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만 비대한 식물 위원회: 3기 진실화해위와 '입법적 공동화'의 역설

2026년 2월,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닻을 올렸다. 국회는 지난해 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며 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하고 조사 대상 범위를 2001년 11월까지 대폭 확대하는 등 외형적인 권한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적 결단은 정작 현장에서 손발이 되어줄 조사관 인력 증원 예산이 기획재정부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치명적인 모순에 직면했다.
법안은 위원회의 조사 권한과 위원 정수(9명→13명)를 늘리며 외형을 키웠지만, 실질적인 조사 실행 동력인 실무 인력은 동결된 채 방치된 것이다. 여의도와 서초동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거인의 옷을 입은 허수아비'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개문발차(開門發車)의 위기: 상체만 비대한 기형적 구조
이러한 '상체 비만, 하체 부실'의 기형적인 구조는 이미 예견된 행정 마비로 이어지고 있다. 진실화해위가 발간한 2025년 연차보고서와 행정안전부 제출 자료를 분석해보면, 2기 위원회 출범 이후 진실 규명 신청 건수는 1기 대비 2배 이상 폭증했으나 조사 인력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그 결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조사가 착수조차 되지 못하고 '조사 중지' 상태로 분류된 사건만 2025년 말 기준 2,111건에 달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을 넘어, 고령의 피해 생존자들에게는 사실상의 '권리 구제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 1기 위원회 대비 조사관 1인당 담당 사건 수가 200% 이상 급증한 현실에서, 심층적인 대면 조사나 현장 검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미션 임파서블'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사 청산의 권위자인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융합자율학부 명예교수(전 진실화해위 상임위원)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조직의 머리만 확장하고 다리인 조사관을 보강하지 않는다면 병목 현상만 두터워질 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현장 조사를 위한 실질적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3기 위원회는 자칫 화려한 간판만 내건 '관료주의적 껍데기(bureaucratic shell)'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히 예산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약속을 법적으로는 선언하면서도 행정적으로는 무력화시키는 '입법적 공동화(hollowing out)' 현상임을 시사한다. 조사관들이 기록의 산더미에 파묻혀 현장으로 나가지 못할 때, 진실은 서류철 속에서 다시 한번 침묵을 강요받게 된다.
'강제 수사권'의 역설: 실탄 없는 총
3기 위원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그동안 조사관들이 겪었던 '문전박대'의 설움을 씻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압수수색 영장 의뢰권'과 '동행 명령권'의 신설이다. 법적으로만 보면, 과거사 조사의 칼날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장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날카로운 칼이 주어졌지만, 정작 그 칼을 휘두를 '손발'인 실무 조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영장은 단순히 의뢰권을 가진다고 자동 발부되는 것이 아니다. 치밀한 사전 기초 조사를 통해 혐의를 입증할 소명 자료가 확보되어야만 법원을 설득할 수 있다. 지금처럼 조사관들이 산더미 같은 서류 처리에 급급해 현장에 나갈 시간조차 없는 상황에서, 영장 의뢰권은 '실탄 없는 총'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과중한 입증 책임만 떠안게 된 실무진의 피로도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3기 위원회가 마주한 딜레마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과거사 청산의 관료화'다. 인력 증원 없는 권한 확대는 정부와 국회가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알리바이일 뿐, 실질적인 진실 규명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피해자 유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법전 속에 잠든 강력한 권한이 아니라, 억울한 사연을 듣기 위해 전국을 누빌 조사관 한 명의 땀방울일지도 모른다.
데자뷔 2020: 반복되는 '인력난'의 정치학
2026년 2월, 여의도의 시계는 다시 2020년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당시로 되돌아간 듯한 기시감을 준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착오라기보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히 '관리'하려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트럼프 2.0 시대의 도래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작은 정부'와 효율성 담론은 국내 예산 편성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부문 효율화'를 이유로 진실화해위의 조사관 증원 요청을 전액 삭감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다. 2기 위원회에서 근무했던 전직 조사관 이 모 씨는 당시 상황을 '모래주머니를 차고 마라톤을 뛰는 심정'이었다고 회고한다. 이 씨는 "사건 하나를 제대로 파헤치기 위해서는 당시 수사 기록 수천 페이지를 검토하고, 고령의 참고인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며, "하지만 책상 위에는 처리해야 할 사건이 수백 건씩 쌓여 있어, 결국 기계적으로 서류만 넘기는 '서류상의 진실 규명'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진실의 유통기한과 침묵 당하는 피해자들
이러한 행정적 지체는 피해자들에게 있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닌 '제2의 가해'나 다름없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 생존자인 박철수 씨(가명, 72세)의 사례는 이 참담한 현실을 대변한다. 박 씨는 2024년 2기 위원회에 피해 사실을 접수했으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사 대기 중"이라는 통지서만 받아보고 있다.
그는 "국가가 진실을 밝혀주겠다고 해서 40년 만에 입을 열었는데, 이제는 내 수명이 다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조사의 지연은 곧 '진실의 영구 미제'를 의미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핵심 증언자들은 세상을 떠나고, 기록은 풍화되며, 국가가 약속했던 명예 회복의 기회는 생물학적 한계에 부딪혀 소멸하고 있다.
결국 2026년의 대한민국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거창한 명분과 긴축 재정의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다. 권한은 주어졌으나 실행할 손발이 묶인 3기 진실화해위가 과연 2천 건이 넘는 적체된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피해자들에게 희망 고문만을 남길 것인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선포식보다 낡은 기록 보관소를 뒤질 한 명의 조사관이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2,111건의 보류 서류들이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이 기사는 ECONALK의 AI 편집 파이프라인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모든 주장은 3개 이상의 독립적 출처로 검증됩니다. 검증 프로세스 알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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