산안 처리의 만성화된 실패다. 2024년 말,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가 반복되면서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의 수출 통제 심사 업무가 일시 마비되었다. 당시 반도체 소재를 미국으로 수출하려던 한국의 중견 화학 기업 K사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받지 못한 채 3주간 부산항에 물건을 묶어둬야 했다. 한국무역협회 워싱턴 지부의 당시 리포트는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부'가 만든 장벽"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흔히 한국 정치를 '다리 없는 짐승'에 비유하곤 하지만, 지금 미국의 거버넌스는 머리와 몸통이 따로 노는 '신경 분리' 상태에 가깝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수석부소장은 최근 포럼에서 "동맹국들이 워싱턴에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를 들 사람이 없는(nobody home) 상황이 가장 큰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Nutsville' 현상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국은 더 이상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아니다. 곳곳이 이가 빠지고 녹슨 기계다. 따라서 한국의 대미 전략은 '미국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시스템의 고장을 가정한 리스크 헷징(Risk Hedging)'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적 마비가 우리 배터리 공장의 전원을 끄고, 수출 컨테이너를 멈춰 세우는 비용을 청구서로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향한 불똥: 동맹은 안녕한가?
미국 내부 시스템의 붕괴는 태평양 건너 한국의 안보와 경제 지형까지 뒤흔들고 있다. 지난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긴급 소집된 국내 주요 배터리 3사 대관 담당 임원들의 회의 테이블 위에는 '워싱턴 리스크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대외비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 잡음'이 아니었다. 조지아주(州)에 수조 원을 쏟아부은 한 기업 관계자는 "예전에는 로비스트를 통해 법안의 통과 여부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너츠빌' 상태인 워싱턴에서는 누구도 내일 아침 대통령의 트윗이나 하원 의장의 돌발 선언을 장담하지 못한다"며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이는 우리가 알던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서의 미국이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달 발표한 '미국 정치 양극화와 통상 정책의 상관관계' 보고서는 미국의 내부 분열 지수가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한국 기업이 직면하는 비관세 장벽의 불확실성이 0.4%포인트씩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즉, 미국 사회가 분열될수록 그 파편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 기업의 재무제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다.
가장 뼈아픈 현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최전선이다. 바이든 행정부 초기, '보조금 잭팟'을 기대하며 미국행 러시를 이뤘던 한국의 2차 전지 기업들은 이제 미국 정치권의 '인질'이 된 모양새다. 미시간주에서 공장 가동을 앞둔 한 한국 기업의 현지 법인장은 "공화당 강경파가 연방 예산안을 볼모로 잡고 IRA 보조금 삭감을 요구할 때마다, 본사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직원들은 해고 공포에 떤다"고 토로했다. 이는 70년 혈맹(血盟)이라 굳게 믿었던 한미 관계가, 미국의 내부 사정에 따라 언제든 청구서로 돌변할 수 있는 '거래 관계'로 변질되었음을 시사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이 안보 영역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반도 전문가는 최근 세미나에서 "한국은 미국이 언제나 합리적인 국익 판단에 따라 한반도 방위를 약속할 것이라고 믿지만, 현재의 '너츠빌' 현상은 고립주의와 포퓰리즘이 결합해 언제든 주한미군 이슈를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난달 미 하원 청문회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 "한국이 더 내지 않으면 미네소타의 농부들이 왜 그들을 지켜줘야 하는가?"라는 노골적인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시나리오: '각자도생'의 시대를 준비하라
"워싱턴의 기침에 서울은 독감을 앓는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20년 넘게 회자되던 이 격언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2026년 1월, SK온의 미국 조지아 공장 증설 계획을 검토하던 전략기획팀의 박 모 부장은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 미국 의회 내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축소 논의가 이른바 ‘Nutsville’로 불리는 워싱턴의 극단적 정쟁 속에 휩쓸리면서, 이미 집행된 수천억 원의 투자금이 허공에 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70년 된 '혈맹'의 우산은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나, 그 우산살은 녹슬고 구멍이 뚫렸다. 국립외교원의 최근 분석이 지적하듯, 미국의 외교 정책이 민주, 공화 양당의 극단적 대립으로 인해 4년마다, 아니 중간선거를 감안하면 2년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미 '올인(All-in)' 전략은 더 이상 전략이 아닌 도박에 가깝다.
경제적 해법은 명확하다.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을 넘어 이제는 '아메리카 플러스 알파(America Plus Alpha)'로 나아가야 한다. 삼성전자가 최근 평택 캠퍼스의 차세대 반도체 물량 일부를 유럽연합(EU) 고객사 전용으로 전환하고,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ASEAN) 시장 내 전기차 점유율 확대에 사활을 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정 박사는 "미국 시장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리스크를 분산하는 보험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외교 안보 라인 역시 '가치 외교'라는 명분에 갇혀 실리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과거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무임승차하는 것만으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아산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이를 '격자형 안보 구조'라고 명명하며, 한미 동맹이라는 굵은 기둥 하나에만 의존하던 집을 호주, 캐나다 등 중견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여러 개의 보조 기둥으로 받치는 구조로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결국 '각자도생'의 시대는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전략적 자율성'을 요구한다. 더 이상 워싱턴의 텔레프롬프트만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없다. 지금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이 항로를 잃고 표류할 때, 우리만의 구명정을 넘어 독자적인 항해술을 갖춘 구축함을 띄워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바로 'Nutsville'이라는 불확실성의 태풍 속에서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고 생존, 아니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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